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바닥잠

 

 

  길 떠나면 뜻 하지 않은 사건 하나쯤은 생겨줘야 제격이다. 여행담은 평범하지 않을수록 오래 기억되고, 그 기억의 갈래들은 깨어지는 삶의 리듬에 윤활유가 되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고, 심하게 로망에 젖었던 파리에 대한 첫인상은 실망감이었다. 대책 없이 자유로운 도시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도로에 흩어진 각종 비닐봉지, 휴지, 꽁초 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깨끗하고 단정했던 런던 거리와 자꾸만 비교되는 것이었다. 겨우 한 번 스친 눈썰미로 이른 실망에 닿을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내게 파리의 첫인상은 기대 이하였다.

 

  그에 대한 파리의 보복이었을까. 도시 외곽 호텔에 짐을 풀었다. 잠시 밖에 나오면서 카드키를 방안에 둔 채 문을 닫아 버렸다. 자정 즈음이라 호텔직원들은 퇴근했고,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꼼짝없이 한뎃잠을 자야 할 신세였다. 우리 일행을 운전해주던 버스기사 아저씨 두 분도 나처럼 카드키를 방안에 두고 나왔단다. 속수무책으로 당황하고 있을 때, 누군가 자기들 방에서 같이 자자고 했다. 아무리 여유 공간이 있다 해도 쉽지 않은 선의였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잠시나마 타인의 호의를 기대하며 내 입장을 변명하던, 민폐를 자초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던 한 순간이 떠올라 복합적으로 울컥해지는 것이었다.

 

 

  그날 밤, 가이드가 동분서주하며 구해준 여유이불을 바닥에 깔고 잠을 청했다. 내 방이 아니고, 침대 위도 아니었지만 어느 때보다 달콤하고 따뜻한 잠자리였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가이드 역시 곁방 잠을 잤단다. 운전기사 두 분께 잠자리를 양보하고 다른 가이드 방에서 잤다는 것이었다. 내 문제로도 피곤했을 텐데 잠자리까지 편치 않았던 가이드에게 미안하기만 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순간의 실수로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그 민폐를 보듬어 안는 것 또한 개인의 몫인데 쉬운 일은 아니다. 잠자리 내어준, 모녀처럼 다정하던 직장 동료사이라던 두 분께 지면이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유럽의 커플들 뒤태를 몰카짓하는 것이었습니다.

       핸드폰 사진이라 건질 게 별로 없습니다. ㅠ

 

1. 밀라노 엠마누엘2세 갤러리아에서 바라본 두오모 성당

 

 

 

2. 피렌체 베키오다리 근경

 

 

3. 파리 몽마르뜨 사크레쾨르 성당 

 

 

4. 로마 콜로세움 광장 앞 어린 연인 - 비둘기 심정이 곧 나였다!

 

 

5. 로마 스페인 광장 계단 - 아직은 물병 만큼의 거리가 있는 커플

 

 

6. 로마 마차 경기장 건너 - 중년만큼의 저 여유

 

 

7. 런던 하이드파크의 남남 커플 

 

8.런던 버킹검 궁전앞  

 

9. 하이델베르크 아지매 커플 

 

10.하이델베르크 네카 강 - 때론 개와의 커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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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6-25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운 잠자리였군요. 여행지에서는 꼭 뜻밖의 일이 일어나지요. 그럴 때 그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는 측면도 있구요. 저도 앙코르와트 갔을 때 한밤에 호텔에서부터 약간의 차질이 일어나 두어시간을 헤매었어요. 방 바꾸고 어쩌고 그러는 바람에 ㅎㅎ 같이 갔던 부부와 아들들의 넉넉한 배려로 고마웠었지요.

유럽의 사랑스러운 커플들~~~ 그것도 뒷모습!! 멋져요. 폰이라도 사진 모두 잘나왔네요. 비둘기가 팜므님 심정이라니 ㅎㅎㅎ 빵 터져요. 또또 후기 차츰 기다리고 있을래요. ^^

앗참, 환상이라고 하시니 급생각난 단어! 제가 유럽 가고 싶다니까 울딸이 엄마는 유렵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하는 거에요. 과연 그럴까요? 전 깨끗한 거리 그런 걸 기대하고 있는 게 아닌데... 하도 많이 들었잖아요.ㅎㅎ 근데 요즘 제 체력 같으면 어딜 못 다닐 정도에요. 왜 이렇지ㅠㅠ 정신없이 뻗어선 이제 일어났네요. 뭔가 체력부터 길러야 될 것 같아요. ㅎㅎ

팜므느와르 2013-06-26 11:2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두 시간 씩이나 헤매다니, 연약한 프레님껜 무리였겠어요.
유럽 아들은 서비스 정신이 우리만 못해요. 아쉬운 게 없어서겠지요?

