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이옥용 옮김 / 동방미디어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오히려 굉장히 간단한데,
첫번째는 표지에 그려진 남자의 뒷모습이 마음에 들어서이고, 두번째는 작가의 이름 스펠이 마음에 들어서 이다.-_-;
(forsyth....이런 스펠 좋아한다.)

세가지 단편이 수록된 프레더릭 포사이드의 단편집.
세편다 개인적으로는 너무너무 괜찮았기 때문에 굉장히 마음에 드는 책이다.
하지만 다 읽고 났는데도, 표지에 써있는 "한 형사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말인지 잘 모르겠다.-_-;
책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


"베테랑" "도둑의 기술" "기적". 세작품 모두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베테랑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잠깐 단편들의 얘기를 좀 해볼까.


"베테랑"은, 한 중년의 남자가 길거리에서 매맞아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시작된다.
증인과 심증과 알리바이로는 용의자를 일단 잡아넣기는 했는데,
증인과 심증과 알리바이로는 범죄를 명확히 진단해 낼수가 없다.
모른다고 잡아떼면 그만이고, 증인이 잘못본거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확실하게 옭아맬 증거를 잡아야하는데, 이상하게도 명확한 증거가 아무것도 없다.
혼수상태에 빠진 피의자는 결국 죽어버리고, 이제는 폭행사건이 아니라, 살인사건이 되어버렸는데도,
수사는 묘하게 께름칙하다.

지갑도 잃어버리고, 죽은 사람의 신원이 어떤지도 모르는 상태라,
신문 1면기사에까지 피의자의 지인이나 가족을 찾는 공고를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그 넓은 런던에서, 아무도 그를 찾지 않는다.
사건을 수사하는 사람이나, 재판을 준비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심적으로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상태에서,
런던 최고의 변호사가 나서 이 썩어빠질 범죄자들을 변호하고 나섰는데,
변호사의 말발이 너무 화려한 나머지, 결국 그들은 풀려나게 된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하나 숨겨져 있는데,
혹시 읽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그 얘기는 하지 않겠다.

이 단편은, 죽어도 아무도 찾지 않는 중년남자의 쓸쓸한 죽음과,
확실한 증거없이 범인을 놓치고 마는 다소 부조리한 사회정의에 대한 한탄을 하게 만들고 나서,
뭔가 억울한 감정에 빠져있는 독자의 뒷통수를 친다.
그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다.


"도둑의 기술"은 유일하게 반전이 없는 단편이다.
35년동안 배우를 꿈꾸면서 35년동안 엑스트라만 한 중년남자가 있다.
꿈만 쫓아 살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재산도, 가족도 없다.
생활에 보탬이 되볼까 하고 어머니가 물려준 허름한 그림을 팔려고 내놓았는데,
사실은 이게 엄청난 액수를 받을수 있는 명화인데도 불구하고, 화랑의 부사장은 그가 미술쪽에 무지하다는 점을 이용해
아주 소량의 돈을 쥐어주고 사기를 친다.
이 사실을 아는 젊은 그림 감별사는 항의하려다가 회사에서 잘리고,
이 남자를 찾아내 컴퓨터 천재인 여자친구와 함께 복수를 모색한다는 내용이다.
잘 모르는 얘기가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게 얘기를 잘 풀어가고 있어서
이 단편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기적"은 유머감각까지 느껴지는 단편이다.
2차대전에서 일어난 미스테리하고 가슴벅찬 감동의 얘기를 들려주다가,
독자의 뒷통수를 후려갈기고 끝나버린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맥빠지는 단편일지도 모르지만,
현대사회에서 한번쯤이라도 불가사의한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기적이 어딨어?"라고 끝내는 듯한 메시지는
꽤 진실에 정통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반전은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나도 속았다!"라는 웃음.


페이크에 굉장히 능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소설 내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상적인 감정으로 몰아넣고, 뒷통수를 후려갈기는 듯한 엔딩은
거의 당혹스럽기까지 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독자는 작가가 의도한 대로 감정을 느낄수 밖에 없기때문에,
엔딩은 보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 정도로 통쾌하게 멍~해진다.
현실을 비교적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마음에 들었고,
작가가 경찰업무라던가, 미술관 운영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업무에 대한 묘사가 꽤 꼼꼼하고 급하게 진행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은 점들도 굉장히 마음에 든다.

