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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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백인소녀와 중국인 백만장자의 이야기.
가난하면서도, 허세는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집안일을 돌볼 하녀는 있는 집안.
열다섯 먹은 딸이 어린 창녀같은 옷을 입고 돌아다녀도 잔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그 사실을 묵인하는 (혹은 그런 치장으로 부잣집 남자 하나 물어오기를 은밀히 바라는) 무책임한 어머니. 집안 재산을 도박으로 탕진하는 노름꾼 큰오빠에 대한 그 어머니의 기이할 정도의 애정.
큰오빠에게 눌려사는 착한 작은오빠. 그리고 주인공 소녀 하나.
메콩강을 건너는 배안에서 만난 중국인 부자를 소녀가 무작정 따라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고, 아버지의 인생도 물려받아야하는 잘 울고 나약한 남자에게
소녀는 어째서 자신을 창녀처럼 대해주기를 바랬을까.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결핍에 대한 중독이었는지 나는 알수 없다.
두 주인공이, 아니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 잃어버린 듯 절망과 패배감에 가득차
무의미한 몸짓을 반복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에 대한 결핍이고, 무엇에 대한 패배감이었을까.
 
어머니는 노름꾼 자식에게 당하고 또 당하면서도 놀랄만한 애정을 보여주고,
그 삐뚤어진 애정 뒤에는 이런 자식을 낳았으니 책임을 져야한다는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소녀는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애정을 큰오빠에 대한 죽이고 싶을 만큼의 증오와 작은 오빠에 대한 모성애, 중국인 남자와의 중독적인 섹스로 위안받는다.
중국인 남자는 영혼없이 껍질만 남아 움직이는 꼭두각시같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가로지르는 허무함을 소녀에 대한 중독적인 사랑으로 겨우 이겨낸다.

그들은 삶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삶에서 고립당했다.
마음속에 커다란 구멍을 뚫린 채, 무언가에 미쳐있지 않으면 살아갈 자신이 없는 사람들,
관계와 자의식에 대한 패배감과 인생에 대한 절망,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속빈 강정같은 사람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을 뒤덮은 이미지는 그랬다.
삶보다는 죽음을, 충족보다는 결핍을, 사랑보다는 중독을, 그러다보니 허무해지고 쓸쓸해지는 삶의 모습들은 기억이 마음속에서 언뜻 언뜻 떠오르듯이 랜덤 재생되며 마음을 슬프게 만든다.
 
글쎄...<연인>이 소설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기억을 훔쳐본 것일까.
슬프고 나약한, 그럼에도 강박적으로 인생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어찌 이리도 허무해보이던지... 쓸쓸하고 아름다운 글 자체의 매력에 푹 빠져서 읽는 내내 마음이 착 가라앉아서 떠오르지를 않았다.
오래전 보았던 이 영화의 기억이 떠올라서, 이번에는 소설로 보았는데 나는 소설쪽이 더 좋다.
내 기억속에 영화속의 주인공들의 모습은 소설의 주인공들의 모습과 조금 달랐던 것 같은데,
조만간 영화를 다시 한번 보고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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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2 0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pple 2008-04-02 05:50   좋아요 0 | URL
앗...지적감사합니다..^^(어여 고쳐야지!!)
저도 워낙 어릴적에 본 영화라 기억이 살짝 가물가물하긴 해서 조만간 영화를 보려고요..^^
 
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엮음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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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다루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에 대해, 자신은 도덕군자가 아니라던 말-
처음 이언 맥큐언을 들여다보게 된 건 그의 그런 의견이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언 맥큐언의 소설들에는 거의 금기에 가까운 소재들이 등장해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그런 금기에 가까운 행위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나는 통과의례처럼, 너무도 당연한 듯 건조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언제나 섬뜩하고 푸석푸석한 느낌을 자아낸다.
괴물이 등장하고, 연쇄살인마가 등장해서가 아니다.
그저, 인간의 무의식의 악랄함-
이런 불편하고 불쾌한 무의식조차 인간의 본성중 하나라는 것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무자비하고 악랄할 것도 없는 행동들이,
가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또 그저 그렇게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충동에 불과하게 느껴지듯이. 이언 맥큐언의 소설이 불쾌한 것은 다른 이야기에서는 악인으로 등장할만한 인물들이 주인공이 되어버리기 때문이 아닐지...
 
