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정태원 옮김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미스테리 소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 꼭 만나게 되는 코스같은 소설가들은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이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일본 미스테리 소설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가들이니까.
개인적으로는 두 작가 모두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의 필력이 나쁘다거나 얘기 자체가 시시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와 코드가 맞지 않는 작가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은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그다지 끌리지 않아도 읽게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 예전 한창 인기를 끌었던 <비밀>도, 일본 미스테리 중에서는 나름 열풍이었던 <용의자 X의 헌신>을 보아도 뭔가 마뜩치 않은 점이 많은 작가였었다. (그 외에 혹평도 하고싶지 않은 진짜 별로였던 소설들도 있고....)
그러나 영화를 보기전에 뒤늦게 보게된 <백야행>은 꽤 만족스러운 소설이라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읽게 되었다.
그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 느꼈던 물체나 다름없는 희미한 여자주인공의 비중이 <백야행>에서는 그닥 느껴지지 않았고, 미스테리라고 해야할지, 멜로 드라마라고 해야할지, 애매모호한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잘 한 느낌이었다.

유키호와 료지. 빛과 그림자.
과거의 일들로 인해 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면서도 서로에게 인조 태양이 되어주었던 존재들.
그들의 관계가 단지 사랑에 묶여있지 않았기 떄문에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사건을 똑같이 벌이게된 동료의식과 서로에게 품고 있을 죄의식, 서로의 인생을 연민으로 보듬어 안는 인간애같은 것들.
단지 사랑이었기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에 19년- 그 오랜 세월동안 완벽한 타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런지 모른다.
료지가 유키호를 사랑하고만 있었더라면, 유키호를 다른 남자들에게 절대 빌려주지도 않았을 터.
소설 속에서 유키호와 료지가 만나는 장면은 단 한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철저히 그들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고, 그들의 인생 역시 타인의 시선으로 비춰지기만 한다.
이 냉정한 객관성속에서, 독자는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과연 유키호와 료지는 무엇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들에게 행복해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라고.

희미한 안개속을 걷는 듯한 이야기였다. 손에 잡히지는 않는데, 막연히 상상할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 상상은 왠지 모르게 고통스럽고 왠지 모르게 애달팠다.
그 상상의 자유와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이 소설 최대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사건의 모든 단서는 제공하되, 인물의 감정을 비워두었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을 유추하고 막연히 짚어볼수 있었다.
독자를 자연스럽게 고민에 빠뜨리는 추리소설로는 참으로 똑똑한 진행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중에서도 여러가지 장르가 있고, 추리, 스릴러, 공포 문학들은 철저한 장르소설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나는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설은 추리 소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책을 바라보고 소설속의 인물을 따라가는 것, 그들의 인생에 어떤 일이 벌어졌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바로 추리라고 생각하니까.
처음 만난 모든 사람의 인생이 내게는 미스테리이듯이, 첫 책장을 펼치는 책은 처음에는 모두 미스테리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애매모호한 장르의 소설 역시 추리소설임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키호와 료지의 인생을 쫓는 것 자체가 미스테리이고 추리였다.

도무지 어떻게 할수 없었던 어둠속에서 도망쳐나온 아이들은, 여전히 어둠속을 헤매인다.
처음에는 타의로, 그후에는 자의로, 그들은 빛의 세계보다 어둠의 세계를 택했다.
줄곧 하얀 밤을 걷고 있었던 기분이라고. 언젠가 낮에 걸어보고 싶다고 쓸쓸히 투정하면서.
그들이 말하는 자신의 감정들이란 단지 그것뿐이지만, 왜 이렇게 처절하고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마지막장, 모르는 척 냉정히 뒤돌아선 유키호는 어떤 표정으로 머나먼 길을 또 걸어갔을까.
눈물을 흘렸을지, 아니면 냉혹한 포커페이스였을지, 또는 후련한 기분이었을지.
분명한 것은, 이제 그녀는 인조 태양조차 사라진 온전한 어둠속을 걷고 모든 짐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독하고, 냉혹한 그녀에게는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닐까.
철저히 혼자 내버려진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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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왜 썸네일그림이 안뜨지?;;  

 아무튼 기다리고 기다리던 <도착의 사각>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도착의 론도>에서는 도착시리즈가 금방 금방 나올것처럼 광고해놓고서는, 거의 딱 1년만에 나온 <도착의 사각>. 