첫번째로 읽은 프레더릭 포사이드의 단편집이었는데,
장편보다는 단편을 잘 쓰는 작가라고 하니까, 다음번에는 다른 단편도 꼭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베테랑"과 함께 "인디안 서머"도 같이 나왔던데, 다음에는 꼭 이걸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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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의 상자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스포일러 있음>

 

해냈다!!!!!!!!!!!!!!!!!!!!!!!!!!!!!!!!!!!!!!!
라는 말이 나왔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방금 마라톤 골인지점에 도달한 것처럼 보고나면 무척이나 피곤해지는 소설이다.
상,하 두권 합치면 거의 1100페이지가 넘어가는데다가
후반부의 숨막히는 전개는 가히 압도적이라고 할정도로 사람의 진을 빠지게 한다.
압도적이다. 이책은 정말 압도적이다.
이렇게까지 읽고나서 피곤한 소설은 없었다.


상자라는 지옥. 지옥이 담긴 상자.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열리는 순간 모두를 파멸시키는 상자.
"망량의 상자"라는 제목이 걸맞게
상자라는 말로 도배가 되어있는 책이다.
망량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있나?
아마도 거의 보통사람들은 나처럼 희미하고 허무한 느낌을 받을뿐, 정확히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할것이다.
망상이나, 망향이나, 망령, 망연자실, 망자....
뭐 이런것과 비슷한것을 떠올릴것이다.
일단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정의는 "도깨비"또는 "이매망량"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이런걸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었을것이다!


책에서 "망량"이라는 존재는 내가 단어의 뜻을 알기전에 단어의 이미지에서 받았던 느낌과 비슷하게 등장한다.
정체 모호하고 희미한, 그야말로 형태없는 무언가의 이름인데, 그걸 확실히 정의내릴수가 없다.
설화속의 "망량"은 아이같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시체를 파먹는 무시무시학 요괴이기도 하고,
단순히 사람에게 붙어서 부채질 하고 다니는 악동같은 요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어떤 귀신이다-라고 말할수 없는 형체도 알려지지 않은 모호한 악령의 형태이다.
책에서 주로 설명의 역활을 맡은 교고쿠도 역시 "망량"을 귀찮은 존재라고만 설명할뿐 무엇무엇이라 정확히 찝어 말하지 않는다.
교고쿠도는 소설 마지막에 이런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망량은 본래 늪에 살면서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사람을 현혹시키는 존재일세.
형태는 있어도 내용물은 없어. 무슨 짓을 하는 것도 아닐세.
현혹되는 것은 사람 쪽이지."


그래서 뭐가 어떻단 말인가?
무슨 짓을 하는 것도 아니라면, 요괴로 알려질 리가 필요도 없을텐데.
(말할 만한 거리가 있어야 소문을 타고 이름도 알려질테니.)

책을 다 읽고나서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나는 망량의 정체를 깨달았다.
누구의 마음속에나 다 존재하는 순간적인 광기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1초도 안되는 시간, 순간적으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무섭게도 비현실적인 광기.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옥상에서 아랫층을 내려다볼때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까?"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건, 단지 죽고싶어서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그게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 지하철을 기다리며 철로를 보고서는 "여기서 떨어지면 어떻게 되지?"라던가,
"앞에 있는 사람을 밀어버리면 어떻게 되지?"하는 순간적인 호기심이 들떄도 있을것이다.
아주 잠시 잠깐, 이성을 잃고 터져나오는 순간적인 광기-
그것이 "망량"의 정체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순간적인 광기를 이길수 있다.
마지막 교고쿠도의 "망량"에 대한 정의는 그렇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간적인 광기 자체는 악이 아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상상한다고 해서 경찰이 잡아가는 것은 아닌것 처럼.

하지만, 그 망량의 순간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정말 옥상에서 떨어지면 죽을지가 궁금해 떨어져 보거나,
지하철에서 사람을 밀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 사람을 밀어버린다면?
그때엔 "악"이 되는 것이다.

순간 자체에는 죄가 없되, 거기에 현혹되는 인간은 "악"이 되는 것이다.


내가 느낀 "망량"의 정의를 제대로 설명을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정체모호한 "망량"의 단어뿐만이 아니라,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매우 어렵다.

