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올림픽의 몸값 1 ㅣ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만약 한국 작가에 의해 쓰여졌다면 불온 소설로 금지 당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날로 변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이념에 관해서는 민감하고, 보이지 않는 금기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미있었고, 씁쓸했다. 물이 한 방울씩 오랜 기간 동안 바위를 뚫을 수는 있겠지만, 고작 한 사람의 노력은 수 십, 수백 만 이상의 대중의 힘에 아무런 힘도 미치지 못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책의 결과가 달라졌다면 오쿠다 히데오의 사상을 의심하는 독자들이 많을 수도 있겠다. 혹시 오쿠다 히데오가 작가로서의 인기와 책 판매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이렇듯 아쉽게 끝을 맺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배경으로 한 부르주아의 착취에 대항한 한 대자적 프롤레탈리아의 올림픽의 몸값을 받아내기 위한 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다. 사회학을 전공하는 내게 이 소설이 매우 의미 있는 것은, 마르크스 이론을 4년 내내 배워도 이런 자각을 행동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학을 그쯤 하다보면 이 학문 자체에 진절머리가 나기도 하는데, 이유는 사회 비판을 전제로 하여 대항적인 성격을 배우는 경우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해서 이다. 옛날의 사회학도에게는 사회 현실 자체와 연계되어 두 주먹 불끈 쥐고 당장 학교 밖으로 나가 운동권에 편입되는 게 다반사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사회학도는 그만큼 취업 걱정만 해야 하는 세대이다. 그런 세대의 사회학도인 내게 이 책은 자각을 일깨워주면서도 어딘가는 불편한 오묘한 책이었다. 진실은 바로 이것인데 자꾸만 외면하고 있었던 나를 다시 바라 본 느낌일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이후로 <인 더 풀>이 내가 접한 그의 책의 전부였다. 전작의 유쾌함에 뒤집어지며 웃었고, 후작의 어설픔에 실망을 금치 못한 모든 것이 오래 전의 일이니 내가 그의 책을 찾지 않은지가 오래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가벼우면서도 전혀 가볍지 않은 일본문학을 다른 작가도 아닌 그가 썼다는 것이 재미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작가란 말인가. 여느 작품을 능가하는 <공중그네>의 유쾌함 혹은 경박함부터 <올림픽의 몸값>에서의 진중함까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이렇듯 빤히 보이지 않게 인상적인 무언가를 던져준다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