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의 왕
차이나 미에빌 지음, 이창식 옮김 / 들녘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다가, 묘하게 매번 눈에 띄었던 소설 "쥐의 왕".
아무런 정보없이 빌려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역시 절판된 도서.
읽기전에 다른 사람들의 평을 대충 별점만 훑어봤는데, 평은 그저그런 편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매우 재밌었던 소설이었다.

 
동화를 좋아한다.
현대에서 보기에는 비상식적인 중세시대의 동화를 특히 좋아한다.
잔혹함을 즐기는 나의 악취미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동화속에 어렴풋이 담겨 있는 당시의 현실이 흥미롭다.
이 소설 "쥐의 왕"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독일의 설화 "피리부는 사나이"를 모티브로 삼은
다크환타지 소설이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보면, 정치성과의 연관을 짓던데,
나는 오히려 동화의 재해석에 좀더 큰 점수를 주고싶다.
(사실 내가 정치를 잘 모르고 앞으로도 별로 알 생각이 없어서,
어렴풋하게 다가오는 것 이상으로는 할말이 없다...................)
 
 
오랫동안 소원해져있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사울은
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하고, 그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경찰은 사울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사울 앞에 나타나 자기가 외삼촌이라 주장하는 더러운 남자.
그는 모든 쥐들의 왕.
피리부는 사내가 동족을 몰살로 몰고간 후, 그의 백성인 쥐들에게조차 외면당하는
퇴물에 가까운 왕이다.
사울은 사실, 쥐의왕의 여동생의 자식으로, 반인반서이다.
인간으로써 살아온 삶을 버리고, 자신이 쥐였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본능은 그를 버리지 않는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상한 음식을 줏어먹으면서도 맛 있다고 느끼는,
평생을 살아오며 식중독 한번, 배탈한번 나지 않는 왕성한 식욕의 사울은
자신이 쥐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쥐 인간 뿐만이 아니라 새인간, 거미인간도 꽤 재밌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한편, 사울의 친구들에게 피리부는 사나이가 접근해온다.
정글리스트인 사울의 친구와 친해져 자신의 영역에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해나가며
더 큰 야망을 키우는 야비한 피리부는 사나이.
이책 "쥐의 왕"은
반인반서로, 인간을 유혹하는 음악도 쥐를 유혹하는 음악도 들어먹히지 않는 주인공 사울과
플룻하나로 모든 것을 조종할수 있는 피리부는 사나이의 대결을 그린 책이다.

끝까지 권력을 놓치않고 꽁무늬에라도 붙어있으려 안간힘을 쓰는
타락한 봉건귀족을 떠올리게 하는 쥐의 왕의 모습은
우리사회에서도 많이 볼수 있는 모습이다.
꼭 정치인 뿐만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권력에 찌들은 아버지들의 모습이 또한 그렇다.
이런 모습을 멋지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계속해서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러한 권력에의 탐욕은
물고 물리며 결국은 이어져나가기 떄문이 아닐까.
따라서 소설의 마지막, 모든 쥐들에게 쥐의 왕이기를 포기한 사울의 선택은 꽤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그가 원했던 것은 우두머리에 서서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지금까지 살았던 것처럼 평범한 소시민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을지.