망량의 정체만큼이나 사건의 행방도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보고 난 다음에 확실히 정리되는 것도 아니고,
교고쿠도의 말대로 이 사건들은 "뒷맛이 깔끔하지 못하다".
의학지식이라던가, 전문용어도 꽤 나오기 때문에, 뒤쯤 가면 뇌가 터질것처럼 머릿속이 복잡다난해진다.


소설 전체적으로 네가지 사건이 벌어진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1. 가나코 살인미수사건

천사처럼 예쁘고 고귀한 14살의 소녀 가나코는 절친한 친구 요리코와 가출을 한다.
지하철을 기다리던중, 가나코는 철로로 떨어져 전차에 치이는 바람에 크게 다친다.
죽지 않았다. 그러나 가나코는 사경을 헤맬 정도로 크게 다친것이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았을때 이것은 자살임이 분명하지만,
가나코는 자살을 할 만큼 불행한 소녀는 아니었다.
자살일까, 아니면 타살일까?


2. 가나코 유괴사건

혼수상태에다가 온몸에 깁스를 하고 있는 가나코를 유괴하겠다는 예고장이 도착하고,
경찰의 살벌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나코가 사라졌다.
공기중에서 뿅! 사라져 버린 것처럼.


3. 상자교주 온바코

사이비인지, 아니면 진짜인지,
사람들의 망량을 거두어 들여 상자에 봉해넣는 온바코님이 있다.
대부분의 사이비교의 목적이 돈인데에 비해 온바코님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의 "망량"의 원인인 돈을 상자에 집어넣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청렴하게도 그 돈은 쓰지 않는다.
사이비일까, 진짜 일까?


4. 연쇄토막살인사건

가나코가 병원에 누워있을때 쯤 다른 곳에서는 소녀 토막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팔, 다리만 발견되기 때문에 신원을 알기도 힘들다.
이렇게 발견된 시체가 몇구.
대부분의 토막살인은 옮기기 불편할때 일어난다고 한다.
시체를 처리하기 곤란할때, 토막내서 자루나 상자에 담아놓는 형식인것이다.
그러나, 이 토막살인사건은 죽인 다음 처리하기 위해 잘라 상자에 담은 것이 아니라,
상자에 담기위해 잘랐다. 즉- 살아있는 상태에서 토막쳐버린 것이다.
이런 엽기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누구?



얼핏 사건들은 아무 관계 없어보인다.
독자들은 이 것이 뭔가 기묘한 운명처럼 엮여져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이코 범죄자가 저지른 두서없는 사건이라고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교고쿠도의 말대로 이사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그 말을 풀이하자면, 범인은 한 사람이 아니고, 사건도 동시다발적이 아닌,
마치 피라미드처럼 점진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네가지 사건이 모두 결과물인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관계에 있어서,
그래서 사건을 정리하기가 무척 어려운 것이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 두개를 읽고나니, 이 사람 소설의 특징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는 요괴 사건과도 같은 가면을 쓰고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규명한다.
얼핏 일본색이 짙은 요괴소설이라고 생각될수 있으나, 분위기만 그럴뿐,
언제나 철두철미하게 요괴의 정체를 부인하고 인간의 심리와 현실의 범죄를 강조한다.
그것은 참 잘 어울어져, 귀신나오는 소설처럼 뜬금없지도 않고, 범죄만 다룬 소설의 느낌처럼 딱딱하지 않다.
요괴적인 신비로운 분위기를 품고, 철저히 이성적인 소설인 것이다.
전혀 관련없을 듯한 소재들을 흩뿌려놓고, 묘하게도 잘 마무리 짓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작가이고,
소설들이 정말 미칠듯이 길지만, 묘하게도 군더더기는 하나도 없다.
그의 소설에서 사건을 전말을 설명하려면, 사건의 주요인물들의 기나긴 가족사까지 모두 설명해야만
사건 풀이가 가능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참 마음에 드는 작가이다.
교고쿠도 시리즈 다음편은 언제쯤 나오려나?

교고쿠도 시리즈 1편 "우부메의 여름"과 비교해 보자면,
우부메의 여름에 깔려있는 비장미는 조금 사그라 들었으나,
훨씬 유머넘치고 상식을 깨는 소설이었다.
시리즈에 늘 등장하는 교고쿠도와 아이들(?)에 대한 세부정보도 점점 쌓이니,
주인공들이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그래봤자 모두 30대 아저씨들이지만.)

