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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평점 :
"일가족을 학살한 아버지의 이야기"
...라고 하면 참 자극적인 소개가 되겠지만,(사실 나도 그런 문구에 혹해서 샀으니..)
실상은 그다지 자극적인 소설은 아니었다.
소설은 픽션. 실화가 포함된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이라는 말이 앞에 붙지만,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논픽션 소설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아니라, 실화인 것이다.
작가가 소설안으로 뛰어들어서 공백으로 남은 미스테리 부분을 추측해가면서,(새 얘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가족을 학살한 비정한 아버지 장클로드 로망의 인생을 쫓는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면서 낼까말까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이런 실제 범죄자를 다룬 책은 마치 그들의 범죄자체를
옹호하려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서 작가는 최대한의 감정은 자제하고, 장클로드 로망과 인간적인 유대를 나누지 않고 있다.
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와 두 아이들과 부모를 죽였다.
그리고 집에 불을 지르고 자신도 죽으려는 찰나에, 모두 죽은 상태에서 혼자 살아남는다.
이 남자가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한 이유는,
그의 거짓말이 들통이 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깟 거짓말좀 했다고 사람을 죽이나?"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이 거짓말이 상습적으로 18년동안 이루어져서,
그는 반평생을 거짓말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다정한 아내, 귀여운 아이들, 안정적인 직장,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가정.
이 모든 것이 그가 만든 얇디 얇은 행복의 외피이다.
처음에는 우발적으로, 그리고 나서는 거짓말이 불려져서,
그는 직장을 위조하고, 가까운 친인척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 돈을 구하고,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성실하며 착하고 금욕적인 아버지를 가장했다.
더이상 돈을 구할수 없을 시기가 다가오고, 그는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이지만, 그 사랑하는 가족들중에서 그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그가 저지른 죄의 몫이다.
동정할 가치없고, 변명할 필요도 없는, 그가 자신에게 만든 무덤인 것이다.
작가는 거짓말이야 말로 순수한 악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거짓말을 하고 살아가지만,
자신의 인생자체를 뒤흔들정도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흔치않다.
나도 가끔씩 자신의 인생 자체를 거짓말 하는 사람들을 본다.
딱히 거짓말을 할 필요없는 것에도 거짓말로 덧붙이고, 인생자체를 거짓말로 포장하는 사람들.
그들의 거짓말은 거의 질병에 가깝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평범한 자기자신을 용납할수 없다는 듯이.
이 병적인 거짓말장이의 인생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던 이유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중에서도, 자기자신을 가장 아낄수 밖에 없는
당연한 인간의 이기심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을 보면서 영화 <어둠속의 댄서>를 떠올렸다.
아마도 그 조용하고 건조한 분위기와 감정이 배제된 살인자의 재판장면에서 그영화를 떠올렸던 것 같다.
감정이 실려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는 점을 빼고는
꽤 멋진 소설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고, 부모의 집으로 찾아가 부모를 죽이고 난후
자기자신에게는 한참의 유예기간을 두고, 살인후에 하루 이상이 지난후에 자기자신을 죽이려 했던
장클로드 로망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죽이고도,
결국 인간은 자기자신의 죽음에 더더욱 감상적일수 밖에 없다는 가슴아픈 인간의 이기심.
그의 인생의 절반이 완전히 거짓말이었던 것 처럼,
이 글을 쓰고 있는 엠마뉘엘 카레르와 그의 재판장에 있던 사람 모두와
이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모두 그의 사기에 다시한번 걸려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병적인 거짓말쟁이로,
그의 살해동기와 인생전체 역시 그가 꾸며놓은 거짓말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