어린시절 너무나도 무서웠던 피리부는 사나이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동화의 패러디라던가, 원래 있는 이야기의 재해석을 원래부터 좋아하기 때문에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더러운 런던의 뒷골목. 그 뒷골목의 가장 더러운 음식을 먹고사는 쥐.
정신없이 흩어지는 정글, 더럽고 기괴한 인상의 사람들.
이 모든 음울한 이미지는 어떠한 힘을 가지고 마치 액션영화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읽는 내내, 젊은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소설을 쓸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젊은이다운 패기와 열정이 돋보이는 소설이었으니까.
우연히 도서관에서 건져낸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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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단편집 - 스켈레톤 크루 - 상 밀리언셀러 클럽 42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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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겁이 많은 사람들의 공포에 대해 듣게 될 때면,
'참 기발한 상상을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 떄가 있다.
그들이 무서워하는 그 어떤 것의 어떤 면이 두려운가를 듣다보면, 그 얼토당토않은 생각에 황당하면서도
나조차 소름끼치거나 역겨운 기분이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 기발한 공포심이 공포소설이나 공포영화로 피어나지 않는 것은
그것을 떠올려낸 사람들이 겁이 많아서 공포의 재미를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스티븐 킹의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를 보면서 생각했다.
작가 자신이 전혀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면, 또는 작가가 그 공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과연 공포소설을 쓸 수 있을까.
무서워하면서도 즐긴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공포를 소재로 한 예술이 있다는 것은
이것이 인간의 내면에 내제된 잔혹함의 합법적인 방출이기 떄문이 아닐까.
공포소설의 제왕이라 불뤼는 "스티븐 킹"을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중학생 시절.
사실, 한이라던가 복수심같은 피맺힌 감정이 바탕으로 깔리는 동양의 서슬이 퍼런 공포에 비해,
서양의 공포는 피상적이고 찰나적인 섬뜩함으로 일관된 느낌이라,
스티븐킹의 소설을 보면서 무서웠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스티븐 킹의 소설을 좋아했던 이유는, 작가 자신만의 개성이 뚜렷했기 떄문이다.
스티븐킹은 언제나 현실에서 건져낸듯한 음울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머릿속에 사진이 찍히듯 생생한 서술을 해나가고,
그것이 스티븐킹의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또한 뻔한 헐리우드 식의 진행을 보여주지 않는 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어린아이는 절대로 죽이지 않는다던가, 재난에서 빠져나와 모두 죽고 주인공은 어쨌든 살아남았다는 식의 결론 말이다.
내게 있어서 해피엔딩의 결론은 공포가 아니다. )
 

스티븐 킹의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는 그의 이런 개성이 장편뿐만이 아니라 단편에서도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이미지화라던가 서서히 진행되는 심리묘사로 독자를 압박해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떤 단편들은
"안개", "원숭이", "카인의 부활", "신들의 워드프로세서", "노나","서바이버 타입"이었다.

 

*안개
재난 영화에서 괴수영화로 스물스물 교묘히 바뀌어가는 듯한 단편
이 단편을 사자성어로 축약하자면,  "설상가상", "진퇴양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마을에는 짙은 안개가 깔리고,
아들과 식료품을 사러 슈퍼마켓에 들어간 데이비드는
안개속의 알수 없는 괴생명체에 의해 마을 사람들과 슈퍼마켓에 갖히게 된다.
단단한 슈퍼마켓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밖으로는 곤충과 동물을 뻥튀기 해 놓은 듯한 괴생명체가 먹이를 낚아챌 순간만을 노리고 있고,
안으로는, 종말을 경고하며 희생양을 내놓으라 요구하는 광신도에 의해 사람들은 분열해나간다.
괴물에게 잡아먹혀 죽느냐, 광신도들에게 아들을 희생양으로 내놓느냐.
진퇴양난의 고비에서, 나라면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보게 되는 단편이었다.
장편이라 해도 믿을 만한 분량이고, 읽으면서 내내 "이건 영화로 만들어지면 재밌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쇼생크탈출"의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가 영화로 만들어낸단다.
야호우~

*원숭이
길에서 파는 심벌즈를 치는 원숭이 태엽인형 무리를 보고, 문득 공포를 느꼈다는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원숭이"는
버려도 버려도 되돌아오는 원숭이 인형과의 평생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누런 이를 드러내며 신경질적으로 심벌즈를 쳐대는 원숭이 인형.
심벌즈가 울릴 때 마다 사람이 죽어나간다.
사실 좀 흔한 얘기여서 신선할 것은 없으나
심벌즈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옭아매는 듯한 꽤 긴장감 넘치는 단편이었다.

*카인의 부활
사실 이 단편은 확실히 어떤 이야기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분위기만 남기는 듯한 이 짧은 단편은 구스반산트의 영화 "엘리펀트"의 후반부를 옮겨온 듯한 인상이다.
한 학생이 무고한 사람들을 총기로 난사한다.
동생 아벨을 죽인 죄로 신에게 잡아먹힌 카인을 떠올리며,
자신을 카인으로 간주하며.....
왜? 친구와의 짧은 대화로 볼땐 별 문제없어 보이는데....
사람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쏘아대던 냉담한 악담이 찝찔한 뒷맛을 남긴다.
겉과 속이 다른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걸까?
아무문제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게 망해버리길 바라는 비관적인 내면을 가진 젊은이의 정신적인 광기 같은것?
잘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기묘한 잔향을 남긴다.

