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영혼
필립 클로델 지음, 이세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개새끼도 성자도,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완전히 시커먼 것도 없고, 완전히 새하얀 것도 없어.
있는 건 회색뿐이야.
인간들도, 그들의 영혼도, 다 마찬가지지.
너도 회색 영혼이야.
우리 모두처럼 빼도박도 못할 회색이지.


필립 클로델-회색영혼 中..


배경은 세계 2차대전,
전쟁에서 조금 비껴나 피범벅이 되지 않은 군수물품을 만드는 한 마을에서,
열살짜리 소녀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꽃처럼 예뻐서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벨드주르(햇살처럼 예쁘다는 뜻)"는
어느날 차가운 강가에서 목이 졸린채 발견된다.
이 살인 사건은 조용한 마을에 파장을 일으킨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스러운 소녀의 죽음을 애도하지만,
이중에는 오랜만에 일어나는 큰 사건을 은근히 즐기는 사람도 있고,
무관심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소녀를 죽인 살인자의 흔적을 찾아돌아다니면서,
주인공 경찰은(이름이 안나온다.나왔던가?-_-;)
마을사람들의 과거 이야기와 상처와, 또 자신의 상처를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심증이 가는 범인이 한명,
탈영병이라는 이유만으로 살인 누명까지 쓴 어린 군인 두명,
어린 군인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가면서 우아하게 식사하는 잔인한 권력자 두명,
아이를 낳다가 죽은 주인공의 아내,
그리고 아내를 잃은 상처와 평생 싸워가는 경찰,
상냥하고 아름다웠으나 자살하고 만 여선생님,
결벽에 가깝게 청렴하고 냉철했으나, 사랑하던 사람들과의 사별로
인생을 가두어버린 전직 검사 한명....
이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와 상처까지 이야기 해주면서,
사건은 해결되기는 커녕 점점 보이지 않는 안개속으로 흩어져만 간다.

끝까지 사건의 전말은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를 죽였느냐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완벽히 악하지도 않고, 완벽히 선하지도 않은
그 두가지를 다 가진 회색의 영혼을 지녔다는 것이고,
사건 역시 그 알수 없는 회색빛이 되어 세월에서 잊혀진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어쩐지 공허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읽고 나면 선도 악도 아닌 인간의 본성에 마음이 고독해진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런 사실은 깨달을때마다 씁쓸한 기분을 안겨준다.
담배 한모금의 쓴맛.
바로 그런 느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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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메리의 아기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7
아이라 레빈 지음, 최운권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공포영화 경고문구 중에서 "노약자, 임산부는 관람을 피해달라"는 얘기가 있다.
이 소설처럼 그말이 잘 어울리는 소설도 없을 것이다.
진정 임산부로서는 무시무시할수 밖에 없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소설의 영화판 "악마의 씨"가 개봉했을 때는
많은 여자들이 병원에 가서 악마의 아이를 임신한 것 같다고 두려움을 털어놓았다고 하니까.

지난번에 우연히 산 소설 "뒤마 클럽"은 뒤늦게 알았지만,
로만폴란스키의 "나인스게이츠"의 원작이었는데,
이 책이 영화화 된 "악마의 씨" 역시 로만폴란스키의 영화이니,
이걸 우연이라고 불러야할지 잠재의식이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다.
영화는 하도 예전에 봐서 대충의 이야기만 기억나는데,
그래도 소설과는 좀 달랐던 듯 싶다.
(소설쪽이 더더욱 재밌음.)

평범한 젊은 여자 로즈메리와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인 그녀의 남편 가이가
꿈에 그리던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사오기 전에 이 아파트의 무시무시한 과거전적에 관한 얘기를 들었으나,
아파트 자체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으니 그런건 어느 아파트에나 있을 법한 소문으로 넘겨버린
이 두 부부에게는 아직 아이가 없었다.
로즈메리는 아이를 갖고 싶지만, 남편의 직업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임신을 미뤄왔던 것이다.

우연히 세탁실에서 알게된 자기 나이 또래의 여자와 친구가 된 로즈메리는
얼마후 그녀의 알수 없는 자살을 목격한다.
그녀는 창녀 출신에 먀악중독자였으나, 자애로운 노부부에 의해
새사람이 되서 행복하다고 몇일전에 로즈메리에게 말했는데 말이다.
그 사건 이후로 로즈메리의 평온한 나날이 점점 변해가기 시작한다.
남편 가이에게 좋은 배역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부부는 아파트를 꾸미는 재미에 행복하기 그지없다.

