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프다

 

 

몸 아픈 것과 맘 아픈 건 많이 다르다.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면, 몸 아픈 건 물리적 처방과 시간이 주어지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 하지만 맘 아픈 건 심리적 처방과 시간이 주어져도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 몸 아픈 건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거지만, 마음 아픈 건 몸 아픈 것과 달리 그 사이에 사람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예계 절친 두 명이 불화설에 휩싸였다. 싸이와 김장훈이 그들인데 단순한 연예계 가십으로 치부할 수 수 없는 것이 그들 일련의 행보가 자신들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인의 위상으로 넘어와 버렸기 때문이다. 한 명은 ‘강남 스타일’ 노래 한 곡으로 세계를 제패하는 중이고, 다른 한 명은 노래와 콘서트로 번 돈 대부분을 세상 약자 및 독도와 위안부 문제 등에 할애하는 기부 천사로 활동 중이다.

 

 

  둘 사이가 불편하게 된 건 공연 문제 등 지극히 개인적인 것 때문이지만 인간관계 갈등에 대한 전형을 보는 것 같아 공감이 절로 된다. 한 사람이 너무 잘나가면 남아있는 다른 한 사람은 소외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잘나가는 한 사람이 꿈에도 그려보지 못했던 빌보드 차트 일위를 넘볼 때 다른 한 사람은 뉴욕 타임스퀘어 거리 광고판에 ‘기억하시나요’라는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위안부 문제 광고를 올렸다. 보험금까지 깬 돈으로 24시간 돌아가는 광고를 연말까지 진행한다니 대단한 선행이다. ‘강남 스타일’이 언론에 도배될 때 진작 ‘기억하시나요’ 에 관한 보도는 단신으로 겨우 나올 정도였다.

 

 

  사람은 이기적 동물이다. 일반적으로 선행을 할 때 사람들은 타인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그 선행은 온전히 타인을 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타인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을 뿐 실제로는 자신을 위해서 선행한다. 자신의 자존을, 자신의 만족을, 자신과의 약속을 위해 선행을 한다.

그런 면에서 어느 한쪽은 너무 띄워주고, 다른 한 쪽은 무관심으로 반응한 언론이 이 둘의 갈등을 부채질한 꼴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위안부 광고 문제에는 그토록 인색했던 언론들이 SNS에 올린 김장훈의 민감한 글들은 도배하다시피 보도한다. 쌈을 부추길 뿐, 마음이 아프다는 개인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다.

 

 

  갈등 당사자 어느 한쪽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인간관계에는 항시 존재한다. 인간은 오묘한 동물이라 갈등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야기시키는 이도, 해결할 자도 갈등 당사자들일 뿐이다. 맘이 아프다는 약자에게 잘못 없는 강자가 손을 내미는 것 또한 인간적인 모습일 것이다. 사람 곁에 사람 있는 한 위안이지 고통이다.

 