*신들의 워드프로세서
작가의 초기작으로 보이는 이 단편은 심지어는 TV에서도 많이 보았을 정도로 아주 흔한 이야기이다.
소원을 들어주는 타자기라던가, 치는대로 실현되는 컴퓨터같은-
조카가 남기고 떠난 워드프로세서는 퉁명스러운 아내, 버르장머리없는 아들을 가진 한 무명작가의
조금도 행복하지 못한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참 웃기게도 아주 상큼하게 마무리되는데,
그 상큼함 떄문에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노나
이 단편의 느낌은 어딘지 쓸쓸하고 애달프다.
술집에서 만난 아름다운 노나.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평생을 눈치보며 살아온 소심하고 심약한 주인공.
의지할 곳없이 살아온 보잘것없는 주인공은 노나를 통해 세상을 향한 분노를 살인으로 표출한다.
그는 노나가 필요했던 걸까.
아니면 도화점이 될 도발이 필요했던 걸까.
누군가가 필요했던 고독한 젊은이의 비극 "노나".
나는 이 단편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서바이버 타입
"스켈레톤 크루"를 다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감하겠지만,
이 단편은 가히 "충격적"이다.
무인도에 표류한 한 남자.
구조를 기다리며 허기를 달래기 위해 갈매기라도 잡아보고자 하지만 그것도 제대로 되지 않고-
구조는 되지 않고, 배는 고파오고, 설상가상으로 다리가 다치고...
그에게 남겨진 것은 두개의 칼과 마취제. 다량의 헤로인.
그리고 그의 선택은?
기발한 아이디어에 헤로인과 허기로 점점 제정신을 잃어가는 의식의 흐름은 충격적일 정도로 훌륭하다.
단편의 묘미를 한껏 살린 작품이었다.
 

스티븐킹은 철저한 작가주의로 무장을 한 작가도,
평생에 걸쳐 몇편의 걸작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부류의 작가도 아니다.
다작에, 모든 작품이 훌륭하다고 말할수도 없다.
책 서두에 스티븐킹이 독자에게 보내는 서문를 보면 그가 어떤 종류의 작가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는 현실에서 마주치는 작은 소재를 재밌는 말솜씨로 부풀려 이야기해주는
이웃집 아저씨같은 소박한 작가이다.
워커홀릭인 동시에 수더분한 아저씨인 스티븐킹은 작가의 말을 통해 말한다.

"돈을 위해 일하지 마라. 그건 원숭이나 하는 짓이다.
손익 계산을 따지는 것도 원숭이이나 하는 짓이다.
시급, 월금, 연봉따위에 연연하는 것도 원숭이나 하는 짓이다.
아무리 듣기 좋은 소리일지라도 사랑을 위해서도 일하지 마라.
일을 하는 이유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자살을 택한 것이나 마찬가지 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운 삶이라도 선택에 대한 보상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돈을 많이 벌었음에도, 기본을 잊지 않는 스티븐 킹.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든, 가진자의 가식이든, 이런 말을 자신있게 할수 있는 사람이 나는 좋다.
천재는 노력하는 둔재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있다.
그리고 노력하는 둔재는, 그것을 즐기는 사람을 이길수 없단다.
스티븐 킹이 꾸준히 인기 있는 이유는,
이야기 할 수 있는 자기 직업을 누구보다도 즐기며 노력하는 작가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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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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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혹은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어릴 때,
누구나 유리갤라에게 감탄했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가끔씩, 유리갤라가 내한을 해서 숫가락을 구부려트리면 세상이 놀랐다.
더 나이가 든 후에, 유리갤라가 사기꾼이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당시 초능력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었던 나는 무척 실망했었다.
그런 초자연적인 힘이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 존재한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숫가락 구부려트리는 게 뭐가 그리 커다란 충격이었나 싶지만,
또 잘만하면 힘으로도 구부려지는게 숫가락이고, 
그까짓 숫가락을 구부려트려서 뭘 어쩌자는 건지 황당하지만, 어쨌거나 당시에는 무척 센세이션이었고,
어린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빠져서 숫가락 구부려트리기를 시도해 본적은 있을 것이다.
 