강간을 당하는 꿈을 꾸고 일어난 날,
로즈메리는 실제로 남편에게 강간 비슷한 걸 당했다는 걸 알고
기분이 상해 잠시 다른 곳으로 떠나있는다.
그리고 그날 밤 일로 그녀는 아이를 갖게 된다.
너무나 갖고 싶었던 아이.
이웃에 사는 친절한 노부부의 너무나 섬세한 보살핌 아래
로즈메리는 아이를 낳을 꿈으로 부풀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임신을 한 로즈메리는 점점 살이빠지고 안색이 초췌해지기 시작한다.

스토리 얘기는 여기까지 해야겠다.

한번 잡은 순간 놓을수가 없어서 일해야하는 것도 내팽게치고 봤다.
그만큼 흥미진진하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넘치는 소설이었다.
미스테리 소설이라기보다는 오컬트 사탄주의 소설이라고 부르는 편이 좋겠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많은 공포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악마의 씨를 밴 여자의 이야기라는 어찌보면 황당무계한 이야기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흔히 겪을수 있는 공포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만약, 나를 둘러싼 세상사람들이 나만 빼놓고 전부 한통속이라면?
귀찮을 정도로 친절하며 남의 일에 관심이 많고,
보답을 원치않는 보살핌을 아끼지 않는 노인들은?
성공을 위해서 라면 자기 아이도 팔것 같은 남자들의 출세욕은?
임신한 여자의 10달간 지속되는 "내 아이가 혹시 기형아가 아닐까"하는 불안감은?
임신중독증이나 임신우울증같은 임신 합병증(?)에 대한 불안감은?
또는 처녀들이 갖는 임신에 대한 공포심은 또 어떤가?

작가는 이 오컬트 소설안에서 수없이 많은 일상의 공포를 털어놓는다.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본 공포심 아닐까.
그렇기때문에 한사건 한사건이 구구절절히 소름끼치게 와닿았고,
모든 사건이 원만히 해결되는 "대단원의 막"을 성대하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보기에는 "그리로 가면 안돼!"라고 외치고 싶었던
점점 더 검은 암흑으로 파고 들어가는 엔딩도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책값은 비록 4천원이었지만, 4천만원의 재미를 얻은,
개인적으로는 양쪽 엄지손가락을 다 들어주고 싶은 정말 정말 엄청나게 재밌는 소설이었다.
단 한페이지도 군더더기가 없으며 깔끔하고 흥미진진하다.

누구나에게 꼭 한번 읽어보라고 강추!!!!!!!!!!!!하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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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키스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0
아이라 레빈 지음, 김석환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첫번째 여자는 갓 19살이 된 소녀같은 여자였다.
이 여자는 냉정한 아버지의 사랑을 못받고 자라나, 파더 컴플렉스가 있었고, 뜻하지않은 임신을 하자 온갖 두려움에 떨다가, 결혼하자는 말에 세상에서 제일 기쁜 신부가 되었다.

두번째 여자는 열정적이었다.
어느 정도 자기 생각도 있었고, 동생의 어이없는 자살 소식에 의아해 하며, 직접 범인을 알아내려고 사건에 휘말리기도했었다.

세번째 여자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에 대한, 아니 사랑에 대한 묘한 두려움이 있었고, 친절하게 다가오는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면서도 불편해했다.

세 여자는 대 기업 회장의 세 딸로,
주인공이 작업들어간 여자들이 되겠다.

주인공은 가진건 멋들어진 외모와 회전빠른 두뇌밖에 없는 가난한 남자이다.
어린 시절부터 무능력한 아버지때문에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리고 자신도 그런 아버지를 겪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잘 사는 방법이란 돈많은 여자를 꿰차는 것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그는 대기업의 막내딸을 꼬시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가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고,
임신해서 결혼하자고 조르는 여자친구를 죽여버리게 되고,
둘째 딸을 꼬시지만, 그녀가 그 사건의 뒷조사를 해서 사실을 거의 알아버려서,
또 죽이게 되고,
마지막으로 장녀를 꼬셔 결혼 목전까지 가게된다.