  그게 인간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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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나의 고전 읽기 9
김슬옹 지음, 신준식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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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보인다. 무엇보다 반갑다. 단순 국경일에 머물러 있는 한글날을 법정공휴일로 되돌려 놓자는데 의견을 같이 한 국회 문방위 소속 의원들이 법률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한글날은 다시 공휴일로 지정된다. 잘하면 내년엔 공휴일로 복원된 한글날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세대들은 실감나지 않겠지만 내 기억 속 한글날은 언제나 공휴일이었다. 하지만 공휴일이 너무 많아 노동 생산력이 떨어진다는 기업들의 권유로 1991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되는 설움을 당했다. 경제 논리에 의해 몇몇 법정 공휴일이 추억 속으로 사라져갈 때 그 누구보다 한글날만은 살아남기를 바랐다. 청춘 시절부터 한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임을 지속해온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한글날 같은 의미심장한 날이 경제 논리 뒷전으로 밀려야 한다는 게 분통터지고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글은 만든 날, 만든이, 만든 의도 등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문자이다. 이 중 창제 의도에 대해 나는 언제나 주목한다. 할 말이 있어도 글을 몰라 어찌할 줄 모르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한글을 창제했다는 세종대왕의 말은 진실이다. 물론 거기에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온 백성에게 알려 통치권을 정당화하고 싶은데, 한문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이 누릴 호사가 일반 민중에게 조금이라도 옮아가는 것은 꿈에도 원치 않았다. 일반 백성은 무지할수록 백성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었다.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신하들이 훈민정음 반포를 그토록 반대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피지배층과 효율적인 소통을 원했던 왕권과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은 신권의 견제 사이에서 태어난 부산물이 훈민정음이었다. 극소수만 누리던 혜택을 일반 민중에게로 옮겨 가, 왕권 강화와 안정된 정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던 세종대왕의 전략적 문자 혁명은 정작 당시에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후세대인 우리가 오롯이 그 혜택을 누리는 건 아이러니이자 행운이다.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훈민정음 창제의 의미와 역사적 의의를 살피는 것은 물론이고, 말글 하나된 민족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글 없는 한민족 백성은 생각하기조차 싫다.

 

 

 

***위의 책을 읽다 김슬옹 저자의 대학 학부 논문이 어느 정도 '훈민정음 창제의 정치적 의미'를 주제로 삼았지 않았을까 싶어 구할 수 있다면 구해 읽고 싶다.

  학교 다닐 때 다른 누군가 쓴 미니 논문을 읽은 적 있는데, 그 때도 한글 창제가 단순히 백성을 어여삐 여긴 사실을 넘어, 왕조의 통치권 확보와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기득권 신하들을 거치지 않고)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능하였다는 논지에 신선한 충격을 먹은 적이 있다.

 삼십 년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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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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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독이냐 정독이냐에 대한 답은 없다. 취향의 문제인데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습득해야 하거나 이야기의 흐름에 관심이 많으면 자연히 속독 쪽으로 치중하게 된다. 반면 읽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없으면서 문맥 하나하나에서도 소우주를 발견할 만큼 의미를 부여하는 치라면 정독이 어울린다. 물론 읽는 주체뿐만 아니라 책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서도 그 방향이 달라진다. 자기개발서 앞에서 정독을 고집할 필요 없고, 장자를 펼치면서 속독을 외칠 자 없을 것이다.

 

속독하니 자연스레 다독이 되는 사람들은 많다. 그건 이상할 것도 부러울 것도 없다.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다독자이면서 정독하는 사람들은 드문데,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책 읽기의 고수이다. 내가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신기해하는 족속들이다. 책에 관한 온갖 정보와 리뷰를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 서점에 가면 그런 사람들이 넘쳐난다. 밥벌이로서 할 일이 있으면서 짬을 내 읽는 것도 벅찰 터인데 많이 읽으면서 깊이까지 있으니 저들이 사람일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많이 읽으면서 깊이까지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될 때는 차선책으로 적게 읽지만 깊이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많이 읽으면서 얕게 읽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겠나 하는 위안을 삼아보는 것이다. 고수가 아닌 한, 한 달에 삼십 권 읽는 것보다 세 권을 제대로 읽는 게 더 나은 독서법일 테니까.

 

그리하여 제대로 읽는다는 명분하에 내게 눈도장 찍힌 책들은 대개 지저분해져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에 매료된 상태에서는 밑줄 긋지 않을 수 없고, 접고 싶은 부분이 시시각각 나타나며 옮겨 적고 싶은 부분엔 별표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책이 더러워진 만큼 애정의 강도도 높아진다. 한 번 읽고 책장 안에 갇히는 것보다 자주 보듬어 닳은 것이 깊이 읽힌 것이니 사랑받아 마땅하다.