커플들 참 부럽더군요. 우리 청춘들도 비주얼은 좀 딸려도 갸들처럼 뭐 자유로워도
용서하겠어요. 내 아들, 내 딸만 아니면 된다 심뽀~~ㅋ

파리가 좀 더럽다는 정보를 저는 갖고 있지 않아서 이런 심정적 낭패를ㅋ
더럽혀줘야 청소부도 할 거리 있을 거 아냐, 갸들 논리는 그런 것 아닐까요.

꺅, 덧글 저장하려는데 로긴을 안 했네요. 이런 뒤지럴스런^^*





Jeanne_Hebuterne 2013-06-25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지에서는 그곳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 며칠을 보내기도 하고, 혼자 또 며칠을 보내기도 했어요.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편도 티켓이 있다는 것과 당장 숙소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 제 삼의 눈을 통해 너무나도 많이 들여다본 거리가 익숙한데 돌아가면 다시 다른 익숙함이 자리 잡을 거란 사실. 팜므 느와르님도, 그러셨을까요? 팜므 느와르님이 풀어주실 도시의 인상도 궁금합니다.(어쩐지 이 다음, 언젠가 다른 페이퍼로 풀어 주실듯한 느낌!)


기억이 가물거려 많은 것을 잊었는데 아직도 어느 거리의 빨래 냄새, 또각거리던 발걸음 소리, 외국어 방송은 선명합니다. 프라하의 지하철 냄새, 런던의 꾸물꾸물하던 하늘, 함부르크의 내 기분같이 변덕스런 날씨. 거기다 팜므 느와르님은 커플 사진을 추가하셨군요! 양해를 구하고 찍으면 이런 사진이 안 나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나 역시 누군가의 배경으로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시는 팜므 느와르 님의 솜씨를 비추어 주신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다크아이즈 2013-06-26 11:31   좋아요 0 | URL
진작에, 몇 번이나 유럽 여행을 했을 에뷔님.
님처럼 제가 좀 섬세한 감각을 지녔더라면 아주 멋드러진 여행기를 썼을 거예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제가 마이 건조하고, 눈썰미는 없는데다, 어리바리해서 제대로 뭘 보고 느낀다는 게 불가능했어요.

테른님의 감각을 훔쳐 오고 싶다는 생각을 여행 내도록 했지 뭡니까.

제 흔적이 님의 시간 여행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어요.^^*

다락방 2013-06-25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느와르님, 여행가서 근사한 사진을 찍어 오셨네요.
물병 만큼의 거리가 있는 커플, 남자의 등이 근사해요. 운동한 남자 같아요. (이런것만 보다니..orz)
풍경들이 하나같이 근사한데, 혹 외국의 누군가가 서울에 와서 저렇게 사진을 찍는다면 그 누군가도 이곳의 풍경을 근사하다고 생각하려나, 하고 궁금해지네요.

다크아이즈 2013-06-26 11:34   좋아요 0 | URL
핸드폰 사진이라 근사할 것까지야 ㅋ
실은 작년에 사진 강좌 3개월 들었는데 뭐가 뭔지 하나도 못 알아 들었어요.
지금은 카메라 조작법도 몰라요.

사진을 알고 사진을 찍어야 스트레스 안 받을 것 같아요.

마자요. 물병 남자 등짝이 후덜덜하다고 저도 잠깐 생각했어요.
당근 우리 풍경도 근사하다고 갸들이 생각하리라 믿사옵니다.
단 비주얼 면에서는 자신할 수 없다는 ㅋ

blanca 2013-06-25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너무 좋아요. 특히 1,2번은 작품 같아요. 무척 당황하셨겠어요. 그래도 격하게 부러워요.^^

다크아이즈 2013-06-26 11:36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일번 사진이 제 개인적으로 젤로 다 맘에 들어요.
왜냐면 그날 비가 적당하게 와 주어서 저 사진을 멀리서 찍을 수 있었거든요.
모두 갤러리아에 대피해 있는데, 유독 저 커플이 빗 속에서 노닐고 있었는데
비주얼이 끝내주더군요. 비록 뒤태이긴 했지만.ㅋ

블랑카님도 아그 좀 더 키우시면 또 떠나실 수 있겠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6-25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가 파리에서 음악 공부 하던 놈인데 일주일에 한번은 꼬박꼬박 편지를 써서 보내던 놈이 있었는데 항상 하는 얘기가 파리 거리는 더럽다, 였습니다. ㅎㅎ 더럽긴 더러운가 봅니다..ㅎㅎㅎㅎㅎㅎ 이노 잘 살고 있나 모르겠네ㅛ...

