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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 The Chas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뜬금없이 <추격자>를 보게되었다. 작년 우리나라 영화중 최고 흥행 성적을 기록한 영화라고 했는데, 사실 개봉했을 당시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지금보니 개봉일이 작년 2월인데, (여름에 개봉했는줄 알았는데...) 바쁘기도 했었던 것같고, 흥행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흥행하는 영화들이 나와 궁합이 그다지 맞지 않기 때문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센스없는 포스터도 한몫한다.)
2008년을 보내면서 자주듣던 영화음악 프로그램에서 자기들끼리 2008 영화결산을 하던데, 남들이 좋다는 영화중에 안본 영화가 몇 있더라.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내가 관심두지 않고 있던 영화중에 재밌는 영화도 있을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개를 찍어놓고 시간날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하나가 <추격자>였다.
미술관도 다녀오고, 화방가려고 남대문도 다녀오고, 잠도 별로 못자고 외출했고, 여러모로 피곤했기 때문에 함께 있던 친구와 DVD방을 들어갔다. 2시간이나마 편하게 누워서 슬슬 아픈 다리도 좀 쉬고 하려고.
별로 볼 영화가 없길래 <추격자>생각이 나서 아무 생각 없이 골랐다. 별 기대는 없었다. 그냥 그럭저럭 보려니 싶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한 후 10분후에 우리는 편하게 쉬기는 커녕 손에 땀을 쥐면서 영화에 몰입해버렸다.
이렇게 재밌는 영화를 왜 극장에서 보지 않았을까? 그래도 꺼진 불도 다시 봐서 다행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대놓고 살인자와 추격자를 뚜렷히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출장 안마소를 운영하는 김윤석과 선량하고 평범한 청년처럼 보이지만 뒤로는 몇번이고 살인을 저질렀던 하정우.
자신이 데리고 있는 여자들이 몇번 없어지자, 장부를 들여다보던 김윤석이 똑같은 번호로 호출되어 간 여자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되고, 감기몸살로 누워있다가 자신이 닦달해서 불려나간 여자를 호출한 번호도 그 번호라는 사실을 깨닫고, 추적이 시작된다. 살인과 관련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고, 자신이 데리고 있던 여자들을 빼돌려 다른 곳에 팔아버렸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는 불려나가서 살인범에게 죽을 고비를 겪고 있었고, 나름대로 추적하던 김윤석은 우연히 범인 하정우와 마주치고, 그놈이 문제의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영화가 끝날때까지 쫓게된다.
인간이 법을 만든 것은 그나마 공평하기 위해서이다. 유력해보이는 용의자에게도 인권을 부여하는 것은 그들이 일단 인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혹여나 용의자가 진범이 아닐 가능성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헛점이 있을수 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여러 영화와 스릴러 소설에서 경찰이 무능하게 그려지는 것은 그 헛점 때문이다. 관객은, 혹은 독자는 누가 범인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다.
그러나 경찰 역시 위아래가 있는 "직장"인 이상 결국은 "결제"가 필요한 것이다.
완고한 법앞에서, 윗사람의 명령도 없이 함부로 뛰어들어서는 안되는 그 점때문에 본의와는 상관없이 경찰이 무능하게 그려질수 밖에.
영화나 소설에서 경찰이 무능하게 그려지는 것처럼 실상 그 헛점이 발목을 잡고 경찰을 무기력하게 만들수 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색다른 처단자를 원하게 된다.
법따위 뛰어넘어서 못된 노무시끼를 신나게 두들겨 패주고 응징할 심판자가 필요해진 것이다.
현실에서는 있을수 없으니 꿈이라도 꾸는 것이지.
느리고 더뎌서 범인을 눈앞에서도 놓치는 법의 심판에 지친 사람들은 급기야 픽션에서나마 안티히어로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경찰이 아니므로 자가응징을 할수 있다. 내가 쫓고 내가 심판해버리는 것이다.
영화속에서 출장안마소를 운영하면서, 욕을 입에 달고사는 비열한 남자 김윤석의 역활이 그런 안티히어로이다.
우리는 가끔은 그런 응징자를 필요로 한다. 알면서도 놓치는 일 없이 그자리에서 처단했으면 좋겠는 이 사회의 악에 대항하는.
