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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이옥용 옮김 / 동방미디어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오히려 굉장히 간단한데,
첫번째는 표지에 그려진 남자의 뒷모습이 마음에 들어서이고, 두번째는 작가의 이름 스펠이 마음에 들어서 이다.-_-;
(forsyth....이런 스펠 좋아한다.)
세가지 단편이 수록된 프레더릭 포사이드의 단편집.
세편다 개인적으로는 너무너무 괜찮았기 때문에 굉장히 마음에 드는 책이다.
하지만 다 읽고 났는데도, 표지에 써있는 "한 형사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말인지 잘 모르겠다.-_-;
책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
"베테랑" "도둑의 기술" "기적". 세작품 모두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베테랑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잠깐 단편들의 얘기를 좀 해볼까.
"베테랑"은, 한 중년의 남자가 길거리에서 매맞아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시작된다.
증인과 심증과 알리바이로는 용의자를 일단 잡아넣기는 했는데,
증인과 심증과 알리바이로는 범죄를 명확히 진단해 낼수가 없다.
모른다고 잡아떼면 그만이고, 증인이 잘못본거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확실하게 옭아맬 증거를 잡아야하는데, 이상하게도 명확한 증거가 아무것도 없다.
혼수상태에 빠진 피의자는 결국 죽어버리고, 이제는 폭행사건이 아니라, 살인사건이 되어버렸는데도,
수사는 묘하게 께름칙하다.
지갑도 잃어버리고, 죽은 사람의 신원이 어떤지도 모르는 상태라,
신문 1면기사에까지 피의자의 지인이나 가족을 찾는 공고를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그 넓은 런던에서, 아무도 그를 찾지 않는다.
사건을 수사하는 사람이나, 재판을 준비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심적으로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상태에서,
런던 최고의 변호사가 나서 이 썩어빠질 범죄자들을 변호하고 나섰는데,
변호사의 말발이 너무 화려한 나머지, 결국 그들은 풀려나게 된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하나 숨겨져 있는데,
혹시 읽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그 얘기는 하지 않겠다.
이 단편은, 죽어도 아무도 찾지 않는 중년남자의 쓸쓸한 죽음과,
확실한 증거없이 범인을 놓치고 마는 다소 부조리한 사회정의에 대한 한탄을 하게 만들고 나서,
뭔가 억울한 감정에 빠져있는 독자의 뒷통수를 친다.
그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다.
"도둑의 기술"은 유일하게 반전이 없는 단편이다.
35년동안 배우를 꿈꾸면서 35년동안 엑스트라만 한 중년남자가 있다.
꿈만 쫓아 살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재산도, 가족도 없다.
생활에 보탬이 되볼까 하고 어머니가 물려준 허름한 그림을 팔려고 내놓았는데,
사실은 이게 엄청난 액수를 받을수 있는 명화인데도 불구하고, 화랑의 부사장은 그가 미술쪽에 무지하다는 점을 이용해
아주 소량의 돈을 쥐어주고 사기를 친다.
이 사실을 아는 젊은 그림 감별사는 항의하려다가 회사에서 잘리고,
이 남자를 찾아내 컴퓨터 천재인 여자친구와 함께 복수를 모색한다는 내용이다.
잘 모르는 얘기가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게 얘기를 잘 풀어가고 있어서
이 단편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기적"은 유머감각까지 느껴지는 단편이다.
2차대전에서 일어난 미스테리하고 가슴벅찬 감동의 얘기를 들려주다가,
독자의 뒷통수를 후려갈기고 끝나버린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맥빠지는 단편일지도 모르지만,
현대사회에서 한번쯤이라도 불가사의한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기적이 어딨어?"라고 끝내는 듯한 메시지는
꽤 진실에 정통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반전은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나도 속았다!"라는 웃음.
페이크에 굉장히 능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소설 내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상적인 감정으로 몰아넣고, 뒷통수를 후려갈기는 듯한 엔딩은
거의 당혹스럽기까지 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독자는 작가가 의도한 대로 감정을 느낄수 밖에 없기때문에,
엔딩은 보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 정도로 통쾌하게 멍~해진다.
현실을 비교적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마음에 들었고,
작가가 경찰업무라던가, 미술관 운영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업무에 대한 묘사가 꽤 꼼꼼하고 급하게 진행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은 점들도 굉장히 마음에 든다.
첫번째로 읽은 프레더릭 포사이드의 단편집이었는데,
장편보다는 단편을 잘 쓰는 작가라고 하니까, 다음번에는 다른 단편도 꼭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베테랑"과 함께 "인디안 서머"도 같이 나왔던데, 다음에는 꼭 이걸 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