그러나 지나친 분량과 후반부의 급박한 분위기와 용량이 매우 큰 설명때문에
소설을 다 보고나면 매우 거북해지고, 피곤하다.
(사건자체의 엽기적임도 있지만, 사실 그런 엽기보다 물고 물리는 관계를 듣다보면
매우 지치고 역겨워진다.)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긴 소설을 절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읽으라고 추천해주고 싶지 않다.

소설 후반부에서는 머릿속에서 "메모리 부족!!!"이라는 말이 깜빡대고,
뒤가 궁금함에도 불구하고 속이 메스꺼울정도로 피곤해졌다.

신비로운 그로테스크 소설.
"세상에 설명하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교고쿠도의 말처럼,
세상에는 이성으로써 다스릴수 없는 문제에도 원인과 결과가 있고 찬찬히 생각해보면 알수 있다.
하지만 아는 것이 나을까, 모르는 것이 나을까.
언제나 사건을 설명하기 앞서 "안듣는 것이 좋을걸세"라고 말하는 교고쿠도의 말처럼,
설명할수 있는 일도, 해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게 나은 사건들도 세상에는 참 많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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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지음, 오숙은 옮김 / 미래사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안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프랑켄슈타인"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어디서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를 접했을까.
내 기억을 떠올려보면, 프랑켄슈타인에 관한 제대로된 이야기를 본것은 중학교때인가 고등학교때 봤던 로버트드니로 주연의 영화였었는데,영화를 보기전에도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었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우리는 그동안 어디서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일까.
태어날때부터 자연히 알고 태어나는 것처럼, 모르는 것이 더 신기할 이야기 "프랑켄슈타인"...

이 책을 산것은 오로지 책이 예뻐서 인데,읽으면 읽을수록 참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작가 메리셸리가 어느 친한 사람들과의 모임(거의 소설가나 시인이나 뭐 그런사람들...)에서 서로 괴기소설을 써서 돌려보자고 누군가 제안해서고민끝에 만들어낸 소설이라고 한다.
그 모임에서 완성된 소설은 이 소설 하나 뿐이라고...

프랑켄슈타인은 공포소설이다.
그러나, 말초적인 공포가 아니라, 자아상실과 비극과 죄책감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은 무섭다기 보다는 슬프다.
다들 아는 것처럼, 박사 프랑켄슈타인은 젊은 시절 약간 정신나간듯한 광적인 열정으로 괴물을 만들어냈다.
죽은 자들의 시신조각을 모아 만든 이 괴물이 살아나자마자,프랑켄슈타인은 두려움에 떨며 그 괴물을 버린다.

모습은 끔찍하지만, 성질은 아기와 마찬가지인 괴물은 버려진 세상에서 혼자 힘으로 많은 것을 배워간다.
자기가 끔찍하게 추하다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동화될수 없다는 것,
원하는 것은 가질수 없다는 것,
그런 끔찍한 외향때문에 누구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것...
괴물이 얻은 인생의 지혜는 모두 슬픈 것 뿐이었다.
결국 자신의 반쪽을 원하지만,그것 역시 프랑켄슈타인 박사에 의해 갈갈이 찢겨버리고,
남은 것은 창조자에 대한 증오뿐이었고, 순진무구하던 괴물은 이제 정말 괴물이 되어버린다.

보는 내내 프랑켄슈타인박사가 얄미워서 내심 괴물이 프랑켄슈타인박사를 죽였으면 싶었지만,
증오심에 불타는 괴물이지만, 창조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죽음에도 괴물은 눈물을 흘린다.
만약 내가 괴물의 입장이라면,증오심을 품지 않을수 있을까.
세상에는 어둠과 경멸뿐인데도, 자기자신을 제어할수 있을까.

오래된 소설이지만, 시점의 변화나 담고 있는 메세지는 조금도 촌스럽지 않았다.
역시 오래된 공포소설이기 때문에,그 공포의 강도는 로맨틱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아...난 이런 로맨틱하게 극적인 소설이 좋단 말이지...