아이라 레빈의 처녀작이라는 "죽음의 키스"는 그가 23살때 쓴 소설이라고 한다.
살인자의 정체를 처음부터 밝히고 쓰고 있기 때문에,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범죄소설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머리 좋은 남자의 치밀한 완전 범죄 계획은 잘 만들어진 도자기처럼 정교하며,
사건을 풀어가는 연출력 또한,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소설보다도 숨막히게 스릴있다.
"로즈메리의 아기"에서 느꼈던 묘하게 빗대어놓은 비판의식이나 풍자로
무언가 생각할 여지를 남겨놓은 것 역시 이 소설에서도 느낄수 있었다.
보고난 후에 정말이지, 더럽게 재밌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라 레빈의 두권의 소설을 보고 나서 느낀건데,
이 사람의 소설의 결말은 참 특이하다.
사건이 완벽하게 다 해결되었는데도 항상 뒷 이야기가 걱정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천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은...

현실에서 저런 남자가 내 주위에 있다면 어떨까.
재력을 가진 여자들만 골라서 상대하는 사람.
여자의 임신을 성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물론 저런 사람이 있다면 분명 개새끼 부류겠지만,
소설이니 극단적으로 범죄까지 몰고가는 데다가 여자를 이용해먹고 버리는 점만 아니라면,
개인적으로 나는 저런 사람, 매력있다.
적어도 식물원의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는 식물같은 사람의 아무것도 바랄것 없는 조용한 인생보다는,
타죽을 줄 알면서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같은 사람의 인생이 훨씬 정성들인 인생이 아닐까.

태양을 향해 돌진하는 파에톤에게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말고는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불길에 타 죽을 걱정보다도, 태양 자체가 뿜어내는 화려한 불길에 대한 욕망이 우선이다.
그것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이다.
파에톤 컴플렉스에 휩싸인 이 남자 버디를 보면서,
이 남자가 밉고 재수없고 죽어야할 쓰레기같은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은 것은,
방식이 잘못되었을 뿐이지, 목숨을 걸고 무언가에 뛰어들줄 아는 인간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무언가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
의지라는 것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좋다.


독자로 하여금 범인의 살인계획에 동참하여 언제쯤 사건이 터지나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면서,
그의 계획이 들키지 않게 범죄에 동행하는 공범자로 만드는,
그야말로 멋진 소설이었다.
비슷한 범죄(?)류의 소설인 빠뜨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만큼이나 재밌었다.

올해의 최고의 수확이라면 나는 단연 아이라 레빈의 두 소설을 읽은 것이라고 하겠다.
정말 한페이지도 버릴 것 없이 정교하며, 치밀하고, 밀도있다.
특히 "죽음의 키스"같은 경우에는 "손에 땀을 쥐는"이라는 말이
이 소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은 기분마저 느끼게 만든다.
어째서 아이라 레빈의 다른 소설은 들어오지 않을까.
스텝포드 와이프라면 영화도 나왔으니 한번쯤 나올만도 한데...
(사실 스텝포드 와이프는 영화를 봐서 내용도 다 알지만 소설로 보면 완전 박진감 넘칠 것 같다.)
다른 소설들은 언제쯤 들어올수 있을까.
내가 죽기 전에는 들어올까.
어째서 출판사에서는 이 작가를 건들지 않는 것일까.
요즘 인기 좋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보다 오천배정도는 재밌고,
댄 브라운의 소설보다 일억배정도 스릴이 넘치는데 말이다.

추리나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백두번정도 강추해도 모자르지 않을,
초특급으로 스릴있는 소설이다.
강추, 강추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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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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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을 학살한 아버지의 이야기"
...라고 하면 참 자극적인 소개가 되겠지만,(사실 나도 그런 문구에 혹해서 샀으니..)
실상은 그다지 자극적인 소설은 아니었다.

소설은 픽션. 실화가 포함된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이라는 말이 앞에 붙지만,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논픽션 소설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아니라, 실화인 것이다.
작가가 소설안으로 뛰어들어서 공백으로 남은 미스테리 부분을 추측해가면서,(새 얘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가족을 학살한 비정한 아버지 장클로드 로망의 인생을 쫓는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면서 낼까말까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이런 실제 범죄자를 다룬 책은 마치 그들의 범죄자체를
옹호하려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서 작가는 최대한의 감정은 자제하고, 장클로드 로망과 인간적인 유대를 나누지 않고 있다.

