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의 주파수
오츠 이치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취미는 동네 조깅하기. 부끄럽기 때문에 낮에는 조깅을 못하고, 밤이 되어서야 동네를 뛰기 시작하는데,
그나마도 동네 사람을 마주치게 된다면 어디 숨어버리거나 도망쳐버린다.
일을 의뢰받으면 소재 고민하다가 시간을 날려버리고, 죽어마땅하다고 죄의식에 휩쌓인다.
한때 빵과 과자로 삶을 연명했고, 컴퓨터 바탕화면서 빵사진을 띄어놓았다가 미친거 아니냐는 친구의 힐책에
집에 누군가 올때면 슬쩍 바탕화면을 바꿔놓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남자는 사회성이 현저히 부족한 극소심한 히키코모리형 남자일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이 바로 작가 오츠이치(乙一)이다.
 
<Zoo>를 거쳐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를 거쳐 <쓸쓸함의 주파수>까지 읽어버린 나는,
이 <쓸쓸함의 주파수>에서는 오츠이치다운 면을 그닥 발견할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했다.
고요한 일상, 어딘지 좌절감에 빠져있는 사람들, 어찌보면 <Zoo>나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와 엇비슷해보이지만,
<쓸쓸함의 주파수>에서는 훨씬 온건하고 평범해서, 소설다운 매력은 많이 떨어지지 않나 싶다.
작가 본인도 시간에 맞춰썼다 말하는 <미래예보>나 <필름 속 소녀>같은 단편들은
실망적이다 싶을정도로 평이해서 특별한 매력은 느끼지 못하겠고,
그나마 경쾌한 <손을 잡은 도둑>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의 재기발랄함이 엿보이나 결론이 너무도 흐지부지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마지막 단편 <잃어버린 이야기>에 다다라서야
내가 오츠이치에게서 보고싶어하는 면을 발견한것같아서 그나마 아쉬운 독서는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 술에 물탄듯, 물에 술탄듯하는 흐지부지한 느낌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소통과 향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소소하고 평범한 이야기들.
이런 것이 매력이라면 매력일수 있겠지만, 어쩐지 시시하다.
 
<잃어버린 이야기>에는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남자가 등장한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오른손 검지와 함께 생각은 깨어있고, 삶은 이어진다.
이런 괴로운 상태에서 매일같이 손가락으로 말을 걸어주는 아내.
함께 하는 날들이 이어질수록 죄책감에 괴로워지는 남자는 급기야 손가락 대화마저 차단해버린다.
몸은 죽었고, 삶은 이어진다. 그리고 사람들이 떠나가지만,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이 말도 없고 조용한 짧은 이야기가 왜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서 이 단편은 이 책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마음에 들었다.

오츠이치의 작품으로 장편을 읽어본적이 없다.
그나마 조금 길이가 긴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같은 경우가 가장 길긴 하지만 그것도 중편 정도이고,
이제쯤은 그의 장편소설을 읽어보고싶다는 욕심이 든다.
계속 이런 식의 단편들만 이어진다면 어딘지 식상한 느낌이 들기도 할터.
앞으로도 기대할 작가. <GOTH>가 어느 출판사에선가 출간준비중이라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는데,
그것도 빨리 보고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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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9-18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샀어요. 여름이 가니 아무래도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보다는 이 책이 땡기더라구요. 꺼내놓고 야금야금 읽고 있는 중이죠.

Apple 2007-09-18 23:51   좋아요 0 | URL
음...개인적으로는 좀 심심했어요..^^; 재미로는 여름과 불꽃이 더 마음에 들었으나, 그건 책이 너무 동화책이라, 뭔가 본전 생각이...

쥬베이 2007-09-19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 책 살래요 ㅋㅋ 재밌을거 같아^^

Apple 2007-09-20 00:26   좋아요 0 | URL
앗...취향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저는 약간 심심하긴 했는데...;;;;마지막 얘기하나만 괜찮았어요.
최근에 읽고 있는 "벽장 속의 치요"가 더 재밌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