제목만 봐서는 꽤나 달콤할 것 같은 가면을 쓴 <첫사랑, 마지막 의식>에서는
근친강간부터 아동성추행까지 세상에 있으면 안될 것 같은 성적 관계들이 줄줄히 등장한다.
폭력적이기 그지 없는 이런 행위들이 아주 건조하고 나른한 어투로 "그것도 어쩔수 없는 충동"인 듯이 풀이되어있다.
여기서 무엇을 봐야할 것인가. 이 행위를 정당화 시키고, 감싸 안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옳고 그름을 벗어나 그런 기이할 정도로 비틀어진 충동을 가만히 바라보고
현실에서 무의식속의 악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관찰해보자는 것이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멀리서 남일인듯 바라보는 시선- 냉혹할 정도로 무심한 그 시선 때문에 이언 맥큐언의 소설들은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어도 포르노그래피는 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동성추행범들은 모두 죽여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에 실린 "나비"에서 어째서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들었는지는 의문이다.
어린 소녀를 꼬여내어 터널로 끌고 들어가 여자아이를 보며 바지를 벗고 수음을 하다가 도망치던 소녀가 죽어버리자 운하에 버리고 오는 이 쓰레기같은 아동 성추행범의 이야기가 어찌나 나른하고 아련하게 그려지던지,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해버렸다. 이 이성과 감각이 충돌하는 모순지점인가보다.
안된다는 것 알면서도 한번쯤 보고싶은, 그런 이상한 충동을 발견한 듯한 찝찝한 기분이랄까.
소설 내내 그런 기분은 이어진다.
나 역시 그런 일에 동조한 파렴치한이고, 강간범이며, 범죄자인 듯, 기분은 몹시 불쾌하지만,
무섭도록 담담한 필력에서 나오는 방관자적 여유로움 때문인지 이런 불쾌한 소재들조차 매력적이다.
 
이 불쾌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선잠속에 꾸는 뭐라 말할수 없는 악몽처럼,
충격적일 것도 없이, 부끄러울 것도 없이 이어진다.
이런 것 또한 인간의 야수성이고 폭력성이라면 그럴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제발 벌어지지 않았으면.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의 충동같은 무자비하고 위험한 악같은 건 그저 마음속에서나 존재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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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이
이영수(듀나) 지음 / 북스피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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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듀나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영수의 SF 소설집 "용의 이"는 세편의 단편과 한편의 장편이 수록된 내가 읽은 듀나의 첫번째 소설집, 그리고 듀나의 통상 네번째 소설집이다.
몇해전부터 인기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요시토모 나라의 그림을 보는 듯한 귀엽지만 염세적이고 삐뚤어진 느낌이 가득한 책이라고나 할까. (사실 그의 그림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이 아니라 듀나의 소설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일까.)
소설 후에 수록된 이 책에 대한 평들 중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이 소설을 "세계 몰락 프로젝트, 혹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앨리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소설만큼이나 인상적인 평이었다.
각기 네개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흐르는 세기말의 느낌, 그리고 생소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모험같은 에피소드들과 도무지 겁도 먹지 않는 무뚝뚝한 소녀들-
그 말이 옳소. 이 소설은 꼭, 삐뚤어진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끌릴 마이너적인 캐릭터가 기이한 모험에 빨려들어가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앨리스 같다.

소설을 시작하는 단편 "너네 아빠 어딨니?"에서부터 듀나의 상상력의 실체를 뚜렷히 파악할수 있다.
술취한 아버지가 동생을 강간하려는 것을 막으려다가 아빠를 죽여버린 소녀,
동생과 소녀는 창고에 아빠를 묻어버리는데, 아빠는 밤마다 무덤속에서 깨어나 자매의 피와 살을 노리는 좀비가 되어버린다. 겨우 초등학생들인 이 꼬마들은 무섭지도 않은지, 밤마다 살아나는 좀비아빠를 밤마다 죽이고 파뭍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하고, 설상가상으로 아빠를 찾던 아저씨까지 좀비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일이 점점 커지고 만다.
소녀와 강간, 부자와 가난한 자들, 죽음과 좀비와 무덤의 이야기가 이 어우러지는 데도 어둡다고만 볼수 없는 것은 작품 내내 흐르는 어딘가 낙천적이고 무심한(예를 들면 무서운 상황에 빠져있으면서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소녀들이라던가) 정서가 재밌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단편 전반적으로 흐르는 다분히 세기말적인, 그러나 세계가 어떻게 되든 말든, 이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한 듯 자기애가 강렬히 표현되는 아이다운 잔인함과 낙천성이 이 단편의 큰 장점인데, 이는 이어지는 다른 단편과 장편에서도 계속된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되어 햇빛속에 녹아들어가버리기 전에 장치에 가두어놓는다는 설정의 "천국의 왕", 다른 세계에 떨어진 소녀들의 여정기같은 두 작품 "겨울너머로 가다"와 "용의 이"의 느낌 또한 그렇다.
나약하고 쉽게 바스라질 것 같은 소녀들을 세상속에 던져놓지만, 세상에 그닥 애착을 가지지 않는 이 소녀들은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에 만족할 뿐 커다란 희망이나 세상이나 인간에 대한 믿음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는 무심함을 보여준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독특함의 정체는 바로 이 소녀들의 캐릭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뚝뚝하고 건조한 정서이리라.
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을 읽는다기보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해듣는듯한 느낌이 이어졌던 것은 건조한듯, 무심한듯, 그러나 쫀득쫀득 재밌게도 이야기를 포장해놓는 작가의 센스때문이리라.

