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나의 고전 읽기 9
김슬옹 지음, 신준식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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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보인다. 무엇보다 반갑다. 단순 국경일에 머물러 있는 한글날을 법정공휴일로 되돌려 놓자는데 의견을 같이 한 국회 문방위 소속 의원들이 법률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한글날은 다시 공휴일로 지정된다. 잘하면 내년엔 공휴일로 복원된 한글날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세대들은 실감나지 않겠지만 내 기억 속 한글날은 언제나 공휴일이었다. 하지만 공휴일이 너무 많아 노동 생산력이 떨어진다는 기업들의 권유로 1991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되는 설움을 당했다. 경제 논리에 의해 몇몇 법정 공휴일이 추억 속으로 사라져갈 때 그 누구보다 한글날만은 살아남기를 바랐다. 청춘 시절부터 한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임을 지속해온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한글날 같은 의미심장한 날이 경제 논리 뒷전으로 밀려야 한다는 게 분통터지고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글은 만든 날, 만든이, 만든 의도 등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문자이다. 이 중 창제 의도에 대해 나는 언제나 주목한다. 할 말이 있어도 글을 몰라 어찌할 줄 모르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한글을 창제했다는 세종대왕의 말은 진실이다. 물론 거기에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온 백성에게 알려 통치권을 정당화하고 싶은데, 한문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이 누릴 호사가 일반 민중에게 조금이라도 옮아가는 것은 꿈에도 원치 않았다. 일반 백성은 무지할수록 백성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었다.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신하들이 훈민정음 반포를 그토록 반대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피지배층과 효율적인 소통을 원했던 왕권과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은 신권의 견제 사이에서 태어난 부산물이 훈민정음이었다. 극소수만 누리던 혜택을 일반 민중에게로 옮겨 가, 왕권 강화와 안정된 정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던 세종대왕의 전략적 문자 혁명은 정작 당시에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후세대인 우리가 오롯이 그 혜택을 누리는 건 아이러니이자 행운이다.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훈민정음 창제의 의미와 역사적 의의를 살피는 것은 물론이고, 말글 하나된 민족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글 없는 한민족 백성은 생각하기조차 싫다.

 

 

 

***위의 책을 읽다 김슬옹 저자의 대학 학부 논문이 어느 정도 '훈민정음 창제의 정치적 의미'를 주제로 삼았지 않았을까 싶어 구할 수 있다면 구해 읽고 싶다.

  학교 다닐 때 다른 누군가 쓴 미니 논문을 읽은 적 있는데, 그 때도 한글 창제가 단순히 백성을 어여삐 여긴 사실을 넘어, 왕조의 통치권 확보와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기득권 신하들을 거치지 않고)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능하였다는 논지에 신선한 충격을 먹은 적이 있다.

 삼십 년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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