그래 좋다. 나와주기만 해다오. 기쁘다 기뻐!!! 오리하라 이치의 현란한 서술형 트릭에 속아보도록 해보자!!! 어서 보고싶구나!!!!!! 앗싸라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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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9-11-27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착의 시각인 줄 알았씀다..ㅋㅋ 오리하라 이치의 책은 본 적이 없는데. 재미있나요?

Apple 2009-11-28 05:35   좋아요 0 | URL
음...사람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정말 재밌게 봤었어요.^^ 다른 리뷰들 참조하시고 일본 미스테리에 관심있으시다면, 왠만하면 보시길! 으하하하
 

바야흐로, 드디어 박찬 마감에 돌입해야하는 이 때, 잠깐의 여유를 찾기 위해 언젠가는 보고싶은 것들.
마감이면 아무것도 못하고 작업실에 붙들려 있어야하지만, 다른 취미생활은 못해도 그래도 틈틈히 책은 볼수 있으니 그걸로 위안삼는다. 그렇다고해도 평소처럼 마음껏 읽을수가 없어서 조각조각 읽어야 하지만서도....
바빠질수록 가난해지는 나는 어디서 10만원짜리 문화상품권이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꿈같은 생각을 또 해본다...-_-;
 

야마구치 마사야-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실은 나도 살아 있는 시체예요. 한참 전에 죽고 말았죠.”
미국 북동부의 시골 마을 툼스빌(묘지 마을). 발리콘 가家가 운영하는 유서 깊은 장례회사 ‘스마일리 공동묘지’가 위치한 그곳에서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때마침 아버지 몫의 유산을 받기 위해 툼스빌로 돌아온 펑크족 청년 그린 발리콘은 할아버지의 초콜릿을 먹고 사망하지만 곧 소생한다. 그린은 자신의 몸을 방부 처리하여 죽음을 숨긴 채 친척들의 뒤를 캐어 진실을 파헤친다. 그러던 중 발리콘 가 사람들이 연이어 살해되는데…….
자신을, 아니 할아버지를 죽이려던 자는 누구인가. 시체가 되살아나는 지금, 범인은 왜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것인가. 산 자는 물론 죽은 이까지 용의자로 생각해야 하는 세계에서 과연 그린은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까.

너무 바빠서 뭔가 읽고는 싶은데 정신이 없어서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을 때에는 일본 소설만한게 없다.
상도 탔고, 꽤 유명한 소설인데다가, 표지가 간지라 꼭 갖고 싶구나. 후후....
시공사가 다른 건 몰라도 표지는 그럭저럭 잘 뽑아낸다. 

마자린 팽조-인형의 무덤

갓 태어난 제 아이를 죽인 여인을 화자로 한 소설로, 프랑스 전 대통령 미테랑의 숨겨진 딸 마자린 팽조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를 만큼 큰 화제를 일으켰는데, 서래마을 사건의 피의자인 쿠르조 가에서 영아의 사체를 냉장고에 유기하는 것 같은 공통점 때문에 책 판매를 중지하라고 거세게 항의하기도 하였다.

감옥에 갇힌 여인이 남편에게 쓰는 편지 형식이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을 향한 독백을 하고 있는 화자(영아 살해범)는 자기 자신에게 도취되어 있다. 그녀는 교도소, 깊고 어두운 곳에서 글을 쓴다.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 남편과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사법부, 정신분석학자, 멸시를 퍼붓는 대중들이 그 '괴물 같은 진실'에 대해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머니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으며,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를 떠났다. 또한 어린시절 바비 인형을 고문하고 매장하고 장례를 치러 주며 놀았다. 고향을 떠나면서 자신에게 내재된 악마성이 사라졌다고 믿었으나, 서로에 대한 혐오와 공포로써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남편과 함께 살면서 그녀 안의 끔찍한 면들은 극대화 되기에 이른다.

