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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공장
이언 뱅크스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말벌공장]은 불길하고 기괴하며 엄청난 흡인력을 가진 壺爭 고딕 호러 소설이다.
이언 뱅크스의 명석하고 확신에 찬 필치는 그보다 두배나 더 나이를 먹은 중견 작가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창조성으로 가득차 있다.
놀랄정도의 만족감을 주는 소설이다.
-"더 파이낸셜 타임스"
소설적인 측면에서는 평범함의 극을 달린다고나 할까.
작가는 노골적인 표현과 불쾌하기 이를데 없는 플롯따위를 써서
시류에 영합하는 전위적인 작품을 쓸 작정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따지고 보면 [말벌 공장]의 존재 자체가 일종의 악의적인 농담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런던의 식자들을 농락해서
이런 쓰레기까지 문학 작품이라고 우러러 보도록 만들기 위한.
-"더 타임스"
"말벌공장"의 뒤 책 해설문을 보자면,
여러 미디어 매체들의 서평이 인용되어있는데,
저 위의 것은 극단적인 두가지 감상을 추린 것이다.
이소설을 보고 내린 서평들은 딱 반으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쓰레기" 또는 "근래 보기힘든 참신한 상상력"
둘중의 하나로 나뉜다.
이처럼 영국에서 출간당시에 꽤나 화재가 되었던 소설 "말벌 공장"은
스코트랜드의 한 섬의 몰락한 지주가족의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측량수치에 대한 편집증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인으로,
말도 안되는 논문을 써서 여기저기 보내보지만 언제나 퇴짜를 맞고,
심지어는 그걸 즐기는 사람이다.
이복형 에릭은 정신병자이다.
한때는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착하고 열정적이던 청년이었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고 미쳤다.
그는 동네 개들에게 불을 붙이는 것을 즐기고,
동네 아이들의 입에 구더기를 집어넣기도 한다.
주인공인 프랭크는 조용하고 혼자 있기를 즐기는 16세의 소년이다.
프랭크는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으며,
(가난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기인다운 사고 방식때문에.)
따라서 친구는 난쟁이 친구 제이미뿐이고,
어릴때 개에게 물려서 성불구가 되었고,
6살부터 8살 사이에 3명의 어린아이를 의도적으로 살해했다.
그는 여자를 끔찍히 싫어하고
"말벌공장"에 작은 동물들을 죽여 제단에 올려놓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춘 프랭크는 평범한 16세의 소년이다.
소설은 형 에릭이 정신병원에서 탈출하면서부터 시작되고,
소설 내내 에릭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에 대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그러나 프랭크나 아버지가 에릭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에릭의 광적인 행동을 두려워 할뿐이다.
이 광인 가족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믿고 사랑하고 있다.
프랭크가 만든 "말벌 공장"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프랭크가 믿는 신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말벌공장은 프랭크의 집 넓찍한 다락방에 있는데,
프랭크가 직접 만든 말벌 고문 구조물을 뜻한다.
"공장"에 살아있는 말벌을 집어넣고, 말벌이 어떤 죽음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프랭크는 미래를 점칠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장안의 작은 방에는 말벌이 죽을수 있는 갖가지 방법이 있다.
칼에 난자당해 산채로 말벌이 토막나는 방도 있고,
파리지옥풀이 있는 방도 있고, 염산이 있는 방도, 얼음에 얼어죽는 방도,
전기처형당하는 방도 있다.
공장에 말벌을 넣고 프랭크가 하는 일이란,
그 죽음을 즐기거나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아닌
그저 가만히 "감상"하는 것뿐이다.
뭐 전혀 혐오스러운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장면정도는 아주 토하고 싶을 정도로 끔찍하다.)
말벌을 고문하는 말벌 공장 자체가 끔찍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비단 프랭크 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한번쯤 저런 경험은 있지 않나.
나는 어릴때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개미 집을 끝까지 파해친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몇마리는 죽었을 것이다.
내가 한 그 행동들과 프랭크의 행동이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어렸다는 거고, 프랭크는 이미 나이가 든 사춘기의 소년이라는 점이다.
어린 아이들은 잔인하다.
모르기 때문에 잔인한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장난으로 살아있는 잠자리의 날개를 떼어 장난치기도 하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지렁이의 몸통을 반으로 갈라놓고 꿈틀대는 것을 보고 재밌어하기도 한다.
프랭크의 행동은 저런 느낌이다.
철이 없어서 잔인한 느낌.
어린 시절 거세당하고 다 큰 남자가 되지 못한 성적 미성숙의 스트레스를
소년 프랭크는 마치 보상이라도 받듯이, 어린아이적 발상으로 죽음과 상징을 즐긴다.
그는 사회에서 도태된 인물이었고,
자기자신조차 자기를 버리기 전에,
현실에 굳건히 서있는 자아세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프랭크가 아주 나쁜 아이인 것은 아니다.
절대로 애완동물은 죽이지 않고, 나름대로 가족을 사랑하기도 하고,
여자를 싫어하지만 막대하지도 않는다.
또한 우발적인 변덕으로 세번이나 살인을 저지르긴 했지만,
모두 완전범죄로 마무리 지을만큼 머리가 좋은 아이이기도 하다.
다만 자라지 못하는 정신적 불구가 된 인간일 뿐.
쓰레기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아주 괜찮았던 소설이었다.
장르로 말하자면 사이킥 호러 성장드라마이지만,
비위가 매우 약한 사람이 아니라면 읽어봄직하다.
그다지 무섭다거나 역겹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고,
책 읽는 내내 전체적인 분위기가 매우 음울하다는 느낌만 받았을 뿐이다.
게다가 소설 마지막의 충격적인 반전 또한 이 책의 매력으로,
나는 그 반전을 보고 나서 내가 뭔가 잘못 봤는지 알고 그 부분을 세번이나 다시 읽었다.
소설 내내 가장 큰 긴장감은 정신병자 형 "에릭"이 정신병원에서 탈출했고,
잘은 모르겠지만 조만간 집으로 돌아올거라는 불안감에서 온다.
그러나 반전은 그러한 예상을 뛰어넘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고,
다소 황당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급작스러운 반전은 또 아니었다.
소설 내내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나,
나는 거기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고,
정작 읽고 있던 나는 에릭이 언제 집에 돌아올까 조마조마한 생각뿐이었던 것이다.
마치, 이언 뱅크스는 내 머리 꼭대기위에서 관찰하듯이,
보기좋게 나를 속이고, 원하던 결말을 얻어낸다.
그래서 더더욱 매력적인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