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끝나다니." 모리스가 흐느꼈다. "이렇게 끝나다니."

"내가 사랑하는 건 정말로 에이다 쪽이야."

클라이브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모리스는 자기에 앉아 입가를 훔치며 말했다.

 

"네가 알아서 해. 난 끝났어."

 

-E.M. 포스터 "모리스"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들을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이별의 말.

"네가 알아서 해. 난 끝났어."

여전히 가지고 있는 사람과, 이제 그 감정은 죽어버린 마른 꽃과 같이 혐오스러워 진 사람의 이야기.

모든 것이 무효화 되고, 모든 것이 단순한 한때의 치기가 되어버리는,

그래서 아직 진행중인 사람을 무력화 시키고 유치하다 깔보는 듯한 그런 말.

 

 

난 끝났어.

(네가 어떤지 관심없지만,) 난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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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E. M. 포스터 전집 2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있어 영국은 꿈의 나라이다.
피터팬의 네버랜드 처럼, 모든 것이 나의 꿈속의 아련한 이야기처럼 존재하지만 현실에는 없을것같은 동경의 나라가
나에게 있어서는 영국인 것이다.
딱 무엇이라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다.
신사적이며 귀족적이지만, 조금은 신랄하고 베베꼬인 지적인 악랄과
특별한 까닭없이 우울하고 우중충한 이미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고풍스러운 영국소설에 대한 애착이 심한 편이니, 그 점 염두해두고 글을 읽어주신다면 좋겠다.


이 책은 비교적 평범하게 자라온 영국 중상류층의 젊은이 모리스가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지만,
사실, 거의 초반부터 모리스의 성정체성은 정해져 있었다.
다만, 모리스 자신이 뒤늦게 깨달았을뿐.


정확히도 귀족적인 루트를 따라서 살아온 모리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할 집안의 가장이고, 학교에서는 특별히 공부를 잘하거나 특별히 운동을 잘하거나
특별히 유난한 성격을 가지지도 않은 그저그런 학생 "모리스 홀".
케임브릿지 대학을 들어가 우연히 알게된 선배에게서 알수 없는 동경을 느끼고,
어떻게든 그의 보헤미안 적인 취향을 맞추려 성격을 개조해볼까 싶기도하면서 주위를 맴돌던중,
선배의 방에서 클라이브 더럼을 만나게 되고, 둘의 사이는 절친한 친구로 발전하다가
결국, 클라이브의 고백으로 둘은 연인사이로 또다시 발전한다.

지적이며 몽상가적인 클라이브와 현실적이고 정확히 "남자같은" 모리스.
서로 다른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끼고, 모리스는 클라이브의 몽상적인 의견을 동경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사람의 관계를 이끌어 가는 것은 클라이브였다.
환상과도 같은 플라토닉한 우정을 남모르게 강요하고 있던 것은 클라이브.
모리스는 그의 취향을 동경하여 따라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모리스에게 클라이브는 자신의 지위를 버리고 생명까지 버릴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다가 클라이브가 변한다.
어째서 변했냐고 말한다면, 그냥 시간이 지나자 변해버린 것이다.
여성혐오에 가까운 관점을 가지고 있던 클라이브가 여자에게서 매력을 느끼게 되고,
그전에 모리스에게 느꼈던 애정은 역겨운 감정으로 변해가게 된다.
아마도 클라이브는, 동성애를 느낀 것이아니라 동경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의 철학자와 그들의 미소년들에게 있었던 소년애에 대한 동경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청소년시절, 모리스가 도서관에 앉아 그리스의 음란한 동성애 시를 읽으며 남몰래 얼굴을 붉혔던 것을
클라이브가 알았더라면, 음란하다 그를 욕하지 않았을까.

 


클라이브의 변심으로 모리스는 방황하게 된다.
클라이브가 어느순간 성정체성이 바뀌었던 것처럼,
모리스 역시 나이가 차게 되면 여자를 좋아할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심리 치료도 받아보지만 별 효력은 없다.
클라이브가 결혼한다는 가슴아픈 소식이 전해져오고, 클라이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갔던
클라이브의 저택에서 하인 알렉 스커더를 만나게 된다.
참기 힘든 욕망에 괴로워하던 밤, 사다리를 타고 알렉이 모리스에게 다가온다.