미야케 미유키의 "용은 잠들다"는 초능력자가 등장하고,
초능력만이 주제는 아니지만, 초능력이란 정말 있는걸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책속에서도 유리갤라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읽는 내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었다.

폭풍우 치는 밤, 잡지사기자인 고사카는 취재에 나갔다 돌아오던 도중
비맞고 있는 소년 신지를 만난다.
그날 밤, 유치원생 하나가 뚜껑이 열린 채 있는 맨홀에 빠져 실종되고,

우연히 지나던 중에 아이의 노란 우산을 발견한 고사카와 신지는 실종사건에 엮이게 된다.
열여섯살의 깡마르고 창백한 소년 신지는 자신이 사이코매트리라는 사실을 고사카에게 전한다.
타인을 기억을 읽는 사람. 물건을 만지면 그 물건을 가지고 있던 사람의 기억을 읽는 사람.
믿어야 할지 말아야할지 헷갈리는 고사카에게, 신지의 사촌형이라는 오다 나오야가 찾아와
신지를 사기꾼으로 몰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고사카에게는 아무말 적혀 있지 않은 백지편지가 도착한다.
 
소설은 유치원생의 실종을 추리해나가는 듯 싶다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초능력자란 정말 있는지에 대해 추리해나가는 듯 싶다가도,
또다시 정신을 차리고보면, 고사카의 과거에 얽힌 사건과 협박사건을 추리해나간다.
이유"에서도 느껴졌듯이, 미야베 미유키는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운 연결이 가장 큰 장점인 작가이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물스물 조금씩 사건을 전개시켜 나가는 연결은 거의 독특하다고 할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후반부까지 전혀 관련없어보이는 사건들의 나열이었던 것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이는 순간,
"에게?"하는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읽으면서 설마 이런 건 아니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 진실임이 밝혀지고,
작가 특유의 캐릭터가 그런지, 타인에게 다소 너그운 편이고, 맘껏 정의감도 발휘하는 등장인물들이
조금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들이 매력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런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조금 납득이 가지 않았을 뿐이다.
자기 몸을 불사르며 타인을 구하려 노력하는 신지나,
사기꾼인지, 진짜 사이킥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그들에게 무한히 시간을 투자하는 고사카,
자기가 사이킥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싫어서 동료인 신지를 사기꾼으로 몰아버리는 나오야.
너무도 선하고, 예의바르고, 타인을 지켜주고자하는 열의로 자신을 불사르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하는걸까 하는 생각이 드니, 씁쓸하지만 별로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나조차도 안그런다. 쩝....)
 
용두사미까지는 아니지만, 후반부의 밝혀지는 진실이 조금 뻔한감이 있어서
추리소설로 읽기에는 좀 그렇지만,
강한 흡인력이나,유연한 연결이나
작가가 사람을 바라보는 온화한 시선이라던가 한쪽에 휩쓸리지 않고 중립을 유지하는 점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띠지에 둘러진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비교는 좀 어이없다.
어느 것 하나 공통분모가 없는 작가와 엮어서 어쩌란 말인지....
차라리 같은 여성 추리(?)작가인 기리노 나츠오와의 비교가 낫겠다 싶지만,
애초에 저런 문구는 만들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유명한 작가와의 비교문구라던가, 유명한 작가의 강추글 같은 걸로 소개글을 써버리면,
혹시 비슷한 부류인지 알고 읽었던 사람들에게 혼동이 되지 않을까 싶다.)
 