예전에 꽤 관심있게 지켜보았던 서래마을 영아 살인 사건이랑 너무나 흡사한 소재의 소설.
물론 저 멀리 프랑스에서 우리나라 사정까지 내다보고 쓴 것은 아니겠지만, 결코 알수 없었던 서래마을 프랑스 여자의 심리를 조금은 알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괜시리 보고싶다.
하지만 표지 진짜 짜증난다...=_=   

알리 쇼 -유리로 변해가는 슬픈 소녀 아이다
'안데르센이 환생했다'라는 극찬을 받으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끈 알리 쇼의 데뷔작으로, 유리로 변해가는 한 소녀의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 출간 직후 영국 가디언이 선정하는 2009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소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북구 유럽의 상상 속 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몽환적이면서 매혹적인 러브스토리이다.

어느 날 아이다에게 신비스럽고도 무시무시한 변화가 닥친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몸이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유리로 변해가는 것. 그녀는 자신을 치료할 수 있다는 유일한 남자를 찾아 세인트하우다 랜드로 향하고 그곳에서 마이다스라는 한 고독한 청년을 만난다. 아이다는 다이마스의 도움으로 점차 자신의 고통에 익숙해지는 한편 마이다스의 가슴속에 맺힌 상처를 치유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걷잡을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랑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들에게 시간은 많지 않다. 아이다의 육체가 조금씩 조금씩 유리로 변해가고 있고, 그들에게 필요한 건 시간뿐이다. 둘은 이 섬의 비밀을 알아내고 유리로 변해가는 아이다를 치료하기 위해,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베일에 싸인 인물, 헨리 푸와를 찾아가는데…

눈으로 덮인 신비의 섬, 세인트하우다 랜드를 주 무대로 날개 달린 소, 화려한 빛깔에 치명적인 독을 숨긴 해파리, 눈에 띄는 건 모조리 흰색으로 만들어버리는 신비의 생명체들이 공존하는 현실과 환상의 세계가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에 의해 묘한 아우라를 발하며 눈부시게 펼쳐진다.

뭐랄까...
이책은 그냥 무작정 보고싶다. 제목이 내 취향이니까. 

 

 

 

 

 

 

 

앤 라이스- 육체도둑의 이야기
뱀파이어 로망의 고전,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 시리즈. 영원히 사는 자에 대한 이미지를 뱀파이어로 구축하여 삶과 죽음, 빛과 어둠에 대한 연대기를 만들어냈다. 하버드 철학 교재로 선택되었을 정도로 심도 깊은 철학적 성찰이 담겨 있다. 피에 대한 끝없는 갈망과 영원이라는 운명 가운데 사랑과 증오, 밤과 새벽을 오가는 뱀파이어의 장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뱀파이어 레스타, 그는 다시 한 번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결국 인간 래글란 제임스와 육체 교환을 하게 된다. 인간과 자신의 몸을 바꾼 후 인간이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뿐, 자신의 몸을 되찾지 못하게 되어 엄청난 위기에 빠진다. 육체를 빼앗아간 인간과 육체를 잃은 뱀파이어. 레스타는 과연 위기에서 벗어나 뱀파이어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육체도둑까지 빨리 빨리 나와버렸다! 그 전 시리즈까지 새로운 버전으로 모두 가지고 있으니 이 책도 꼭 사야한다!!!
이 기세로 부디 전 시리즈 완결을 목표로 해주시길!!!!
 