작가 메리셸리는 이 소설을 20대 초반에 완성했다고 하는데,
작가 프로필을 읽어보니, 참 기구하고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여자이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패미니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던 그녀는
이 소설에서 여자를 거치지 않고 태어나는 생명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단다.
게다가 그녀가 우려했던대로,
 인간의 몸을 거치지 않은 생명체가 태어날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현대에
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참 새로운 느낌이었다.
나이 어린 여자가 쓴 소설치고는 참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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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반짝 반짝 빛나는 상상력.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사랑할수 밖에 없는 이유중 가장 큰 것은 그 상상력이다.
다 큰 어른이 이런 귀여운 발상을 할수 있다는 것 자체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절대로 악인은 될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어쩌면 매번 이 사람은 이런 엉뚱하고도 귀여운 상상을 할수 있는걸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책 서두에 어릴때 얘기를 만드는 것이 너무 재밌어서,
그 얘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곤 했다는데,이 책은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좀 기이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단편 모음인데, 미사여구 없는 거침없는 표현과 빠른 전개로 읽는데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각각의 단편마다 전하고자한 메세지가 매우 분명했기 때문에 너무나 재밌었던 책이었다.
사회적인 풍자를 해놓은 단편도 있고,  읽다보면 너무 귀여워서 웃을수 밖에 없는 단편도 있고,
어쩐지 슬퍼지는 단편도 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매스미디어의 무서운 상술을 슬쩍 비꼬아놓은 "달착지근한 전체주의"와,
모든 가전제품이 주인에게 말을 거는 귀여운 상상으로 시작해서,
어쩐지 마음에 허전함을 남기며 끝나는 "내겐 너무 좋은 세상",
애완인간을 기르는 외계인의 시점에서 쓰여진,
유쾌하며 귀여운, 일종의 인간 사육법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나무가 인간에게 의사를 표현할수 있다는 상상력에서 비롯된 이야기 "말 없는 친구",
한 세상을 다루는 신들의 실습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어린 신들의 학교"
...이지만, 사실 다 재밌었다.
 
어린아이 다운 상상력, 미사여구를 생략한 발빠른 전개. 가벼우나 가볍지 않은 무게감.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참 재밌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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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공장
이언 뱅크스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말벌공장]은 불길하고 기괴하며 엄청난 흡인력을 가진 •壺爭 고딕 호러 소설이다.
이언 뱅크스의 명석하고 확신에 찬 필치는 그보다 두배나 더 나이를 먹은 중견 작가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창조성으로 가득차 있다.
놀랄정도의 만족감을 주는 소설이다.
-"더 파이낸셜 타임스"
 
소설적인 측면에서는 평범함의 극을 달린다고나 할까.
작가는 노골적인 표현과 불쾌하기 이를데 없는 플롯따위를 써서
시류에 영합하는 전위적인 작품을 쓸 작정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따지고 보면 [말벌 공장]의 존재 자체가 일종의 악의적인 농담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런던의 식자들을 농락해서
이런 쓰레기까지 문학 작품이라고 우러러 보도록 만들기 위한.
-"더 타임스"
 
 
"말벌공장"의 뒤 책 해설문을 보자면,
여러 미디어 매체들의 서평이 인용되어있는데,
저 위의 것은 극단적인 두가지 감상을 추린 것이다.
이소설을 보고 내린 서평들은 딱 반으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쓰레기" 또는 "근래 보기힘든 참신한 상상력"
둘중의 하나로 나뉜다.
 
이처럼 영국에서 출간당시에 꽤나 화재가 되었던 소설 "말벌 공장"은
스코트랜드의 한 섬의 몰락한 지주가족의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측량수치에 대한 편집증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인으로,
말도 안되는 논문을 써서 여기저기 보내보지만 언제나 퇴짜를 맞고,
심지어는 그걸 즐기는 사람이다.
 
이복형 에릭은 정신병자이다.
한때는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착하고 열정적이던 청년이었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고 미쳤다.
그는 동네 개들에게 불을 붙이는 것을 즐기고,
동네 아이들의 입에 구더기를 집어넣기도 한다.
 
주인공인 프랭크는 조용하고 혼자 있기를 즐기는 16세의 소년이다.
프랭크는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으며,
(가난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기인다운 사고 방식때문에.)
따라서 친구는 난쟁이 친구 제이미뿐이고,
어릴때 개에게 물려서 성불구가 되었고,
6살부터 8살 사이에 3명의 어린아이를 의도적으로 살해했다.
그는 여자를 끔찍히 싫어하고
"말벌공장"에  작은 동물들을 죽여 제단에 올려놓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춘 프랭크는 평범한 16세의 소년이다.
 