개인적으로 "너네 아빠 어딨니?"와 "천국의 왕"이 재밌었고, 막상 장편이자 표제작인 "용의 이"는 지나치게 길어진 분량과 이미지로 머릿속에 정확히 그려지지 않는 세계관때문인지 조금 실망스러웠다.
단편들 만큼 장편들이 좀더 간결한 매력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상에서 펼쳐지는 기이하고 비현실적인 환타지,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맘대로 이름 붙였다던 "동네 SF"라는 말에 무척 잘 어울리는 아기자기하며 귀엽고도 냉소적인 소설집이었고, 무거운 얘기도 무겁게 전달하지 않는 작가의 마인드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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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3-28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듀나 영화게시판 가끔 가는데, 책도 괜찮나 보네요.
나중에 읽어봐야 겠어요^^

Apple 2008-03-30 0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꽤 독특하고 괜찮더라고요..^^
 


배송완료가 되었다던 나의 아이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적립금으로 주문한 소중한 아이들인데....배송은 완료되었다고 하고, 지금 이시간에 택배회사에 전화를 걸어볼수도 없고, 아랫층에 맡겨놨나 했는데 아랫층에서는 안왔다고 하고....집에 사람이 없는 것같으면 택배회사에서 전화를 분명 걸어보았을텐데 전화도 오지 않았고,(물론 자고 있었지만 집에는 분명 있었다.) 발송되었다는 문자도 오지 않았고.......

어디로 증발한거야!!!내 택배!!!!ㅠ_ㅠ 내 택배 돌려줘!!!!!!!!!!!!!!!!!!!!!!!!!!!하루배송은 되기는 되는거냐!!!! 몇번 해봤더니 재미붙여서 오늘도 하루배송으로 해보았는데 이게 뭐여!!!!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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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3-28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택배 잘 왔나요?? 저런 일 생기면 기분 완전 잡치는데...
재밌는 책 많이 사셨네요ㅋㅋ

Apple 2008-03-30 0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헤헤헤..그래도 어떻게 다음날 책이 도착했습니다.^^
게다가 뽀너스까지 두개나껴있어서 택배 실종에 전전긍긍했던 마음은 좀 풀어졌달까..'ㅅ'
 

한때 평범하던 시절도 있었더랬다.
여자친구와의 첫경험을 상상하며 가슴이 두근거리고, 여름방학에 친구들과 놀러갈 계획을 하며 설레이던 열다섯의 여름, 운명처럼 찾아온 엄마의 사랑.
8년전 아버지를 잃고 자살까지 하려고 했던 나약한 엄마였기 때문에,
그런 나약하고 사랑스러운 엄마의 곁을 지켜줄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사실에 마음 깊숙히 안도감이 들었던 시절도 있었다.
끔찍히도 여자를 아낄줄 아는 로맨틱한 신사에, 온화한 성품을 가진 엄청난 부를 소유한 그 남자 그레그- 매일 같이 사랑의 황홀함에 도취된 엄마를 바라보며 제르민은 자신도 행복해졌었다.
그가, 그렇게도 신사적이던 그레그가 제르미에게 키스를 해오기 전까지는....
 
그는 그것을 사랑이라 불렀다.
나약한 엄마를 한순간 버려 자살직전까지 몰아가놓고, 엄마의 행복을 담보로 아들에게 몸을 요구하는 그 파렴치한 변태성욕자는 그것을, 그 치욕적인 강간과 협박을 사랑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결혼하면 모든 것이 끝나리라 믿었다.
엄마는 그레그를 따라 영국으로 가고, 제르미는 보스턴에 남아 자신의 인생을 꾸리면 그것이 다 일 것이라 믿었다. 자신이 당한 끔찍한 두번의 강간을, 잊을수 있을거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레그는 끈질겼다. 그는 엄마의 안정을 위해 잠시 영국에 와 있던 제르미의 여권을 훔쳐놓고, 가족들앞에서 로맨틱한 남편이자 선량한 아버지인 척 연기했다.
밤이면 자신의 방으로 찾아와 몸과 마음까지 요구하는 그레그를 증오하면서도,
버림받아 괴로워할 엄마가 못내 안타까워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갔다.
그레그의 욕망에 뒤흔들리기 시작한 자신이 더러워 견딜수 없으면서도,
이 가학적 행위를 멈출만한 힘이 제르민에게는 없었다.
언젠가 끝나게 될것이라는 희망도 있었지만, 그 희망이 서서히 광기로 변해가고,
한때 평범하던 열다섯 소년 제르미가 살아있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그를 죽이거나 자신이 죽는 것밖에 남지 않아버렸다.
그레그의 지배에 압제된 채 제르미는 변해버리고, 누구에게든 지배욕을 불러일으키는 나약함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또다른 절망을 불러온다.
어떻게 해야 이 절망의 굴레에서 벗어날수 있을지.
제르미가 선택하지 못했던 것 처럼, 책을 보는 나 역시 선택할 수 없었다.
권력과 지배욕에 더럽혀진 몸과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우리는 모두 상상도 할수 없을 것이다.
 
