텐더니스 밀리언셀러 클럽 85
로버트 코마이어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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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성인을 위한 소설인지 청소년을 위한 소설인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음을 느꼈다. 성인을 위한 소설이라면 서스펜스 소설로서는 매우 저렴한 점수를 주고 싶지만, 청소년을 위한 소설일 때는 곳곳에 흩어져 있는 표상과 간결함 속에서 빛나는 작품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저자인 로버트 코마이어가 청소년 소설가라고 하니 아마 후자로 생각하는 게 현명할 듯 싶다. 

어머니와 계부를 살해한 에릭에게 부드러움은 무엇일까. 그에게 부드러움은 살인을 조장하는 잔혹한 무엇이다. 한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로리에게의 부드러움은 그녀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의 부드러움은 어딘가 잘못되고 왜곡되었다. 에릭을 쫓는 경찰은 그 잘못된 해석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등장하지만 불친절한 조연에 불과한 느낌밖에는 들지 않는다. 작품은 이 셋의 시점이 전환되면서 보여진다. 짧고 간결하지만 결코 책을 덮고나서도 여운이 짧지 않기에 곱씹어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이 표지가 소설의 주제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한다고 할 수 있겠다.

'가장 상처를 잘 입는 부위가 가장 부드러운 법'이라는 서두의 한 문장은 끔찍함과 잔혹함으로 뭉친 인간이지만, 그 내면의 부드러움과 본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부드러움이 나이가 들수록 더 견고하게 굳어져버리게 되는 것이 성인일 때, 바로 이 소설이 청소년 소설로서 역할하는 의미가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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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1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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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만약 한국 작가에 의해 쓰여졌다면 불온 소설로 금지 당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날로 변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이념에 관해서는 민감하고, 보이지 않는 금기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미있었고, 씁쓸했다. 물이 한 방울씩 오랜 기간 동안 바위를 뚫을 수는 있겠지만, 고작 한 사람의 노력은 수 십, 수백 만 이상의 대중의 힘에 아무런 힘도 미치지 못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책의 결과가 달라졌다면 오쿠다 히데오의 사상을 의심하는 독자들이 많을 수도 있겠다. 혹시 오쿠다 히데오가 작가로서의 인기와 책 판매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이렇듯 아쉽게 끝을 맺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배경으로 한 부르주아의 착취에 대항한 한 대자적 프롤레탈리아의 올림픽의 몸값을 받아내기 위한 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다. 사회학을 전공하는 내게 이 소설이 매우 의미 있는 것은, 마르크스 이론을 4년 내내 배워도 이런 자각을 행동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학을 그쯤 하다보면 이 학문 자체에 진절머리가 나기도 하는데, 이유는 사회 비판을 전제로 하여 대항적인 성격을 배우는 경우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해서 이다. 옛날의 사회학도에게는 사회 현실 자체와 연계되어 두 주먹 불끈 쥐고 당장 학교 밖으로 나가 운동권에 편입되는 게 다반사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사회학도는 그만큼 취업 걱정만 해야 하는 세대이다. 그런 세대의 사회학도인 내게 이 책은 자각을 일깨워주면서도 어딘가는 불편한 오묘한 책이었다. 진실은 바로 이것인데 자꾸만 외면하고 있었던 나를 다시 바라 본 느낌일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이후로 <인 더 풀>이 내가 접한 그의 책의 전부였다. 전작의 유쾌함에 뒤집어지며 웃었고, 후작의 어설픔에 실망을 금치 못한 모든 것이 오래 전의 일이니 내가 그의 책을 찾지 않은지가 오래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가벼우면서도 전혀 가볍지 않은 일본문학을 다른 작가도 아닌 그가 썼다는 것이 재미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작가란 말인가. 여느 작품을 능가하는 <공중그네>의 유쾌함 혹은 경박함부터 <올림픽의 몸값>에서의 진중함까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이렇듯 빤히 보이지 않게 인상적인 무언가를 던져준다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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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밀리언셀러 클럽 1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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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읽는 스티븐 킹이었다. 소설에 이토록 빠져들며 전율을 느끼게 되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서울에서 울산으로 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채 반도 읽지 못했지만 그 다섯시간이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쇼생크 탈출>은 들어보기만 했을 뿐, 보지는 못했는데 이 책이 원작이라니 의아스럽다. 내가 알기로는 코믹영화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내가 왜 이때까지 스티븐 킹을 미루어왔느냐하면 사실 스릴러는 좋아하지만 공포소설은 그닥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 날개에 소개된 그의 이력과 사진이 왠지 책을 읽고 싶어 하는 마음을 떨어뜨렸다고하면 그에게 실례일까. 