 

미나토 가나에-고백 


2009년 서점대상을 비롯하여 제29회 소설추리 신인상, 2008년 미스터리 베스트10 1위 등 다채로운 수상 내역과 발간 1년 만에 누적 판매부수 70만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한 2008년 일본 최고의 화제작. 열세 살 살인자와 그보다 더 어린 희생자…. 허물어진 현대의 상식을 차가운 시선으로 담아냈다.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어린 딸을 잃은 여교사 유코는 봄방학을 앞둔 종업식날, 학생들 앞에서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불행한 익사 사고로만 알고 있던 학생들에게 느닷없이 공표된, 차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 나직하고도 상냥한 어조로 시작된 이야기는 점차 잔인한 진실로 이어지고, 걷잡을 수 없는 파문으로 치닫는다.

"내 딸 마나미는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습니다. 그 범인은 바로 우리 반에 있습니다." 술렁대는 학생들에게 유코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고백을 던진다. "저는 두 사람이 생명의 무게와 소중함을 알았으면 합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고 그 죄를 지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래서…." 그녀가 준비한 복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평은 또 너무 너무 좋기 때문에 읽어봐야겠구나 싶다. 평들이 너무 좋으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점점 어떤 얘기일지 궁금해지려고 한다. 

에릭 포토리노-붉은 애무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프랑스 중견 작가 에릭 포토리노의 중편소설. 2004년에 발표된 소설로, 프랑스 한림원의 ‘프랑수아 모리악’상과 프랑스 최고의 추리작가에게 수여되는 ‘장 클로드 이쪼’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순수문학과 추리문학의 절묘한 결합’이라고 평가받는 독특한 작품.

주인공 펠릭스는 보험 대리점의 점장으로, 몇 달 전 아들을 잃었다. 그때쯤 화재 사건이 일어난 한 아파트에서 아들과 어머니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나날이 피폐해져 가는 그를 본 동료들은 휴식을 권하고, 펠릭스는 휴가를 보내지만 주변에는 온통 콜랭을 떠올리게 하는 것뿐이다. 콜랭은 차에 치여 죽었는데, 운전자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 사건은 미제로 남아 있다. 그러던 어느날 한 형사가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출간되자마자 즐겨찾기 해놓은지 꽤 되었는데, 왠지 잘 사게되지는 않는데
자꾸 눈에 밟히는 소설.
왠지 언젠가는 이 소설을 보게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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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9-11-24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바쁠 땐 미스테리, 특히 일본소설만한 게 없죠...동감 100%
 
2012 - 2012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옛날에는 재난 영화도 참 재밌게 봤었던 기억이 난다.
저 아주 오랜 옛날처럼 기억되는 포세이돈 어드벤처라던가 타워링같은 영화도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을 정도로 기억에 생생한데, 나이가 들수록 재난 영화를 보고나면 머리에 남는 게 없다.
뭔가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 순간만 즐거우면 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내 대중예술 감상의 모토이긴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기본도 못건지는 영화들이 수두룩해져버렸고, 그 중에 하나가 헐리우드 재난 영화이다.
이런 영화에서 스토리 운운하는 나부터가 바보같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백 수천번은 써먹은 것 같은 얘기는 이 엄청난 CG의 파도속에서도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못 봐주겠을 정도로 재미없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익숙함이 주는 긴장감없는 편안함 때문이리라.
펑펑 우르르 쾅쾅 하다가 가족이 최고!하고 끝나는 영화.
2시간 반동안 온갖 방법으로 지구를 들었다 놨다 한다. 어떻게 하면 각종 재해를 이용하여 지구를 효과적으로 무너뜨려볼까 하는 상상력이 대단하고 그 상상력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력 또한 대단하다.
이 영화는 딱 거기까지-.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영화들은 헐리우드 기술력의 진보를 보여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게 아닐까 하고.
거기서 거기인 스토리, 뻔할 뻔자의 메시지를 모두 뒤덮는 장대하고 화려한 스펙터클. 그뿐인 영화들.
그냥 영상을 보러가기 위함이라면 그럭저럭 볼 만했지만, 역시 나는 그래도 이야기가 중요하더라.
가족이 있는 곳이 바로 집인게야.....따위의 교훈은 헐리우드에서 대충 얼마나 울겨먹었을까나?
결국 부자들이 살아남는다는 결론이 전혀 씁쓸하지 않게 당연한 듯 얼버무려지는 건 그렇다치고,
5분전까지만해도 죽일 놈의 민폐쟁이들이었던 사람들을 5분후에 영웅대접하는 엄청난 단순함이 결국 미국이라는 나라인 걸까?
이 와중에도 지들 대통령은 지구와 함께 장대한 최후를 맞는다는 유치한 영웅주의 또한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엄청나게 순진하고도 멍청한 로망이리라.

