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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속독이냐 정독이냐에 대한 답은 없다. 취향의 문제인데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습득해야 하거나 이야기의 흐름에 관심이 많으면 자연히 속독 쪽으로 치중하게 된다. 반면 읽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없으면서 문맥 하나하나에서도 소우주를 발견할 만큼 의미를 부여하는 치라면 정독이 어울린다. 물론 읽는 주체뿐만 아니라 책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서도 그 방향이 달라진다. 자기개발서 앞에서 정독을 고집할 필요 없고, 장자를 펼치면서 속독을 외칠 자 없을 것이다.
속독하니 자연스레 다독이 되는 사람들은 많다. 그건 이상할 것도 부러울 것도 없다.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다독자이면서 정독하는 사람들은 드문데,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책 읽기의 고수이다. 내가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신기해하는 족속들이다. 책에 관한 온갖 정보와 리뷰를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 서점에 가면 그런 사람들이 넘쳐난다. 밥벌이로서 할 일이 있으면서 짬을 내 읽는 것도 벅찰 터인데 많이 읽으면서 깊이까지 있으니 저들이 사람일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많이 읽으면서 깊이까지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될 때는 차선책으로 적게 읽지만 깊이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많이 읽으면서 얕게 읽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겠나 하는 위안을 삼아보는 것이다. 고수가 아닌 한, 한 달에 삼십 권 읽는 것보다 세 권을 제대로 읽는 게 더 나은 독서법일 테니까.
그리하여 제대로 읽는다는 명분하에 내게 눈도장 찍힌 책들은 대개 지저분해져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에 매료된 상태에서는 밑줄 긋지 않을 수 없고, 접고 싶은 부분이 시시각각 나타나며 옮겨 적고 싶은 부분엔 별표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책이 더러워진 만큼 애정의 강도도 높아진다. 한 번 읽고 책장 안에 갇히는 것보다 자주 보듬어 닳은 것이 깊이 읽힌 것이니 사랑받아 마땅하다.
빨리 읽고 많이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적게 읽더라도 깊이 다가와 내 의식을 한 방 때려줄 수 있는 서늘함, 그것이 제대로 된 읽기이다. 박웅현 저자가 소개한 것처럼 카프카가『변신』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