몇년 연속으로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성작가라는 칭호를 얻은 미야베 미유키.
소설 전체에 흐르는 따뜻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사회파 소설을 좋아하긴 하지만, 역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내 취향은 아닌 듯 싶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극찬을 했던 "이유"는 내게 최악의 소설이었다.-_-;
이 소설로 이미지는 많이 좋아졌지만....)
날카로운 흉기같은, 잔뜩 웅크린 사춘기 소녀의 분노같은 기리노 나츠오쪽이 사실은 내 취향인 것을 보면,
역시 나도 참 온화함이라던가 여성미와는 무척 거리가 먼 인간인듯 싶다.
누구의 마음에나 용은 잠들어있고, 그 용을 믿고 올바르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권유는
내게는 너무 벅찰 정도로 희망에 가득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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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렉스 -피의 책 2 - 뉴라인 Horror 001
클라이브 바커 지음, 김정화 옮김 / 씨엔씨미디어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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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혈낭자한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 시리즈 2편 "요괴렉스"
보는 내내, 목구멍까지 치솟는 역겨움을 참아가면서 보았다.
"피의 책" 1권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요괴 렉스"에서는 조금더 에로틱했다는 느낌이었는데,
어쨌거나 뇌수가 튀고, 피가 솟아오르는 잔혹함은 1권이나 2권이나 비등비등하다.
요괴 렉스를 보는 내내,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렸다.
책속의 괴물, 또는 유령들의 모습은 버려진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해서,
공포스러우면서도 어딘지 애잔하기까지 하다.
 
 
"영화의 아들"에서는, 영화속의 유령들이 작은 극장을 점령해버린다.
화장실은 서부의 황야로 바뀌고, 죽은 마릴린 몬로의 유령이 치마를 펄럭이며 유혹해온다.
극장안에서의 공포스러운 환상을 다룬 이 단편은 조금 실망적이었지만,
순간 순간 눈앞에 생생히 그려질 듯한 묘사는 끔찍하리만큼 생생하다.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해골 요괴 렉스"는 평화로운 질 마을의 어느 버려진 땅에서
한 농부가 땅을 고르다가 커다란 바위 밑에 생매장당한 요괴 렉스를 불러내면서 시작한다.
아이의 부드러운 살을 좋아하는 인간 두배크기의 거인.
원한에 사뭍힌 요괴 렉스는 온 마을 사람들은 죽여간다.
온가족을 몰살당한채 생매장으로 죽지도 못한채 땅에 뭍혀버린 요괴 렉스의 이야기는
프랑켄슈타인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쩐지 영화 "다크맨"이 떠오르는 "수의를 입은 포르노그래퍼의 고백"은
스산하고도 도시적이며, 애잔하다.
고지식의 결정체처럼 살아온 주인공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불법 포르노그래퍼가 되어버린다.
복수를 결심하고, 복수를 하다가 살해당한채,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죽어서도 시체를 떠나지 못한다.
영혼만 남아버린 남자는 시체에 입혀진 수의에 빙의되고, 형체를 가지기 시작하고
또다른 복수가 시작된다.
 
가장 인상적인 단편이었던 "희생양"은 한밤중에 읽다가 소름이 확 끼쳐버린 단편이었다.
이름 모를 섬으로 표류하게 된 네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손에 잡힐듯, 악취라도 날 듯한 생생한 묘사와 악몽처럼 음울하게 잠식해오는 후반부에서
나 역시 바닷속에 헤쳐진체 헤메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죽은 자들의 무덤이 섬이 되어버렸다.
바닷속에 그득한 시체. 씻기지도 않은 채 살 의욕을 포기한채 사육되고 있는 양 세마리.
결코 이길수 없는 죽음과의 싸움.
멋진 단편이다.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 시리즈에서는 종종, 게이들이 등장하는데,
남창의 이야기 "인간의 흔적"에서 역시, 양성애자인 미남 지골로가 등장한다.
고객의 욕실에서 발견한 조각상.
사람의 피를 온몸에 바르며 인간이 되어가는 조각상의 이야기는
끝으로 갈수록 쓸쓸하다.
 
이로써,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 시리즈를 다 읽었다.
원래는 6권짜리 책이라고 들었는데, 두권밖에 출판하지 않고, 게다가 출판사도 망해버려서
희귀본이 되어버려서 무척 아쉽다.
언젠가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지 않을까...기대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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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죄악 - 뱀파이어 헌터 애니타 블레이크 시리즈 1 밀리언셀러 클럽 36
로렐 K. 해밀턴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애니타"라는 이름은 어쩐지 팜므파탈이나 여전사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애니타 시리즈"의 첫권, 달콤한 죄악을 펼쳐들면서 떠올랐던 것은
가죽자켓을 입은 안젤리나 졸리 스타일의 여전사이거나,
어쩐지 망사스타킹이라도 신어줄 법한 팜므파탈같은 애니타의 이미지였다.
약 100페이지 가량을 읽다보면, 이런 기대는 깨어진다.
기대에 어긋났다고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
캐릭터를 즐겁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는 아이러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완벽한 주인공에게서는 절대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나로써는
어딘지 조금씩 모자르고, 어딘지 어긋나는 모순을 가진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들이 훨씬 더 정감이 간다.