p.s 그래도 옐로우스톤 지진씬은 꽤 괜찮았다.
어떤 평론가의 말처럼 2012년에 종말이 와도 별로 무섭지 않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온갖 재해를 다 발견했다.
보다보니 진짜를 봐도 영화가 더 진짜같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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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사이코 - 상 밀리언셀러 클럽 15
브렛 이스턴 엘리스 지음, 이옥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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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는 여피족이다. 젊고, 잘생긴데다가 부유하고 학력높고 능력도 좋고, 언변도 훌륭하며, 옷차림은 누구보다도 세련되어서 어딜가나 눈에 띄며, 여자들은 이 남자를 보면 데이트 하고 싶어 온몸을 베베 꼴 지경이다.
그리고 이 남자는 그 여자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지루하거나, 하룻밤 데리고 놀기 좋거나, 또는 오늘밤의 희생량으로 삼기 좋겠다고.
완벽한 외향을 입고 매순간 살인을 꿈꾸는 남자 패트릭 베이트먼이 그렇다.

베이트먼의 과거가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작가가 얘기 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 같다.
단지 독자가 알수 있는 것은, 베이트먼이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점과, 그 태생적인 부유함으로 지금까지도 부유하다는 것, 무척 보기 좋은 직업을 가졌다는 것 쯤이다.
혹여, 그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말도 못할 상처를 입어서 정신에 문제가 생겼다던지, 또는 청소년기의 어떤 중요한 사건으로 인해 피에 집착하게 되었다든지, 그런 것은 조금도 알수 없다. 그리고 그 알수 없음은 대단한 공포이다.
그 어떤 가능성중에서도 살인의 이유중에 "아무 이유 없이 그러고 싶어서."라는 대답이 나온다는 것만큼 끔찍한 공포가 또 있을까.
무엇 때문에 미쳤어? 그냥 미쳤어, 그냥.

영화를 생각하고 본다면 큰 코 다칠 정도로 고어한 <아메리칸 사이코>. 19금을 달고 나온 것도 모자라, 판매금지까지 당한 문제작이다. 그러한 조치가 잘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어쩌면 이 책을 고를 독자를 위해 책장을 펼치기전, 왜 이 책이 그런 대우를 받아야만 했을까 생각해보시라고, 마음 단단히 먹는게 좋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책들보다도 잔혹한데, 이건 정말 상상 초월이어서, 고어물에 꽤 담담한 편인데도 읽다가 구토가 밀려올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 책이 가치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읽는데 이런 점 쯤은 염두해두고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 베이트먼과 그의 친구들은 긴 두권의 책 내내 시종일관 두서없는 잡담들을 늘어놓는다. 자기 말을 못해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어떨 때는 (아니, 꽤 자주-) 그들에게 대화란 남의 말을 듣기 위해서가 내 말을 늘어놓기 위한 것 같다. 책속의 모든 대화들이 공허하기 짝이 없다.
끊임없이 온갖 명품들과 상품들의 상표를 나열하고, 넥타이를 어떻게 메느냐, 이런 바지에는 어떤 양말을 신어야 하느냐가 업무보다 중요하고, 그닥 재밌게 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매일매일 하루 일과중 하나인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오늘 "패티 윈터스 쇼" 얘기, 사장님이라고는 부르나 대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수 없는 주인공(회사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이 저녁식사를 할 식당을 예약하는 전화같다.).
별 필요도 없는 얘기로 독자를 갑갑함에 미쳐버리게 하는 강박증은 후반으로 갈수록 더더욱 심해져, 패트릭 베이트먼이 "더" 미쳐가는 과정을 좀더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모든 행위의 공회전과 모든 가치의 상품화. 그리고 인간도 상품도 되지 못해 괴물이 되어버는 남자.
이 책이 극명하게 드러내는 두가지 사실들은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미치도록 공허해진다.

