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그림동화 <노간주나무>에는 배다른 두 남매가 나온다.
새엄마가 전처의 자식인 아들을 사과상자로 유인해 목을 쳐내 죽이고,
오빠의 죽음을 알게 된 여동생은 슬퍼하지만 엄마가 무서워 내색도 못하고,
새엄마는 아들을 끓여 저녁으로 내놓고, 아버지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맛있다고 한그릇 더 달라고 한다.
아버지가 먹어치워버린 후 남은 뼈를 동생이 노간주 나무아래 뭍고,
새로 환생한 아들이 피의 복수를 하게 된다는 얘기.
동화라는 사실이 믿을수 없을 정도로 섬뜩하고 잔인한 이야기이다.
동화를 보다보면, 흔히 볼수 있는 어린 아이들의 어떠한 특징을 아주 잘 잡아냈다는 것을 느낄때가 있는데,
<노간주 나무>에서는 죽음의 폭로의 중요성에 대해 무지하고,
참을성없이 두려움에 대해서는 원초적인 반응을 드러내며,
단지 강압적인 어른에 의해 이끌려 다닐수 밖에 없는 아이의 심정이 잘 나타나있다.
 
간혹 어떤 소설에서는 애늙은이 같은 아이들이 등장한다.
그 애들은 애들인데도 불구하고 배려심 넘치며, 참을성 있고, 인지 능력이라던가, 결정력이 뚜렷하다.
나는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는 소설을 무척 싫어한다.
그것은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를 "보고싶어하는" 시선일 뿐, 사실의 아이와는 다르다.
아무리 성숙해도 아이는 어디까지나 아이일뿐이고,
그 나이 또래에 느낄수 있는 원초적인 감성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아이들의 원초적인 감성을 어른이 조정해놓는 행위에는 "짓밟는다"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나 싶다.
17세에 등단한 정말 요상한 작가 오츠이치의 데뷔작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가 무시무시한 것은
어린아이들의 원초적인 감성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살인을 했다는 사실보다 어른에게 들켜서 혼나는 것이 더 무서운 나이.
"자수"가 절대 어울리지 않는 나이.
완전하지는 못해도, 못된 짓은 일단 숨기고 보려는 습성, 무지하기 때문에 더더욱 잔인해질수 있는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이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에서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홉살의 야요이와 사쓰키는 나무위에서 야요이의 오빠 켄을 기다리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둘다 켄오빠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되지만, 야요이는 켄과 가족이므로 절대로 이루어질수 없다.
어쩌다보니 오빠를 좋아하게된 야요이-순간적으로 사쓰키에게 질투를 느끼고, 나무위에서 밀어버린다.
나무에서 떨어진 사쓰키가 죽고, 두려움에 덜덜떠는 야요이와 상대적으로 의연한 켄은
부모님에게 들키면 혼날까봐 사쓰키의 사체를 숲속에 숨기고 만다.
 
우발적인 살인과 켄과 야요이 두 남매가 필사적으로 이 살인을 숨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해버리는데, 이 정도라면, 그다지 충격적인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이 뭐라 표현하게 모호한 이질적인 감정을 주는 것은 작품의 화자가 이미 죽어버린 사쓰키라는 점에 있다.
죽은 사체가 모든 행동을 지켜본다.
사체를 숨기려는 아이들에게는 숨긴다는 자체와 어른들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뿐,
살인에 대한 죄의식은 없다.
한번에 여러가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움직여버리는 아이들의 습성이 이보다 잘 나타날수 있을까.
더군다나,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살인자 두 남매에게 감정이입을 해버리는 부도덕한 사태도 발생한다.
끝까지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라면서, 위기마다 조마조마하게 마음을 졸이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야기 자체보다도, 글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이질감이나 선과 악의 판단을 뛰어넘어
주인공들의 "못된 짓"에 가담하게 만드는 이런 소석을 17세의 소년이 쓸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그러고보면 오츠이치의 <Zoo>라던가, 또는 이 소설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둘 다,
굳이 이유를 붙여넣지 않고 순간순간의 본능에 따르는 아이같은 습성이 느껴진다.
("이유없다"는 것이 반드시 "설득력없다"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유가 없기 때문에 설득력 있을수도 있다.)
몹시 스산하고 이상하고 차가운데도, 묘하게 노스텔지아같은 느낌이 풍기는 것은 그래서일까.
낯설고 이상한 세계인데, 언젠가 가본 것 같고, 언젠가 본 것 같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그 모험이 재밌을 것 같으면서도 무척 두렵고 기묘해져버리는 느낌같달까.
길몽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몽도 아닌, 두근거림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이상한 꿈같은 몽환적인 오츠이치의 세게를
어찌 내가 싫어할수가 있나.
 
함께 수록된 <유코>라는 단편도 좋았고,(제일 중요한 장면에서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서 간 떨어질뻔했다....) 몇안되는 나와 코드가 맞는 일본 작가중에 하나가 될 것같다.
아, 정말 이상하다. 기분이 정말 이상하다.
 
p.s 하지만 책자체에 대해서는 감동할수 없구나.
오츠이치의 책 세권을 함께 샀는데, 세권을 한권으로 묶어버리고 싶다.
아아..살짝 본전 생각날 정도로 너무 얄팍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07-09-08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zoo는 단편집 치고는 실했는데, 제가 ㄱ래서 이 책이랑 쓸쓸함의 주파수를 망설이고 있어요.얇음에도 불구하고 훌륭!까지는 아닌가봐요.

Apple 2007-09-08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소설은 훌륭합니다. 다만 책이 훌륭하지 않아서 그러지..이건 뭐....얇기도 얇기지만, 글자크기랑 자간이 거의 동화책수준이어서...=_=;
쓸쓸함의 주파수를 살짝 펼쳐봤는데, 그것도 얇긴 한데, 그나마 글자랑 자간이 촘촘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