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와 두 아이들과 부모를 죽였다.
그리고 집에 불을 지르고 자신도 죽으려는 찰나에, 모두 죽은 상태에서 혼자 살아남는다.
이 남자가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한 이유는,
그의 거짓말이 들통이 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깟 거짓말좀 했다고 사람을 죽이나?"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이 거짓말이 상습적으로 18년동안 이루어져서,
그는 반평생을  거짓말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다정한 아내, 귀여운 아이들, 안정적인 직장,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가정.
이 모든 것이 그가 만든 얇디 얇은 행복의 외피이다.
처음에는 우발적으로, 그리고 나서는 거짓말이 불려져서,
그는 직장을 위조하고, 가까운 친인척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 돈을 구하고,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성실하며 착하고 금욕적인 아버지를 가장했다.
더이상 돈을 구할수 없을 시기가 다가오고, 그는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이지만, 그 사랑하는 가족들중에서 그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그가 저지른 죄의 몫이다.
동정할 가치없고, 변명할 필요도 없는, 그가 자신에게 만든 무덤인 것이다.

작가는 거짓말이야 말로 순수한 악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거짓말을 하고 살아가지만,
자신의 인생자체를 뒤흔들정도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흔치않다.
나도 가끔씩 자신의 인생 자체를 거짓말 하는 사람들을 본다.
딱히 거짓말을 할 필요없는 것에도 거짓말로 덧붙이고, 인생자체를 거짓말로 포장하는 사람들.
그들의 거짓말은 거의 질병에 가깝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평범한 자기자신을 용납할수 없다는 듯이.

이 병적인 거짓말장이의 인생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던 이유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중에서도, 자기자신을 가장 아낄수 밖에 없는
당연한 인간의 이기심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을 보면서 영화 <어둠속의 댄서>를 떠올렸다.
아마도 그 조용하고 건조한 분위기와 감정이 배제된 살인자의 재판장면에서 그영화를 떠올렸던 것 같다.

감정이 실려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는 점을 빼고는
꽤 멋진 소설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고, 부모의 집으로 찾아가 부모를 죽이고 난후
자기자신에게는 한참의 유예기간을 두고, 살인후에 하루 이상이 지난후에 자기자신을 죽이려 했던
장클로드 로망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죽이고도,
결국 인간은 자기자신의 죽음에 더더욱 감상적일수 밖에 없다는 가슴아픈 인간의 이기심.

그의 인생의 절반이 완전히 거짓말이었던 것 처럼,
이 글을 쓰고 있는 엠마뉘엘 카레르와 그의 재판장에 있던 사람 모두와
이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모두 그의 사기에 다시한번 걸려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병적인 거짓말쟁이로,
그의 살해동기와 인생전체 역시 그가 꾸며놓은 거짓말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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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가씨가 부모님을 만났을 때는 둘 다 눈도 멀고 감정도 멀었을 거야.
우리가 전에 지니고 살았던 감정.
과거에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이 없으면 감정도 다른 것이 되어버려.
어떻게 그렇게 될지는 모르고 다른 무엇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가씨는 우리가 눈이 멀었기 떄문에 죽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바로 그게 그 얘기야.
만에 하나 내가 눈이 먼다면, 내가 눈이 먼 다음에 다른 사람이 된다면,
내가 어떻게그이를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무슨 감정으로 사랑을 할까.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는 폐쇄공포를 느꼈다.
책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띄어쓰기가 거의 있지 않고
게다가 대화체든 서술체든 뭐든 간에, 마침표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한명도 이름이 나오지 않고,
한페이지마다 공간이 거의 없는 공간감에 완전히 질려버려서 갑갑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서 이 소설이 더더욱 긴장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주제 사라마구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라던데, 워낙 상에대한 개념이 별로 없어서인지,
상받은 작가라고 딱히 좋았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괜히 상탄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내게 이 책을 평가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감히 명작이라고 말하고싶다.
읽기 힘든 많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매우 잘 읽히며, 쉽고도 깊이있게 결론을 이끌어내는 이 작가에게
나는 완전히 반해버렸다.