 

빨리 읽고 많이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적게 읽더라도 깊이 다가와 내 의식을 한 방 때려줄 수 있는 서늘함, 그것이 제대로 된 읽기이다. 박웅현 저자가 소개한 것처럼 카프카가『변신』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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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10-0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까지도 속독에 주력하는 단계입니다. 제가 대부분 읽는 책들이 역사책인지라 같은 사건을 다룬 여러 사람들의 책을 읽고 어떻게 다른지, 어떤 것이 그 사건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물론 저도 인문학 책들을 읽을 때에는 내용을 곱씹으면서 읽습니다.

다크아이즈 2012-10-08 07:38   좋아요 0 | URL
속독, 다독, 정독 다 되는 알라디너 고수 중 한 분이 세인트님이시지요. 알라딘 올 때마다 '저것들은(죄송!!) 사람이 아닌 게야. 별종이야' 하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계신데 그 분 중에 님도 포함된다는 사실.

부러워하면 지는데, 마이 부럽습니다. 크~~
 

 

 

추석 끝이 개운찮다.

이번 명절에는 소위 역귀성이라는 걸 했다.

차례를 지내러 가는 길은 수월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그런지 정체 구간도 없었다.

평소처럼 다섯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돌아올 때가 문제였다.

오후 한 시 쯤에 출발했는데 아홉 시간 넘게 도로에만 갇혀 있었다.

운전하는 남편에 대한 배려 없이, 원 없이 잠도 자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들었지만 지루하기만 한 귀갓길이었다.

역귀성이 낫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향하든 명절 교통 체증은 당연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너무 늦은 귀갓길이라 중간에 어머님과 친정 엄마께 들른다는 계획은 포기해야만 했다.

예년에는 당일 찾아뵈어도 시간에 그다지 쫓기지는 않았는데 점점 이번 같은 현상이 잦아질 것 같다. 차가 많아지는데다 역귀성도 늘어나는 추세라니까.

 

다음날 두 분을 뵈러 다시 대구로 출발했다.

느끼한 명절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을 되살리자 싶어 회를 주문해갔다.

어른들이 좋아하기도 하지만, 따로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먹거리이기 때문에 자주 쓰는 효도법이기도 하다.

엄마께는 동네 친구분들이랑 나눠 드시라고 전해드렸고, 시댁에서는 간만에 방문한 사촌 동생 내외와 식구들이 회를 나눠 먹었다.

모두들 회 때문에 입안이 개운해졌다고 좋아했다.

 

기쁨도 잠시, 두어 시간 뒤 모두 난리가 났다.

구토, 설사, 오한, 근육통, 고열, 두통 등이 차례로 이어졌다.

회를 먹은 십여 명 대부분이 이런 증상에 시달렸다.

응급실에 실려 가거나 지사제와 항생제를 처방받거나 우리처럼 미련한 이는 밤새 움켜쥔 배를 안고 온 방안을 누벼야했다.

난생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회를 먹은 모든분들께 미안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효도한답시고 사 간 회가 두 어른과 친구분들께는 불효가 되는 매개체가 되었다는 사실에 맘이 너무 불편했다.

시댁 형님과 친정 오빠 등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어른들을 병원에 모시고 가고 약도 처방해드렸다. 횟집에서도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왔다.

의도적으로 폐를 끼치자고 한 것도 아닐 터이니 뭐라고 따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항생제를 덜 쓴 횟감을 쓰면 그럴 수 있다면서 양해를 구한다.

 

이틀 꼬박 앓으면서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하는 행동에도 오류가 따를 수 있다고.

그 오류는 우연에 의해 발생하지만 그 파장은 끝간데없이 커질 수도 있다고.

하지만 딱히 누구의 책임이라고 완전히 떠맡길 데도 없다. 

다만, 세상 일은 절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칠 뿐.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사건에 의해 우리 일상은 휘어지고 꼬일 수 있다.

저마다 최선을 다하지만 그 우연과 우발이 야기하는 것을 넘어설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닥치면 당해야만 하는 치명적 우연이 가끔은 우리 삶을 관장할 때가 있다.

