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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 스토리
앨런 홀.미카엘 라이디히 지음, 이경식 옮김 / 황소자리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기리노 나쓰오의 "잔학기"에는 어린 시절 납치,감금되었던 어린 시절을 가진 작가가 등장하는데,
그 이야기를 그저 이야기로 볼수 없었던 것은 현실에서 그런 끔찍한 일들이 왕왕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도저히 상상하고 싶지 않을 범인과 피해자 사이의 애틋한 감정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를 충격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나타샤 캄푸시 납치, 감금 사건을 다뤄놓은 이 책을 읽으면서
기리노 나쓰오의 "잔학기"를 떠올리게 되는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소설의 일이라고 치부할수없을 정도로 너무나 닮아있는 현실의 이야기.
<나타샤 스토리>는 기이한 환상을 가지있던 사이코패스가 열살짜리 나타샤를 8년이나 감금해두었던 사건을
다큐멘터리처럼 풀어놓은 책이다.
1998년, 등교중이던 열살짜리 여자아이가 흰색 벤에 납치되었다.
소녀의 이름은 나타샤 캄푸시. 오스트리아를 발칵 뒤집어놓은 한 소녀의 실종은 제대로 된 증거를 찾지 못한채,
8년동안이나 암흑속의 사건이 되었고, 사람들은 당연한듯이 그녀가 어디선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이혼한 부모들 빼고는 말이다.
8년이나 세월이 흘러 2006년에서야 오랜 감금생활에서 풀려난 나타샤.
8년동안 나타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걸까?

나타샤의 실종 이후 붙었던 실종 전단사진들.
화려한 남성편력을 가지고 있던 엄마에 의해 방치된 채 자라던 나타샤는
열살이 되어서도 잠자리에 종종 오줌을 싸거나, 짧은 기간동안 10키로나 살이 쪄버려서 학교에서는 돼지라고 놀림받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아이였으나, 어른들에게 자신의 표정을 숨길수 있을 만큼 영악한 아이였다.
나타샤가 사는 곳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던 볼프강 프리클로필은 성실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자신의 정체를 결코 드러내지 않던 스물여섯살의 청년이었다.
그는 남몰래 삐뚤어진 환상을 키워가며 자신만의 미녀를 만들 감옥을 은밀히 만들고 있었고,
어느 날 아침, 등교중이던 나타샤를 납치한다.
이 감금은 8년이나 계속되었고, 어느 날 프리클로필이 핸드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으려 등을 돌린 사이
나타샤는 도망쳐 버리고, 범인 프리클로필은 자살을 택한다.
책을 바라보면서 당연히 여러가지 의문점에 쌓일수 밖에 없는데, 그런 궁금증을 가지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닌지,
아직까지도 나타샤는 여러가지 의혹을 사고 있다고 한다.
범인이 자살해버리는 바람에 나타샤쪽의 이야기를 기초로 사건을 돌아볼수 밖에 없는 가운데,
나타샤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점은 철저히 숨기고 말아버리고, 지나치게 언론에 노출되는 쪽을 택한다.
나타샤는 프로클로필에게서 도망나오기 훨씬 전부터, 도망치면 자신에게 쏟아질
사람들과 언론의 관심을 어떻게 다스려야할지에 대해 꽤 꼼꼼히 생각해두었다고 하는데,
8년이나 갖혀있었던 소녀의 계획이었다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철저하고 영리하게 언론을 주물러서,
도저히 피해자였던 사람이라 믿기 힘든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이 의혹을 갖고, 의심을 하게된 이유는 이렇게 나타샤가 지나치게 영악하다는 점인데,
한편으로 생각했을때, 피해자로써 나약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 인간의 강함이란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나 역시 이 사건에, 나타샤가 숨기려 하는 여러 부분에서 알려지지 않을 모종의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세상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더이상 추적할 수도 없어져 버리는 범인 프리클로필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평소 친한 사람들에게는 여자에 대한 경멸감을 드러내면서도,
자신만의 미녀를 만들기 위해 납치해온 여자아이에게는 곧 주도권을 빼앗겨버리는 남자.
감금당해 있으면서도 자신의 요구사항을 철저히 들어줄 것을 요구했던 나타샤는 그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자신을 세상에서 유리시켰으나, 그래도 8년이나 같이 산 사람에게 나타샤가 느꼈던
동료의식 내지는 애정 비슷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이런걸 애증이라고 해야하나.)
인간의 마음이란 어디로 튈지 몰라서 참으로 이상하기 그지 없다.
여러가지 의문을 던져놓지만, 결코 해답을 주지 않는 책이어서, 답답함만 증폭되었다.
(물론 다 밝혀지는 것이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나타샤의 이야기는 바로 얼마전 2006년에야 종결된 사건이라, 이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책이나 영화,
좀더 자세한 심리학서들이 앞으로 더 쏟아져나올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왠지 모르게 불편했고, 또 앞으로 나오게 될 수많을 나타샤 이야기의 여러 변주들을 생각해보고
착잡해지는 것은 타인의 불행이 어떤지 알면서도 적나라하게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인간의 원초적인 심리 때문일까.
세상은 소설보다 더 잔인하고, 사람은 소설보다 더 이상하다.
이것이 잔학기. 소설보다 더 잔인하고 더 이상한 잔학기이다.

나타샤 캄푸시가 8년동안 기거했던 프리클로필의 좁고 살풍경한 지하감옥.

여러 매스컴에 얼굴을 들이밀고 스타급 범죄 피해자가 된 나타샤 캄푸시.
우리나라로 치면, 악플에 시달리는 스타들처럼 나타샤 역시 인터넷에서 엄청나게 씹히고 있으면서도,
스타급 대우를 받고 있다.(나타샤의 이야기는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영화로도 헐리우드에서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진실 여부를 떠나, 말이 되고 소문이 될수 있는 것에 열광하는 대중들의 구미에 딱 맞춘
엔터테이너형 범죄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럼에도 매우 불쾌한 사건이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