소설은 형 에릭이 정신병원에서 탈출하면서부터 시작되고,
소설 내내 에릭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에 대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그러나 프랭크나 아버지가 에릭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에릭의 광적인 행동을 두려워 할뿐이다.
이 광인 가족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믿고 사랑하고 있다.
 
프랭크가 만든 "말벌 공장"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프랭크가 믿는 신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말벌공장은  프랭크의 집 넓찍한 다락방에 있는데,
프랭크가 직접 만든 말벌 고문 구조물을 뜻한다.
"공장"에 살아있는 말벌을 집어넣고, 말벌이 어떤 죽음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프랭크는 미래를 점칠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장안의 작은 방에는 말벌이 죽을수 있는 갖가지 방법이 있다.
칼에 난자당해 산채로 말벌이 토막나는 방도 있고,
파리지옥풀이 있는 방도 있고, 염산이 있는 방도, 얼음에 얼어죽는 방도,
전기처형당하는 방도 있다.
공장에 말벌을 넣고 프랭크가 하는 일이란,
그 죽음을 즐기거나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아닌
그저 가만히 "감상"하는 것뿐이다.
 
뭐 전혀 혐오스러운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장면정도는 아주 토하고 싶을 정도로 끔찍하다.)
말벌을 고문하는 말벌 공장 자체가 끔찍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비단 프랭크 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한번쯤 저런 경험은 있지 않나.
나는 어릴때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개미 집을 끝까지 파해친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몇마리는 죽었을 것이다.
내가 한 그 행동들과 프랭크의 행동이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어렸다는 거고, 프랭크는 이미 나이가 든 사춘기의 소년이라는 점이다.
 
어린 아이들은 잔인하다. 
모르기 때문에 잔인한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장난으로 살아있는 잠자리의 날개를 떼어 장난치기도 하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지렁이의 몸통을 반으로 갈라놓고 꿈틀대는 것을 보고 재밌어하기도 한다.
프랭크의 행동은 저런 느낌이다.
 
철이 없어서 잔인한 느낌.
어린 시절 거세당하고 다 큰 남자가 되지 못한 성적 미성숙의 스트레스를
소년 프랭크는 마치 보상이라도 받듯이, 어린아이적 발상으로 죽음과 상징을 즐긴다.
그는 사회에서 도태된 인물이었고,
자기자신조차 자기를 버리기 전에,
현실에 굳건히 서있는 자아세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프랭크가 아주 나쁜 아이인 것은 아니다.
절대로 애완동물은 죽이지 않고, 나름대로 가족을 사랑하기도 하고,
여자를 싫어하지만 막대하지도 않는다.
또한 우발적인 변덕으로 세번이나 살인을 저지르긴 했지만,
모두 완전범죄로 마무리 지을만큼 머리가 좋은 아이이기도 하다.
다만 자라지 못하는 정신적 불구가 된 인간일 뿐.
 
쓰레기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아주 괜찮았던 소설이었다.
장르로 말하자면 사이킥 호러 성장드라마이지만,
비위가 매우 약한 사람이 아니라면 읽어봄직하다.
그다지 무섭다거나 역겹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고,
책 읽는 내내 전체적인 분위기가 매우 음울하다는 느낌만 받았을 뿐이다.
 
게다가 소설 마지막의 충격적인 반전 또한 이 책의 매력으로,
나는 그 반전을 보고 나서 내가 뭔가 잘못 봤는지 알고 그 부분을 세번이나 다시 읽었다.
소설 내내 가장 큰 긴장감은 정신병자 형 "에릭"이 정신병원에서 탈출했고,
잘은 모르겠지만 조만간 집으로 돌아올거라는 불안감에서 온다.
그러나 반전은 그러한 예상을 뛰어넘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고,
다소 황당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급작스러운 반전은 또 아니었다.
소설 내내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나,
나는 거기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고,
정작 읽고 있던 나는 에릭이 언제 집에 돌아올까 조마조마한 생각뿐이었던 것이다.
 
마치, 이언 뱅크스는 내 머리 꼭대기위에서 관찰하듯이,
보기좋게 나를 속이고, 원하던 결말을 얻어낸다.
그래서 더더욱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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