Different Seasons라는 제목으로 사계절 각각의 소설을 소개해주고 있다. 이 책은 봄과 여름으로, 봄은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그리고 여름은 <우등생>으로 엮어져있다. 전작이 더 짧지만 작품성 있고 흡인력이 강했던 반면 후작은 호흡이 길었음에도 박진감만은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마무리의 완결성 없는 아쉬움을 끝으로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 

공포소설가로서만 알고 있던 스티븐 킹은 단지 공포소설가만이 아니었다. 내가 얼마나 무지하면서도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던걸까. 오히려 난 이 소설로 희망이 무엇인지를 보았다. 희망과 집념, 그 뻔하고도 뻔한 소재를 저자는 뻔하게 풀어놓지 않고 경이로운 스토리텔링으로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이런 진부한 소재는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그 감동의 정도가 달라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 재료들로 무척이나 다이나믹하면서 맛있는 요리를 선사한 훌륭한 요리사이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 밀리언셀러 클럽시리즈의 가장 처음 작품이고 그 다음이 <스탠 바이 미>로 사계의 가을과 겨울을 엮고 있다. 책을 덮자마자 그 책이 읽고 싶어질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스티븐 킹에게 매료가 아닌 '중독'이 되어버렸다고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이 내가 처음으로 읽은 스티븐 킹의 소설이자 2010년 마지막으로 완독한 책이라는 의미가 더해져서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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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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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한 스토리였다. 소설 다운 소설이었고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 없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다가 누구나 읽기 쉽게 쓰여졌다. 오랜만에 만난 경쾌한 소설이라고 할까. 

사진을 좋아하고 사진가로서의 생을 살고 싶지만 아버지의 압력에 못이겨 변호사가 된 주인공 벤. 높은 연봉과 아름다운 아내와 두 명의 아들이 있는 가정이 있지만, 어느 때 부터인가 아내는 이웃집 남자와 바람을 피우게 된다. 그 사실을 발견하고 분노를 억누를 수 없는 그의 충동적인 행동으로 인해 그의 인생은 완전히 탈바꿈하게 된다.   

세상에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난 무려 10대라는 어린 나이 때 부터 내가 원하는 삶이 이게 아니라는 회의를 안고 살았다. 내가 원하지 않지만 주변에서 원하고, 결국은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자기 최면을 건 채로 꿈을 정했고 스스로 그 꿈에 얽매여 살아왔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기에 진정한 꿈이라고 할 수 없는 꿈에 말이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서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성공을 이룬 주인공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고 있지 않다면 더 없이 행복하게 살며 성취감을 이루며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을텐데, 결국 소설은 또 다시 억지스런 우연을 만들어내어 그 삶 또한 뒤엎는다. 결국 새로운 가정으로 귀착할 수 밖에 없는 주인공으로 통해서 인간에게 무조건적인 자유란 무조건적인 행복을 보장하지 않음을 알려주는 것일까.  

헛웃음 나는 우연성만 없으면 더 작품성 있는 소설이 될텐데 아쉽다. 그럼에도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감탄했다. 책을 들고 이렇게 빠져나오기 힘든 적은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다. 또한 오랜만에 진정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서 솔직히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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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사랑에게 말했다 - 브라운아이즈 윤건의 커피에세이
윤건 외 지음 / PageOne(페이지원)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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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말하자면 정말 '손발 오그라드는 책'이다. 윤건 노래 자체도 그렇지만, 노래나 책이나 어쩜 끝까지 사랑타령이니. 이렇게 독설을 뿜을 수도 있지만, 책을 한 장씩 넘기며 느낀 내 마음은 마치 서로 모르는 이들과 커피 한 잔하며 함께 사랑에 대해 밤새도록 수다 떤 느낌이랄까. 지금의 사랑을 만나기 전에는 모든 사랑 타령들이 싫었지만, 지금 한창 사랑중인 내게 공감할 만한 말들이 참으로 많았다. 사랑 또한 어쩌면 나보다 더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제대로 배워야 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무엇인지도 모른다.  

세 명의 저자들이 뭉쳐서 둘은 각자의 사랑 경험담을 늘어놓고 한 명은 그에 어울리는 커피를 소개해주고 있다. 커피 소개에 좀 더 무게가 실렸다면 좋았을 것 같지만, 불행히도 책의 대부분은 윤건과 조현경의 사랑이야기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나같이 시니컬한 독자들에게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그닥 관심이 없을테지만, 자그마치 한 장씩(?)이나 할애해주는 커피 관련 정보는 꽤 흥미로울 것이다. 사실 커피보다는 고구마라떼나 밀크티 등 달콤한 차 종류를 더 선호하는 나지만 이제부터는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고를 때 좀 더 알고 고를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주 초보는 벗어난 뿌듯함이 느껴진다.  

사랑과 커피는 참 닮았다. 달콤 쌉싸름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달콤함을 선호하는 나와 언제나 아메리카노를 선호하는 내 짝. 어쩔 때는 너무나도 달라서 신기할 정도이지만 책에서 말하길 보색은 어울리기 힘들어도 한 번 어울리면 그것만큼 중독되는 경우도 없다고 하지 않던가. 읽는 내내 우리를 떠올렸다.  

이 책이 에세이인지 소설인지는 저자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영화 같은 사랑 이야기이기에 사실 조금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 한 권으로 인간 윤건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지도 않다. 그의 추억으로 남은 사랑 이야기만 읽을 수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이 자서전이 아닌데다 세 명이 뭉쳐서 만들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는 하루 종일 이렇게 커피가 마시고 싶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도 이제 사랑 같은 커피에 빠지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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