클라이브와의 정신적인 데에만 심취해버린 플라토닉한 사랑과 다르게
알렉과의 사랑은 처음부터 육체적인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모리스가 알렉을 만나게 된 이유는 단지 "자기 위해서" 인것이다.
곧 아르헨티나로 떠나려는 알렉은 모리스를 위해 인생의 계획을 바꾸게 되고,
이 사실을 안 클라이브는 아직도 그시절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는 모리스를 질책하며,
게다가 하필이면 하인과 사랑에 빠진 모리스를 경멸하면서 소설은 마무리 짓는다.

 

정상적이고 현실적인 어른이 되어버린 클라이브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클라이브는 얄밉다.
자기 감정에 충실할줄 아는, 그래서 비교적 솔직한 모리스와는 다르게,
클라이브는 그가 이전에 동성애를 경험해 본적이 있든, 아니든간에,
어딘지 얄밉게도 자기중심적이었고, 결국은 변덕스러웠다.
자기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을 모리스에게 강요하고,
그를 배신한 후에 그가 모리스에게 빨리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서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 역시,
그렇게 하면 자신이 배신한 댓가를 갚을수 있고, 또 그 기억들이 영원히 뭍혀져 버리길 바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나온 행동들이었기 때문이다.
절친한 친구가 어떤 상황에 빠져있는지도 모르는 채,

그는 모리스와 나누었던 사랑과 기억을 창피해하고 있었다.


소설이 쓰여졌던 시대에,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간주하고 치료하려고 했으며, 감옥에 가두기도 했던 풍경들은
지금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모리스는 선천적으로 게이이다.
그것을 뜯어고치려고 하는 것은 남의 인생에 쓸데없는 참견이며, 그의 성향이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오만이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나는 그런게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똑같이 태어나 똑같은 인생을 사는게 아니듯,
초코렛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초코렛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듯,
그건 남에게 어떤 특별한 시선이나 차별을 받을 필요없는  단순한 개인적인 취향이고 인생의 단면이다.
책 후반에 E.M 포스터 자신의 입으로 말한 설명서에,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은 대중이 동성애와 관련해서 정말로 싫어하는 것은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해야한다는 사실이라는 점이다."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정체성을 찾아가는 게이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랑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누구나 어느정도 공감은 할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지적이고 얄미운, 사랑에 있어서도 우정에 있어서도 자기 입장만 고수하는 클라이브나,
수치심을 무릎쓰고서라도,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려하는 모리스나,
솔직하게 다가와 동등한 입장에 서고 싶은 알렉이나,
어느 사랑에나 그런 사람들과 그런 모습들은 다 존재하니까.

결국은 알렉과 모리스의 해피엔딩으로 책이 끝나지만,
당시 동성애를 죄악으로 여겼던 영국에서 벗어나, 동성애를 더이상 죄악으로 여기지 않는 프랑스나 이탈리아로
알렉과 모리스가 떠났을지는 의문이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괜찮은 곳으로 떠나
둘이 잘 먹고 잘살았다 죽었다는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초반의 지나치게 관념적인 문구들로 인해 다소 지루한 편이었지만,
뒤로 갈수록 조금더 생각해가면서 볼수 있었던 책이었다.
열린 책들에서 E.M 포스터의 전집을 낼듯 보이는데, 이 우아한 양장은 정말로 원츄다!
흰책이라 더럽혀 질까봐 걱정이 될정도로 양장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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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진 블루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권민정 옮김 / 강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데뷔작이라는 "버진 블루".
진주귀걸이 소녀와는 다른 형식의 소설로, 현재의 여인과 과거의 여인의 인생을 비교해 가면서,
묘하게 유사한 인생행로를 성모의 색이라는 버진블루와 성모의 빨간머리를 매개체로 엮어나가는 소설이다.

현재의 미국인 엘라와, 그녀의 조상 이사벨, 그리고 이사벨의 딸 마리.
과거에 빨간머리라 왕따당하고 라루스라고 조롱받던 이사벨과,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이민왔지만, 이방인에게 폐쇄적인 프랑스사람들과 부딪히며
문화적인 소외감을 느끼는 엘라는 빨간 머리 뿐만이 아니라 처한 상황마저 비슷한데,
끄덕이면서 보다가도, 후반부로 가면 지나치게 우연을 겹쳐놓아서 억지스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분위기로 따지면 진주귀걸이 소녀보다 조금더 암울하고 형식으로
따지면 추리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다.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이민온 미국인 엘라 터너는,
자신을 힐끗 거리면서 은근히 무시하는 프랑스 시골 사회에서 조금도 적응하지 못한다.
(아니, 적응하려 하지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프랑스어도 서투를 뿐더러, 타인의 얘기를 뒤에서 시시덕 대는 프랑스 아줌마들이 거북스럽기만 하고,
아이를 가지려고 해도 잘 되지 않고 이렇다 할 직장을 구해놓은 상태도 아닌 엘라 터너는,
성격도 히스테릭해지고, 마른버짐까지 피는등,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해듣기로는 자신도 프랑스인이었다는 얘기에 프랑스어도 배울겸, 심심함도 달랠겸 해서
가족조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매력적인 프랑스인 장 폴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아주 오래전 가족사에 있었던 안타깝고도 잔인한 사건을 알아가게 되는 책이다.


