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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이에몬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어쩌면 이렇게 조용하고 기괴한 사랑이 있을까.
아름다웠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던 어떤 여인은 어느날 병에 걸려 얼굴이 무참히 무너지고 만다.
얼굴이 무너진 후에도 그녀에게 외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감넘치는 대장부같은 여자여서, 세상의 시선에 지지않고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그녀를 밑바닥까지 떨어뜨리는 소문들. 아름다운 이와아가씨는 이제 추녀가 되었고, 도깨비같은 여자가 되었고, 미쳤는지 지나가는 남자마다 눈만 마주치면 추파를 던진다고-
당당했던 그녀의 자존심은 어느새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세상에 등을 돌리게 되어버린다.
이와 아가씨는 세상과 타협하기에는 너무나 곧은 여자였기 때문에, 구부러지지 않고 꺽여버린 것이다.
시집갈 나이의 외동딸이 추녀가 되어버린데에 절망을 한 것은 오히려 그녀의 아버지였다. 설상가상으로, 이와가 병에 걸리고 얼굴이 무너져 버린 이후, 아버지도 사고로 눈을 잃었다. 늙고 병들어 아픈 아버지는 혼자 남겨질 이와와 자신의 가문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중, 이와에게 장가오겠다는 남자가 나타난다. 너무나 멀쩡히, 성실하고 올곧은 남자를 보고, 아버지는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자신의 딸은 추녀라며 그래도 괜찮겠냐 여러번 되묻다가 결국은 그 남자를 이와의 배필로 삼기로 한다.
그 남자가 이에몬이었다. 웃지 않는 남자. 성실하고, 올곧고, 세속적인 것에 관심없는 청렴한 남자.
곧은 여자와 곧은 남자의 신혼 생활은 기이하리만치 대화가 없다.
이와는 이에몬에게 기이할정도로 신경질을 내고, 이에몬은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매번 미안하다며 사과만 한다.
충분하지 않은 대화와 의미없는 싸움이 반복되는 결혼생활이 이어지는데, 한때 이와와 혼인을 올리고 싶었던 전형적인 악인인 요리키 이토가 나타나 이들의 결혼생활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일본에서는 유명하다는 요쓰야 괴담을 소재로 삼고 있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 <웃는 이에몬>은 원본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이야기로, 악랄함과 순수함이 뒤섞여진 한편의 잔혹동화를 보고 있는 듯, 다분히 퇴폐적이며 기이하고 또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은 대게 비슷한 느낌을 갖기는 하지만, <항설백물어>라던가 <교고쿠도 시리즈>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읽을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조금더 편안한 마음으로, 조금 더 사람과 감정에 기대어 쓴 듯한 소설이지 않았나 싶은데, 이런 느낌도 무척 마음에 들어서 또 언제 교고쿠도의 이런 소설을 읽을수 있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끊어질 듯, 소심하게 더듬는 어눌한 문체와는 달리 상당히 자극적이고 기묘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문체 덕분인지 이야기가 지나치게 적나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묘해서 슬프기도 했다.
이 가학적이고 이상한 이야기를 "사랑이야기"라고 말하는 것은, 이 진흙처럼 끈적하고 스산한 관계들속에서도 사랑이라는, 또는 사랑과 비슷한 감정같은 것이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삐뚤어진 사랑을 하고 있다.
올곧고 고집쎄던 여자 이와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소문에서 결국은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그들과 같을 것이라 여겨버린다. 이에몬이 행복해지는 일은, 자신같은 성질 사나운 추녀가 아니라 조금더 젊고 아름답고 나긋나긋한 아내를 얻는 것이라고-이와는 말없이 생각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이에몬은 그런 이와의 행동에 의아해 하면서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그녀를 자유롭게 해준다고 믿었다.
이들의 주변을 둘러싼 다른 사람들은 또 어떠한가.
평생 악하게만 살아온 이토는 사랑함에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삐뚤어진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한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보이지 않는 것은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자신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에몬을 사랑한다고 믿는 우메는 또 어떠한가. 그것이 사랑인지, 지푸라기라도 기대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 만들어낸 허상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잘못된 방식으로 사랑을 얻으려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이 책을 보면서 대화란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솔직한 단 한마디의 말만 해주었더라면 해결되었을 문제들이 이렇게 꼬이고 삐뚤어져, 기묘한 비극을 만들어버리게 된다.
삶을 살아가면서, 단 한마디가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단 한마디를 못해 삐뚤어져버리는 일들이 있다.
말한마디. 그저 따뜻한 말한마디일 뿐인데, 왜 그렇게들 주저하며, 자신의 생각이 옳을 거라 착각하고 대화하지 않으려 했을까.
그 모든 것이 두려움때문이지 않았을까.
거절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혹시 내가 상대방에게 모자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나를 미워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내가 상처받을까봐 주저하게 되는 마음들이 저마다 기묘한 방식으로 꼬이고 꼬여 오해만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 아닐까.
말이 없는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얼마나 가학적일수 있는지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 읽고나니 한참 여운이 남아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여러번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 모든 관계의 열쇄는 커뮤니케이션이로구나-하는 당연한 결론을 짓게 되었지만, 이제 다시 말없이 오해만 되풀이하는 관계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보장은 또 없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차피 소심하고 삐뚤어지고, 나 역시 나혼자 생각하고 결론내리는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어긋나는 관계가 슬퍼도, 용기를 내는 것 또한 쉽지 않기 때문에- 이런 기묘한 사랑도 일견 이해할수 있을 것만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