영화속에서 김윤석이 경찰서에 붙들려있는 하정우를 두들겨패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경찰들이 조용히 묵인하는 것은 그런 대리만족의 쾌감에서 비롯된 것이겠지.
영화를 보면서 내내 내가 범인을 쫓는 것 같은 스릴을 느끼면서도 내내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에
별 다른 잔혹한 장면이나 깜놀 장면없이도 이 영화는 대단히 잔혹하게 느껴졌다.
불편하게 시리 이놈의 범인은 자기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살해방법을 대놓고 말한다.
경찰은 알면서도 이놈에게 사근사근하게 굴면서 그저 대답이나 잘해줄 것만을 바랄수 밖에 없다.
끔찍한 살해현장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뒹굴던 여자는 시체 두구를 앞에 두고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고있고,
좁고 쓸쓸한 집에서 딸아이는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린다.
그리고 쫓는 자는, 자신이 사지로 내몬 여자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고, 난폭하게 굴면서도 그 아이가 신경쓰여서 어쩔줄을 모르고, 결국은 자신이 조금 더 예민했다면 구할수 있었을 여자의 잘려진 머리를 보고 말아버린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 심난하고 불편하다.
이 영화가 매력적이었던 것은 바로 그 불편함이었던 것 같다.
헐리우드 스릴러처럼 범인이 사라져서 막판에 2편을 예고하듯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오거나, 범인을 묵사발내서 죽이고 정열의 키스신 따위 날리지 않는다.
범인은 죽었다. 그리고 어쩌면 살릴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피해자도 죽었다.
아이는 남겨졌고, 쫓는 자는 사건이 다 끝나고나서도 찝찝한 허무함에 내동댕이 쳐진다.
아...영화가 끝날때는 정말이지 이 짜증나는 불편함과 허무함에 울고싶은 기분이었달까.
줏어듣던대로 배우들의 연기도 무척 좋았고, 사이코킬러 하정우의 연기도 그렇지만, 김윤석아저씨 연기는 손발이 오그라들지경이다. 이 영화는 거의 하루정도에 일어난 일을 모두 담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김윤석이 실제 추격자인듯 점점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장면이 보여지는 것 같다.
이제라도 보기를 잘했지만, 극장에서 보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둘이 이런 영화가 제발 실화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집에와서 찾아보니 실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연쇄살인범 김영철을 모티브로 한 영화더라.
영화속의 범인 하정우가 왜 살인을 하게되었는지는 확실히 등장하지 않는다.
추측은 해볼수 있도록 영화에서 여러가지 장치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 역시 확실한 살해동기라고 말하기는 뭣하다.
애초에 범인이 한번 잡혔다가 풀려난 것은 증거불충분때문이었고, 두번째 잡혔다가 또 풀려나는 것도 증거불충분때문이었다.
심증은 가고, 범인도 자신이 범인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는데, 증거도 없을 뿐더러 살해동기도 이해할수 없다.
그 이해되지 않는 살해동기가 범인검거에서 가장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심리학자도 데려다가 심문해봤는데, 별 소용없다. 마지막에 범인이 살던 집에 범인이 그려놓은 커다란 십자가와 그가 교회를 다닌다는 사실, 교회에서 만난 장로의 집에 처들어가서 가족들을 죽이고 그 집을 차지했다는 점까지는 나와서 삐뚤어진 종교관에서 비롯된 창녀에 대한 응징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엔 너무나 닥치는대로 죽여버리고 되는대로 시체를 유기해 버린다.
뒷맛이 찝찝한 채로 집에와서 검색하다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모티브로 한 영화라는 것을 알게되자 어느 정도 이해가더라. 양심없는 차가운 마음, 무계획에 돌발적인 범죄. 딱 사이코패스의 짓이로구나.
어쩌면 영화속 범인에게는 처음부터 동기자체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되는 대로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너는 창녀니까 이렇게 죽어도 돼. 너는 나를 귀찮게 했으니 죽어도 돼.
그리고 사실은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살해동기이다.
아...ㅅㅂ.....현실은 더더욱 심난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제발 이런 얘기는 영화에서나 보고싶거늘.
여러모로 닮긴 했지만, 뒷맛이 꼭 <살인의 추억>을 봤을 때랑 거의 비슷하다.
갑갑하고, 안타깝고, 짜증나게 불편하고, 그리고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