읽으면서 확실히 이 작가는 처음부터 옛 여자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이사벨의 조용하고 신비스럽기 그지 없는 이미지는,
현실의 엘라에게로 오면서 깨지고 말아버린다.
사실 책장을 넘길때마다 엘라의 캐릭터로써의 매력은 점점 깍이는데,
어찌된 일인지, 엘라는 다분히 의존적이면서 동시에 고집은 쎄고,
피해의식이라도 있는 냥 히스테릭한 모습밖에 보여지지 않아서
책을 다 읽을 때쯤에는 꼴불견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기 일을 남에게 떠맞기는 스타일의 사람을 참 싫어한다.
주인공 엘라터너가 딱 그런 스타일의 여자였다.


별다른 의지 없이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왔고, 자존심과 자기 고집만 쎄지 혼자 할줄 아는게 별로 없어서,
가족사를 조사하면서도 사사건건 남에게 의견을 묻고 남이 도와주어야만 일을 해결해나간다.
신기하게도 전혀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는 전개방식은
전개해나가는 데 있어서 좀 억지스럽기도 했고, 주인공의 성격의 단점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서
매력은 커녕 주인공에 대한 짜증이 밀려 들어올 정도였다.
장폴과의 로맨스는 약간 무리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 치고,
엘라와 장폴은 나름대로 불륜관계인데,
엘라의 피하다가 적극적으로 유혹하다가 또다시 피해버리는 모순적인 행동에서도,
그 우유부단함이나 갈팡질팡한 마음이 애틋하다기 보다는 좀 비겁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쩐지 진주귀걸이 소녀의 그리트가 떠올려 지는 이사벨의 이야기와
음울하면서도 비밀스러운 분위기는 매우 마음에 들었고, 책 자체로는 꽤 즐거운 책이었다.
역시 이 작가는 이런 조용하고 비밀스러운 옛날 여인의 이야기를 참 잘쓴다.
이렇다할 사건없이 묘하게 서로에게 끌리는 양치기와 이사벨의 비밀스러운 감정의 얘기라던가,
이사벨의 엄마를 물어 죽게 만든 늑대와의 묘한 소통 같은 것은
마치 꿈을 꾸는 듯이 모호하게 아련하고 아름답다.
아주 건조하고 담백하게 써 내려가는 빨간 머리 이사벨에대한 사람들의 모욕적인 경멸감이나
남편의 무시따위도, 오히려 현재의 엘라가 프랑스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이야기보다
훨씬 마음에 와 닿았고, 더 애틋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진주 귀걸이 소녀를 상상하고 읽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분위기로만 따진다면 나는 이쪽이 훨씬 고풍스럽고 신비로웠다고 생각한다.
(별로 기대를 안해서 일지...)
때문에 마음에 들었고, 여러가지 실망스러운 모습이 있긴 했지만 읽어서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인의 일각수를 읽을까 말까-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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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M. 포스터 (E. M. Forster) - 187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톤브리지 스쿨을 거쳐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를 졸업했다. 1903년 케임브리지의 친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월간지 「인디펜던트 리뷰」에 에세이 '마콜니아 상점들'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했으며, 이듬 해에 같은 잡지에 단편소설 '목신을 만난 이야기'를 게재하여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20세기 초 영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확고히 자리매김하였다. 1927년 대표작 <인도로 가는 길>을 발표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지만,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소설가로서보다는 지식인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1949년 기사 작위를 서훈 받았으나 거절했고, 1970년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91세로 사망했다.
지은 책으로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1907), <기나긴 여행>(1907), <전망 좋은 방>(1909), <하워즈 엔드>(1910), <모리스>(1914), <소설의 이해> 등이 있다.

 

오늘 주문한 책이 왔는데, 이런게 나와버리면 어쩌잔 말인가...ㅠ ㅠ

보고싶었던 전망좋은 방과 모리스.

이 아름다운 표지들!!!!!!!!!!!!!!!!!!!!!!!!!!!!!!!!!