패트릭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가 드러내는 것은 순간적인 감정일뿐, 자신의 진짜 내면의 무언가에 대해서는 책에서 털어놓지 않는다. 왜 살인이 하고싶어졌는지, 왜 이렇게 망가져버렸는지, 그냥 함구해버리는 가운데, 딱 한장면, 패트릭이 울부짖으면서 "나도 사랑받고 싶었다고."라는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어쩌면 이 기나긴 이야기속에 감추어진 유일한 "진짜" 감정은 그게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가 느끼는 그 모든 감정이 어떤 것을 갈구하고 있는지, 그 자신도 모르기 때문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쉴세없이 나불대는 입 달린 명품 옷걸이같은 친구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보물상자 보 듯 자신을 활홀하게 바라보는 여자들.
패트릭이 그들을 옷 소재와 브랜드 이름으로 바라보듯, 그들 역시 패트릭을 그렇게 바라본다.
걸치고 있는 옷이 내가 되어버리는 기이한 현상.
패트릭의 어떤 친구가 말했듯이, "외형이 진짜 너"인 것이 되어버리는 지나친 상품화의 시대.
어떤 생각을 하고, 진짜 내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피상적이고 매정한 사람들.
패트릭은 이런 세상에 점점 더 미쳐가기도 했고, 이 세상을 더 미치게 만드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왜 인지 모르게,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몹시 슬퍼진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썰고 먹기까지 한 사이코 살인마인데도, 그가 밉고 죽여버리고 싶다기보다는 이런 쓰레기같은 인간조차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나 삶이 슬픈 것처럼. 누구에게나 세상이 가혹한 것처럼.
이 무지막지한 잔인한 행위들 속에 거대한 공허의 우물이 있었다.
어쩌다 빠져들었는데, 다시 위로 올라갈수도, 구해줄 사람도 없이, 계속 깊어지기만 하는 행위의 거대한 공허함이.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들이 있어서 힘겹기는 했지만, 책 자체는 무척 재밌었다.
아니, 그보다는 무척 잘 쓰여졌다고 보는 편이 좋겠다.
패트릭 베이트먼의 강박증을 보고있으려니 나도 코리안 사이코가 될 뻔했으니.
책을 읽고나니 여러가지 상념에 빠져들었는데, 그 어느 것도 답을 얻을수가 없었다. 아마 누구도 그 답을 알수는 없으리라.
초반에 작가가 첨부해놓은 토킹해즈의 노래 가삿말이 어쩌면 그 모든 상념들의 답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산산히 부서지는데 아무도 신경 쓰질 않네."

패트릭은 정말 살인이 좋아서 사이코 살인마가 된 것일까.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그 어느 것보다 흥분되기 때문이었을까.
왜 나는 그의 잔인무도한 살인 행위에서 욕망은 찾을수 있을 지언정, 성취감을 찾을수는 없었던 것일까. 왜 이 살인 행위들이 어떤 쇼핑 중독 여자가 마구잡이로 카드를 긁어놓고도 공허함에 시달리는 것과 비슷하게 보일까.
왜 이 모두가 삶의 무지막지한 지루함을 견디기 위한 행위처럼 보였을까.
무섭다. 소설도 무섭고, 이런 인간의 갚아룰 알 수 없는 감정의 늪이 무섭다.

p.s 1. 패트릭 베이트먼에게 어떤 여자가 "배트맨같은 호색한"이라고 부르던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영화를 이미 봤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패트릭은 자꾸 크리스찬 베일의 얼굴과 겹쳐보이더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 소설쪽이 훨씬 더 깊다. 무서울 정도로.

p.s 2. 그놈의 "양모 소재의"는 아마 책속에 적어도 100번은 등장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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