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을 몇일전 구입하여 읽고 있다. 두꺼운 장정에 비해 글자수가 적당해서인지 진도는 빨리 빨리 나가는 책인데, 보다보니 영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나만 거슬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극히 일본어투의 대화들과 직역같은 느낌의 문장들이 어쩐지 보기 좀 그렇더라. 비교적 건조하고 딱딱한 문체를 가진 <제물의 야회>를 보고난 후라서인지 이런 식의 간단명료한 문체를 보고있으려니 적응이 잘 안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책을 한참 보다가 왠지 "이런거 나만 어색하게 느껴지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책에 종이를 끼워 표시해보기 시작했다. 와... 어느 순간에서부터 걸고 넘어져가면서 보기 시작하니, 정말 많더라..=_= 대표적인 것 세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p112 미즈키가 난색을 표했지만,
"들키면 들켰을때야. 설마, 그렇다고 바로 집을 나가라 같은 무리한 소리는 안하겠지."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듯한 문장이 상당히 많다. 따옴표만 찍혀있고, 마침표를 찍기전에 "...라고 누구누구가 말했다"이런 말따위 나오지 않기 때문에 무슨 시나리오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건 원래 원문부터 이랬으리라 생각하고 넘어가겠지만 "들키면 들켰을 때야"라는 말은 대체 무슨 말일까? 앞뒤를 살펴보아도 문장의 뜻이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들키면 어쩔수 없는거지 뭐..."이런 뜻으로 쓰인 문장일까? 이런 식으로 어색한 느낌이 많이 드는 문장이 꽤 많다.
p130. "그런건 아니고. 다만 요즘 아무래도 뭐라고 하면 좋을까. 감성이 슬럼프 상태라서. 무엇을 봐도 무엇을 해도 이렇게 마음속까지 울리는 게 없어."
=>다만, 요즘, 아무래도, 뭐라고 하면 좋을까......부사가 두개나 쓰이고있는 문장...딱히 강조할 문장도 아닌데 거추장스럽기도 하거니와 원문에 나온대로 그냥 갖다붙인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는 걸까. 조금더 매끄러운 문장으로 다듬어주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램은 내가 너무 까탈스럽게 걸고 넘어지는걸까?
p 145 "나, 미즈키 씨에게 찬성이야. 이름점이든 뭐든 점같은 거 믿을수 있을리가 없어." ....(중략)
"훗. 이래뵈도 나, 원래부터 현실주의자라서."
등등의 대화체가 많이 등장한다. "어쩌고 저쩌고, 해서 나, 어쩌고 저쩌고 했어." "나, 누구누구가 뭐라고 생각해." 같은 지극히 일본말투같은 말들이 지나치게 많이 나온다. 원문에서야 당연히 그렇게 되어있으니까 이렇게 번역을 했겠지만서도, 이런 점들이 책 전체를 가볍게 보이게 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할수 있을리가 없어." ".....하지 말아주세요."같은 피동의 표현들이 굉장히 많이 쓰이는데, 그런 말투자체가 문장의 멋을 더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왠만하면 "....할수 없어요."내지는 "....하지 마세요."같은 말투로 고쳐주어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보려니 나 자신도 피곤하고 해서 더이상은 체크해보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약 160페이지 정도 읽은 부분까지는 솔직히 실망스럽다. 160페이지까지 긴장감도는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이런 점에 초조함을 느껴서는 아니고, 앞에 열거한 여러가지 부분들이 내게 이 책의 이미지를 몹시 가벼운 청춘소설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 같다. 물론 꼭 무거워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책 전체를 감돌고 있어야할 이미지와 내가 받은 이미지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실망적일게다. 아쉽지만 글을 다루는 것 자체의 매력은 거의 찾을수 없는 작가이다. 그 점이 사실 너무나 아쉽긴 하지만, "점성술 살인사건"같은 소설들은 글자체의 매력이 없어도 즐겁게 읽었으니 앞으로의 독서도 그런 정도의 만족감만 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