아아아아아아아아!!!!!!!!!!!!!!!!!!!!!!!마일리지로 사릴거야?!!!!!!!!!!아아아아아!!!!!!ㅠㅁ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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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12-05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이번 표지 너무 아름답죠~~~ 구판이 있으면서도 살까 말까 망설이는 중.

Apple 2005-12-05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안타깝게도 구판을 구하지 못해서...ㅠ ㅠ
오늘 주문했습니다.헤헤헤헤...^^ 아우..표지 너무 예뻐요..
 

뱀파이어란 어쩐지 영화나 얘기속에나 등장하는,
괴기스럽지만 에로틱하고 신비스러운 존재이다.
(적어도 내게는...)
진짜 흡혈귀가있을까...하는 생각을 할때면 언제나 "설마-"라는 결론으로 빠지곤 했는데,
어쩌면, 흡혈귀라는것이, 괴물이나 귀신이 아니고,
인간의 다른 형태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글 보고 들었다.

*포르피린(porphyrin)증
 

포르피린(porphyrin)은 생체내에서 산화환원 반응에 중요한 작용을 하는 물질로,
인간에게서는 주로 적혈구의 혈색소(헤모글로빈) 속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물질입니다.
이 포르피린 자체는 생물체의 생존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것이 혈색소로 전환이 되지 않게 되면 생체 내에선 독으로 작용하게 되는
무서운 물질이기도 하죠.
이 포르피린을 혈색소로 바꾸어주는데는 특정한 효소가 필요한데
이 효소가 결핍된 사람의 경우, 포르피린의 과다 축적으로 이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포르피린증은 원인도 여러 가지고,
증상도 여러 가지지만 굉장히 특이하고 매력적인 질병입니다.
(이 병에 대한 원문에 보면 Porphyria is an fascinating disease라는 표현을 썼더라구요)

포르피린증은 매우 희귀한 유전 질환으로 태어나자마자 발병하는 경우와
성인이 되어서 발병하는 경우가 있는데,
환자들은 간 기능이상으로 인한
복통과 빈혈, 메스꺼움, 혈압 저하 등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또한 환자들은 피의 양이 줄어서 창백하지고 소변이 레드 와인처럼 붉게 변하며,
햇빛을 받으면 피부가 벗겨지고 수포가 생기고,
온몸에 털이 많아지고 잇몸 구조가 변해 이빨이 길어진 듯한 특징을 보인다고 해요.
그런데, 이거 어디선가 들어본 특징같지 않으세요?

현대 의학에서는 포르피린증의 환자들이 흡혈귀의 모델이 되었다고 추정합니다.
원래 역사적으로 유명한 흡혈귀의 모델은 블라드 4세와 에르체베트 바토리 여백작입니다.
루마니아의 왈라키아 공화국의 왕 블라드 4세는 사람을 꼬챙이에 찔러죽이면서
그것을 여흥삼아 식사를 즐겼다해서,
테페스(말뚝박는 자) 또는 드라큘라(드라큘의 아들, 흉폭한 드래곤) 라는
별칭으로 불렸다고 해서 흡혈귀의 한 기원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와
비견할만한 바토리 가문의 에르체베트는
젊은 여인의 피가 영원한 젊음을 가져온다고 믿어 소녀와 처녀들을 납치해
그들을 천장에 매달고서는 찔러죽여 흐르는 생피를 받아
목욕을 즐겼다던 잔인한 여인이지요.
이들의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잔인함과

피에 대한 집착이 상상 속의 흡혈귀를 만들어 냈다면,
포르피린증 환자들은 실제 눈 앞에 보이는 이상으로 사람들의 상상을 부추겼습니다.
포르피린증이 일단 발병하면 햇빛을 받으면

피부가 불에 덴 듯 벗겨지고 이상이 생기기 때문에
그들은 어둠 속에서 생활할 수 밖에 없었고,
잇몸이 변해 이빨이 드러나는 것이나 창백한 느낌은
흡혈귀의 이미지를 떠올렸겠지요.
또한 맨 처음 에피소드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 병은
혈액의 이상으로 생기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이 혈액 내에 가진 효소를 보충해주면 병의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이 병에 혈액에서 분리해낸 효소를 쓰고 있는데,
예전 사람들은 피를 마시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피를 마시면 간기능 이상에서 오는 복통과 구토와 메스꺼움이 가라앉고
햇빛에 대한 과민반응도 덜해질 테니
이 불행한 사람들이 오해를 받기 쉬웠을 겁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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