그때는 어쩔 도리가 없다. 조심만으로 안 되는 게 세상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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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3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3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2-10-03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ㅍㅎㅎㅎ 미안요... ㅋㅋ
태그에서... 우연이 '관장하는'... 을 저는 '관장(灌 물댈 관, 腸 창자 장)'으로 읽혀서 갑자기 뿜듯이 웃었다는... 거 왜, 대장내시경하기 전에 대장을 다 비워내는 그걸... 관장한다고 하걸랑요... ㅋㅋ

우연이 관장하는... 관장은 확실히 되셨겠는데... 추석에 고생을 하셨네요. 이제 회복되셨죠?

다크아이즈 2012-10-04 16:19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중의적이네요. 전 생각지도 못했지만 우연이 관장한 것 맞네요. 뿜을 만한데요.ㅋㅋ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 이야기
서명수 지음, 이동현 그림 / 이케이북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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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공짜는 없다.

  미국 격언에 <There is no free lunch>라는 말이 있다. ‘프리 런치’란 서부 개척시대에 술집에서 내놓던 미끼 점심을 말한다. 일견 공짜로 보이지만 실은 비싼 술값 안에 점심 값도 포함되어 있다. 데이비드 콜랜더 교수가 쓴 경제학 책에도 그런 예화가 나온다.

 

  경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왕이 학자들에게 책을 쓰라는 지시를 내렸다. 몇 년에 걸쳐 수십 권의 책이 완성되었다. 방대한 양에 질린 왕이 한 권으로 줄이라고 명했다. 한 권의 완성본을 보자 그것도 길다고 왕은 트집을 잡았다. 한 줄로 줄이지 않으면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했다. 어차피 죽을 몸, 점심이라도 먹을 요량으로 학자들은 음식을 배달시켰다. 점심 값이 없었던 그들을 보고 배달원은 투덜대며 음식을 도로 가져가버렸다. 그 때 배달원이 한 말에서 힌트를 얻어 학자들은 한 줄 요약문을 써낼 수 있었다. ‘공짜 점심은 없다’였다.

 

  미끼라는 걸 알면서도 인정에 얽매이거나 순간의 판단 실수로 공짜에 혹할 때가 있다. 추석 앞둔 대목에 그런 경우를 겪었다. 유명 대학 음료 사업부라며 콜 센터 직원이 몇 차례나 전화를 걸어온다. 내가 속한 모임에 판촉 행사 차 홍보 직원이 잠깐 들르겠단다. 십여 분 시간만 내주면 되고 부담 느낄 필요가 없는데다 점심 도시락까지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공짜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차피 먹어야 할 점심, 그렇게라도 해결하자는 생각도 없지 않아 약속을 잡아 버렸다.

 

  홍보 직원이 준비해온 고급 일식 도시락을 돌리고 판촉 멘트를 한다. 그 어떤 강매도 강압도 없이 정중한 톤으로 설명을 한다. 난공불락인 아줌마 고객을 상대로 한 가계의 책임을 지고 있을 판촉 직원은 최선을 다한다. 듣고 있는 고객 입장에서 맘이 짠하다. 눈치껏 주변을 살피니 다른 사람들 맘도 같아 보였다. 그렇다고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 블루베리 음료를 무턱대고 사겠다고 계약서에 사인할 수도 없다.

 

  다만 어릴 적 제 아비를, 지금의 제 남편을 보는 것 같은 가장의 무거운 어깨를 목도한 우리들은 도시락에다 코를 박은 채 별 말이 없다. 이런 먹먹한 분위기였으면 차라리 만날 약속을 하지 않는 게 나을 것이었다. 반도 먹지 못한 도시락을 밀어낼 때, 단내 나는 판촉남, 아니 한 집안 가장의 말끝이 흐려지고 손끝 또한 떨리는 걸 보았다.

 

  결코 공짜 점심은 없었다. 평생 내가 먹은 음식 중 가장 값나가는 점심이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준 한 끼의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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