시체를 되살리는 소환사이자 뱀파이어 헌터의 직업을 가진 애니타는 아이러니하게도 조금은 소심한,
그러나 겉으로는 겁내는 것을 절대로 표현하고 싶어하지않는 어쩐지 겁많은 고양이같은 이미지의 여자이다.
은근히 소심하고, 은근히 겁이 많다.
속으로 벌벌 떨면서 비굴한 생각까지 해버리지만, 그러한 나약함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어디서 많이 본 캐릭터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저러고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같은 밀리언셀러 클럽의 소설들 중에 비슷한 소재(?)를 다룬 "나이트 워치"와 잠깐 비교를 해보자면,
나이트워치의 이미지는 세기말 분위기의 조금 우울한 액션 영화,
그리고 애니타 시리즈의 이미지는 외화이다.
책 서두에 써있는 "버피 더 뱀파이어"에 영향을 준 소설이라는 얘기때문인지,
소환사 애니타의 이야기는 마치 즐거운 외화를 보는 듯 했다.
음울하나 그다지 심각할 것 없는, 오징어라도 씹으면서 단순하게 주인공을 응원하며
등장인물들 중에 누군가에게 필이 꽂히기도 하는- 그런 느낌이다.

<달콤한 죄악>은 현존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안의 세인트루이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단 현재를 기준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지만, 책 안의 현재에서는 뱀파이어가 합법화 되어있다.
좀비라던가, 구울이라던가, 쥐인간같은 초현실적인 괴물(?)들이 등장하지만,
이 책의 "현실"은 어쩐지 외화에서 보는 그것과 닮아있다.

화려하면서도 세속적인 느낌이었달까.
앤라이스의 뱀파이어들처럼 고뇌에 차있지도 않고, 나이트워치의 마법사들처럼 냉소적이지도 않다.
인간적인 소환사 애니타에 비하면, "달콤한 죄악"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어쩐지 꾸며진 느낌이다.
예쁘게 옷을 입히고, 인형같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면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존재하는 뱀파이어.
아쉽게도 "달콤한 죄악"의 뱀파이어들은 밀랍인형처럼 창백하고도 아름다운, 우리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상투적인 모습뒤의 양면성 역시 만들어진 느낌이라,
다른 소설의 초현실 인간들에 비해서 매력이 떨어진다.
이야기의 구조 또한 단순하며 짜임새가 무척 부족하다.
이런 점은 읽는 사람에 따라서 크게 단점으로 작용할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내게 이 소설은 주말 밤에 보는 외화시리즈 같았고,
책을 다 보고 난 다음에도 "다음에 계속.."이라는 말이라도 나올듯이 노골적으로 이것이 시리즈이고,
조금더 봐달라고 작가가 외치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커다란 감동은 없지만, 순간순간 짜릿한 통속성은 있다.
단점일수도 있지만, 장점일 수도 있다.
모든 소설을 내 일처럼 심각하게 읽을수는 없지 않은가.
재밌는 오락소설, 아무 할일 없는 무료한 주말밤, 침대에 누워 느긋하게 보기 좋은 소설이다.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p.s 책에서 엄청난 근육을 자랑하는 뱀파이어를 가장한 인간이 나오는데,
읽으면서 근육질 뱀파이어는 절대로 싫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_-
아무리 뻔하다 해도, 뱀파이어는 로맨틱하거나 냉소적이고, 호리호리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p.s 2. 책 초반, 애니타가 친구들과 뱀파이어 클럽에 놀러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외국여자들은 정말 스트립쇼를 좋아할까...........?-_-;
이 책에서도 그렇지만, 종종 영화에서 남성 스트립쇼 클럽에서 열광하는 여자들이 나오던데....
나는 왠만하면 가고싶지 않구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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