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끝이 개운찮다.

이번 명절에는 소위 역귀성이라는 걸 했다.

차례를 지내러 가는 길은 수월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그런지 정체 구간도 없었다.

평소처럼 다섯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돌아올 때가 문제였다.

오후 한 시 쯤에 출발했는데 아홉 시간 넘게 도로에만 갇혀 있었다.

운전하는 남편에 대한 배려 없이, 원 없이 잠도 자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들었지만 지루하기만 한 귀갓길이었다.

역귀성이 낫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향하든 명절 교통 체증은 당연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너무 늦은 귀갓길이라 중간에 어머님과 친정 엄마께 들른다는 계획은 포기해야만 했다.

예년에는 당일 찾아뵈어도 시간에 그다지 쫓기지는 않았는데 점점 이번 같은 현상이 잦아질 것 같다. 차가 많아지는데다 역귀성도 늘어나는 추세라니까.

 

다음날 두 분을 뵈러 다시 대구로 출발했다.

느끼한 명절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을 되살리자 싶어 회를 주문해갔다.

어른들이 좋아하기도 하지만, 따로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먹거리이기 때문에 자주 쓰는 효도법이기도 하다.

엄마께는 동네 친구분들이랑 나눠 드시라고 전해드렸고, 시댁에서는 간만에 방문한 사촌 동생 내외와 식구들이 회를 나눠 먹었다.

모두들 회 때문에 입안이 개운해졌다고 좋아했다.

 

기쁨도 잠시, 두어 시간 뒤 모두 난리가 났다.

구토, 설사, 오한, 근육통, 고열, 두통 등이 차례로 이어졌다.

회를 먹은 십여 명 대부분이 이런 증상에 시달렸다.

응급실에 실려 가거나 지사제와 항생제를 처방받거나 우리처럼 미련한 이는 밤새 움켜쥔 배를 안고 온 방안을 누벼야했다.

난생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회를 먹은 모든분들께 미안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효도한답시고 사 간 회가 두 어른과 친구분들께는 불효가 되는 매개체가 되었다는 사실에 맘이 너무 불편했다.

시댁 형님과 친정 오빠 등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어른들을 병원에 모시고 가고 약도 처방해드렸다. 횟집에서도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왔다.

의도적으로 폐를 끼치자고 한 것도 아닐 터이니 뭐라고 따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항생제를 덜 쓴 횟감을 쓰면 그럴 수 있다면서 양해를 구한다.

 

이틀 꼬박 앓으면서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하는 행동에도 오류가 따를 수 있다고.

그 오류는 우연에 의해 발생하지만 그 파장은 끝간데없이 커질 수도 있다고.

하지만 딱히 누구의 책임이라고 완전히 떠맡길 데도 없다. 

다만, 세상 일은 절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칠 뿐.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사건에 의해 우리 일상은 휘어지고 꼬일 수 있다.

저마다 최선을 다하지만 그 우연과 우발이 야기하는 것을 넘어설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닥치면 당해야만 하는 치명적 우연이 가끔은 우리 삶을 관장할 때가 있다.

그때는 어쩔 도리가 없다. 조심만으로 안 되는 게 세상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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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3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3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2-10-03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ㅍㅎㅎㅎ 미안요... ㅋㅋ
태그에서... 우연이 '관장하는'... 을 저는 '관장(灌 물댈 관, 腸 창자 장)'으로 읽혀서 갑자기 뿜듯이 웃었다는... 거 왜, 대장내시경하기 전에 대장을 다 비워내는 그걸... 관장한다고 하걸랑요... ㅋㅋ

우연이 관장하는... 관장은 확실히 되셨겠는데... 추석에 고생을 하셨네요. 이제 회복되셨죠?

다크아이즈 2012-10-04 16:19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중의적이네요. 전 생각지도 못했지만 우연이 관장한 것 맞네요. 뿜을 만한데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