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김종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한밤중에 세수를 하고나면, 거울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다.
부끄럽지만, 이런 버릇이 생긴 것은 어릴 적에 밤 12시에 거울을 보면 뭐 어떻게 되더라...하는 괴담을 심심풀이 삼아 따라해보다가 생긴 버릇인데, 아직도 가끔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한다.
거울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처음에는 얼굴 전체를,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눈동자에 집중을 하게되는데 한참을 아무 생각없이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다보면 눈동자속 우주에 빨려 들어갈 것 같으면서도, 거울속의 나와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다른 사람일 것만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든다. 그다지 좋은 감정이 드는 것도 아니지만, 이게 은근히 중독적이란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는지 시인 이상은 "거울"을 통해 나를 거울속과 거울밖의 나로 분열해버리고, 현실과 이상속에 존재하는 자아의 모순을 한탄하고 있지 않나.
 
"몸"이라는 소설을 통해 알게 된 김종일의 신작소설 "손톱" 역시 그런 모티브의 소설이다.
아이를 잃고 이혼을 경험한 아픔이 있는 여자 홍지인은 어느날부터인가 기묘한 꿈에 시달리게 된다. 자기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되어 살해당하는 꿈, 일어나면 하나씩 빠져있는 손톱.
그저 꿈일뿐인데, 악몽이 너무도 생생해서, 그녀는 잘 때마다 한번씩 죽었다가 살아나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원인을 알수 없는 가운데, 어느새인가 자신의 주위를 머물고 있던 노숙자를 통해 "라만고"를 알게된다.
마다가스카르섬의 왕족의 손톱을 먹어치우는 자, 라만고.
고통스럽게도 이어지는 이 라만고의 의식은 하나씩 그녀의 손톱을 뽑아가고,
그녀의 연인인 세준과 친구인 민경이 함께 가세해 이 미스테리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지만,
손톱은 계속 사라져만 가는데, 지인은 자신을 지탱해주던 연인도 친구도 믿을수 없어져버린다.
라만고란 무엇이며, 열개의 손톱이 모두 사라져버리면 그녀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생길까.

악몽과 하나씩 사라지는 손톱, 매분 매초마다 잊혀지지도 않고 이어지기만 하는 지긋지긋한 공포와 혼란을 거듭하다가, 홍지인은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재밌는 건 바로 이런 부분이다.
이 책의 후반부, 모든 것이 밝혀지는 부분은 흔히들 말하는 이야기가 반전되는 상황이 아니라,
애초에 작가의 의도는 독자의 상상력과 따로 놀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반전이 짜잔~하고 등장해 뒤통수를 내리치는 통쾌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다 읽고 나면 어쩐지 숙연한 마음이 든다는 것.
사람을 찌르고 난자하고 죽이는 잔인무도한 행위를 바라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만나게 되고, 그런 장면을 신나게 읽어내려갔던 나 자신의 악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거울속의 나는 거울밖에서 살아가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선의 끝은 악이오, 악의 끝은 선이다."
누구나 절대 선일수 없고 절대 악일수 없다.
아무리 파렴치한 인간이라도, 개보다도 못한 한낫 쓰레기에 불과한 인간이라도,
최소한의 양심과 인간성과 죄의식은 존재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묘한 것은 이런 것 때문이 아닐지.
나쁜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 놓고 한편으로는 죄책감을 가지는 이중성과 자아모순.
마음속의 악마와 천사가 끝도 없이 싸우다가 결국은 악마가 이겨버린다고 해도,
천사가 손톱만큼이라도 존재한다면 그 인간에게도 희망은 있다.
책을 덮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묘하게도 무섭고 잔인했던 이 소설이 참으로 긍정적으로 느껴졌고, 그래도 인간임을 믿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상의 시 "거울"과 라만고의 전설을 적절히 배합시켜, 장르에 충실해 할 바를 다하면서도
주제의식을 잃지 않는 잘쓰여진 재밌는 소설이다.
진실이 후반부에 한꺼번에 밝혀진다는 점이 반전을 의식한 효과가 아닐까 싶어 아쉽기도 하지만, 그건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문제이니 넘어가도록 한다.
자기전에 잠깐 읽으려다가 결국은 끝을 보기전에는 잠을 들지 못하게 되었을 정도로 박진감이 넘쳐흐르고, 눈앞에 떠오르 듯 선연한 묘사와 첨예한 긴장감, 신경질적인 감정선이 멋드러지게 조화되어 오랜만에 한번 쉬지않고 신나게 읽어내려갔다.
"몸"부터 공포단편선, 그리고 이 책 "손톱"을 거듭하며 성장해나가는 김종일 작가의 필력이 감탄스럽다.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는데, 잘만든다면 멋있는 공포영화도 탄생하지 않을까 싶어서 기대가 된다.
이 책, 정말 멋지다!
공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신의 잠을 손톱으로 낚아채버릴 이런 소설을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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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2-16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읽고 싶어요!!!
시즈님 서평만으로도 흥미진진!ㅋㅋ 국내작가의 공포소설이라 더 관심이 갑니다^^
아직 단편선말고는 읽은게 없어요...

Apple 2008-02-17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자신있게 추천합니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어요.

ren 2008-03-0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시즈님 저 렌이에요 으아 이거 마구 끌리는데요

Apple 2008-03-03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헤헤헤헤..여기서도 보다니..반갑습니다..^^

하이드 2008-03-09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작가 이름 적고 갑니다.

L.SHIN 2008-03-12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리뷰 만으로도 어떤 소설인지 그 긴장감이 느껴졌던 좋은 글입니다.
공포소설은 좋아하지 않지만 이 작가의 필력이 어떤지 궁금하군요.(웃음)

Apple 2008-03-13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
Lud-S>>네. 시간나시면 보세요.^^ 취향에 잘 맞을지 모르겠네요. 이런 소설들은 취향차가 커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