불의의 사고가 있었거나, 선천적인 장애가 있지 않는 한,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오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오감중에서 우리가 가장 의지하고 있는 것은 시각.
보는 것에 따라서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고, 느끼는 것도 달라지고, 냄새와 들리는 것도 달라진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감각중 하나인 시각이 사라진 세상.
그것도 나 혼자 눈이 멀어버린게 아니라, 전 사회가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한 남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에 횡단보도에 차를 세워놓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다.
이것은 급작스러운 전염병으로, 이 남자를 시작으로,
하룻밤 사이에 일곱명이 이 남자로인해 눈이 멀어버리며,
하루 만에 오십명이 눈이 멀어버린다.
일명 백색병(눈앞에 깜깜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얘지므로-)이라고 불뤼우는
처음 발견된 맹인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을 일단 격리하느라 폐쇄된 정신병원에 수용시키는데,
처음 수용된 일곱사람이 이 소설의 주된 주인공이라고 할수 있겠다.
두번째로 눈이 먼 안과의사와 아직 눈이 멀지 않았지만, 남편을 따라 병원에 수용된 의사의 아내.
사흘만에 병원은 눈먼 사람들로 꽉 차버리고,
거의 삼백명에 가까운 사람들중에 앞을 볼수 있는 사람은 의사의 아내뿐이다.

이 작은 소집단은 불합리한 사회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소심한 집단 이기주의와 남의 위에 군림하며 남의 것을 약탈하는 범죄집단,
자기 안위만 살피며 곤경에 빠진 대다수의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는 군인으로 대변되는 권력자들.
모두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앞을 볼수 있는 의사의 아내만이
이런 생지옥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기억해놓는다.
청소를 할수 없고, 제대로 씻을수도 없으니
병원안은 온통 사람의 구역질나는 냄새와 사람의 오물로 가득차가고,
처음 그들이 가졌던 인간다운 자부심이나 수치심은 사라지고, 오직 원초적인 본능만 남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유일하게 눈을 뜰수 있는 여자는 가슴 아파한다.
여러 우여곡절끝에 병원에서 탈출을 한 사람들은
모두 눈이 멀어버린 세상에 도달한다.
거리 가득한 쓰레기와 시체, 시체를 파먹는 개, 고양이와 거대하게 자라난 쥐들,
먹을 것을 찾을수 없는 아수라장이 된 도시와, 이제 더이상 인간으로 불뤼울수 없는 눈먼 동물들.

이 끔찍한 자연재해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래도 "인간애"이다.
이 생지옥속에서도 인간이 인간다울수 있는 것은 인간다운 수치심과 인간애인 것이다.
눈먼자들을 위해서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는 의사의 아내는,
비록 본능만 남아버린 인간이 역겹고 치욕스러울 지라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지치지 않을때까지 그들을 돌봐주는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준다.
마치 예수처럼, 인간의 죄를 뒤집어쓰고 희생량이 되는 예수처럼.
내게는 이 소설이 마치 현실처럼 다가오는 무서운 얘기였고, 그러면서도 슬펐고,
그러면서도 신나고 즐거웠으며, 울고싶을 정도로 절망적이었고
소설을 마치면서 가슴속을 꽉 채우는 감동을 받았다.

우리는 살면서 좀더 나은 것, 좀더 나은 생활을 바라고 살아가지만,
정작 중요한 우리가 인간이며 인간다운 수치심을 가지고 살아가며,
또 현재 우리가 가진 것 만으로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모두 눈이 멀어버린 사회.
돈도 필요없고, 집도, 여가도, 예술도, 과학도, 심지어는 감정도 필요없다.
단지 필요한 것은 하루하루 먹고살 식량과 하룻밤 찬 이슬을 맞고 자지 않아도 될 지붕달린 피신처밖에 없다.
이것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 동물의 삶이다.
이 극단적인 상황을 그리면서 주제사라마구는 외치고 있는 것이다.
"현재에 감사하라."라고.

만화 "드레곤 헤드"와 영화 "28일 후"와 비슷한 재해로 인한 인간의 종말을 얘기하고 있으나,
눈먼자들의 도시는 더 따뜻하고 심도깊었었다.
개인적으로 깨달음도 많이 얻은 책이었고, 재밌었기 때문에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이 사람의 다른 책들도 반드시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책을 다 보고 난 다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 읽기를 아주 혐오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이 책을 재미없다고 할수 있을까?
아줌마가 바라보는 역겨운 사회를 향한 따뜻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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