어째서 이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을까. 되돌이켜 보면 나는 이 책을 읽을수 있었던 순간들이 꽤 많았었는데.
단 20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도무지 멈추어지지 않아 끝을 볼때까지 걸신들린 듯이 빠져들수 밖에 없었던 이 책을 왜 이제서야 읽었는지 후회가 된다.
책을 읽는 내내 제르미의 광기와 슬픔이 온몸에 바늘을 찌르듯 전해져 저 멀리 절망의 심연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어디엔가 절망의 끝이 있긴 한건지, 알수가 없었다. 파고 또 파도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심연은, 제르미를, 그리고 제르미를 느끼는 나를 잠식해버렸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희망이 끝난 삶에서 제르미는 또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까. 마치 그것이 내 일인 것처럼 절망에 차버려서, 공포와 두려움과 나약함에 가득차 치를 떨면서도 도무지 잠시도 이 책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이 책은 분명 끔찍하게 무섭고 기분나쁜 작품이다.
속이 뒤틀릴 정도로 정교하게 묘사된 지배욕의 심연이, 절망의 심연이 독하게 잠식해오는 작품이다. 그러나 끊을수 없는 마약처럼, 그 절망의 깊이에 매혹된 채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독한 만화이며 명작이라는 수식어에 조금도 모자름없는 명작중의 명작이라고 감히 말해볼수 있다.
치밀한 심리 묘사, 정교한 스토리 구조, 완벽한 연출-
그러나 그것 뒤에 더더욱 대단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
마음을 꿰뚫고 헤집어, 입어본 적도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만들어내 심장을 갈기갈기 찢는 듯한 고통-. 그 고통조차 매력적이라 느껴졌다면, 나는 이미 잔혹한 신에게 지배된지도 모르리라.
 
앞으로 이 작품의 행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몇권이 되든 나는 끝까지 이 고통을 지켜볼 생각이다. 왠지 꼭 그래야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재밌다는 수식어로는 이 작품을 설명할수 없다. 대단하다. 정말이지, 대단한 작품이다.
살아 생전, 이런 작품을 읽을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영광이 아닐수 없다!!!
그러니 빨리 뒷권 좀.....
 
p.s 제목의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는 기숙사 학교에 들어간 제르미의 친구들이 말장난 삼아
자신의 성과 같은 이름을 가진 예술가들의 이름을 찾다가 등장한다.
제르미와 같은 성을 가진,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에서 따온 제목으로,
만화속의 '잔혹한 신'이란 당연히 자신의 양아들을 강간하는 그레그를 뜻하리라.
멋진 제목이 아닐수 없다.
 
p.s 2. 이 책은 더러 BL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이코 스릴러 심리 서스펜스-정도라 말하는 것이 책이 가진 매력을 가장 잘 표현하지 않을까.
 
P.s 3. 아아...다섯권을 다 읽는데 네시간이 걸렸다. 물론 단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
내 손에 놓인 책을 다 읽지 않고서는 잠이 들수가 없었는데, 다 보고나서는 엄청난 악몽을 꾸었고, 잠이 모자랐던 데다가, 선잠을 잤고, 만화책에 완전히 몰두해서 내 심신이 울렁증을 유발해서 하루종일 몸이 좋지 않다. 으으....후유증 참 심한 책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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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8-03-25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판으로 옛~날에 나왔었고 몇 년 전에도 한번 나왔는데 다시 나오나보군요. 결말은..알려드리지 않겠습니다.(사악한 미소) 기다리시기 힘들다면 헌책방을 뒤져보시는 것도 좋을듯.

Apple 2008-03-25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저도 해적판으로 나왔던 시절에 친구에게 빌려보려다가 못빌려보고 이제서야 봤습니다.^^
결말은...정말 궁금하군요.-_- 그래도 참고 기다릴거예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