다크아이즈 2013-06-26 11:39   좋아요 0 | URL
더러벘어요 ㅋ 파리...
곰발님도 친구 찾아 이 기회에 빠리 한 번 가보시어요.
음악하던 친구 분 기관지 다 망쳤을지도 몰라요. 시내 더러버서...
파리가 엄청 작은 도시였다는. 런던에 비해 마이 작아 보였어요.
작지만 위대한 일등 관광지 이미지...

라로 2013-06-25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에 들어오게 될 줄 알았는데 지금 왔어요!!!
대전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서요~~~ㅋ
유럽가서 커플들에 눈도장을 찍으셨군요!!! 멋져요~~~. 다 작품 같아요!!!>.<
언니가 예전에 프랑스로 가셨어야 했는데,,,,이런 감성을 숨겨놓고 계셨으니~~~.
암튼 저도 파리의 거리가 지저분 한 것에 놀란 일인인데 얼마전 BBC 방송을 듣는데
파리지엔느들이 관광객을 위해서 길을 청소하진 않겠지만 좀 더 친절하게 관광객을 대할거라고 하던데
혹 그런 혜택 받지 못하셨는지???불어만 사용하지 않고 영어도 사용해 줄거라고 결의를 했다고 하던데 아직???
유럽은 역시 안 추울때 가야 하는 것 같아요,,,저는 추울 때 갔으니까 가야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네요!!!
어쨌거나 빨리 후기 시리즈로 올려주세요~~~~~~~~~~~~~~.^^

다크아이즈 2013-06-26 11:47   좋아요 0 | URL
울 시아님은 답글 다시는 것도 미안할 정도.
넘흐 바쁘시리라 생각해요. 힘 내요, 힘

형편이 좋았더라면 그 시절 데가 유학 갔을까요.
친구 중에 유학 간 애들 두 셋 되는데 갸들 소식도 궁금하긴 하네요.

마자요, 거리는 더럽히라고 있는 거고 청소부는 치우라고 있는 마인드처럼 보였어요. 갸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으니 영어로 친절을 베풀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영어보다는 불어로 지껄이는 게 파리에서는 듣기에 좋더군요. ㅋ

이건 뭐 후기가 아니라 횡설수설 단상이 될 것이에요. ㅠ


여행

순오기 2013-06-26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드키를 두고 외출하면 저런 낭패가 따르는군요,
그래도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훈훈한 마음씀씀이에 감동먹은 행복한 여행이네요.

유럽의 커플들~ 카톡으로 봤던 사진을 알라딘에서도 만나니 반갑네요.
유럽여행은 꿈꾸지만 실현은 보장할 수 없으니 팜므님 후기에 열광하는 거 보이죠?^^
연인들의 뒷모습~ 미셀 투르니에 <뒷모습> 부럽지 않은데요, 전시회 해도 되겠어요.

다크아이즈 2013-06-26 11:49   좋아요 0 | URL
카드키에 대한 개념을 상실한 일인이었지요.
저 많이 띠리하지요?

순오기 언냐도 할 수 있어요. 결심하면 안 되고, 여행은 그냥 떠나야 되더라구요.
우리 2년 뒤 미쿡은 예정 대로 ㅋ
글고 뒷모습은 당근 투르니에 뒷모습 보고 벤치마킹한 걸요. ^^*

세실 2013-06-26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힘든 일 겪으셨네요. 이런..... 당시엔 힘드셨겠지만 벌써 소중한 추억으로 미소 가득 담으셨을듯! 카드키는 늘 핸드백에 소지 ㅋㅋ
이 사진 보는데 문득 달콤한 키스 하고 싶어라~~~~~
아 부럽다^^

다크아이즈 2013-06-26 11:51   좋아요 0 | URL
당시에도 그리 힘들진 않았어요. 세실님
속으로 좋은 단상 하나 건졌구나, 이런 쾌재를 불렀다는
다만 당황한 건 사실이었어요.

나두 백주대낮에 광장에서 비주얼 좋은 놈으로다가 키스나 한 번 해봤으면ㅋ

페크pek0501 2013-06-27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여행을 그리고 멋진 사진을 담아 오신 일을 축하드립니다.
역시 사진은 좋은 볼거리예요. 눈을 즐겁게 해 줘요. ^^

다크아이즈 2013-07-04 10:04   좋아요 0 | URL
페크언니 잘 계시지요?
제 삶이 어영부영, 흐지부지, 되는대로이다 보니 서재질도 두서가 없답니다.
잘 들어오지 못하니(? 아니 안 하니) 안부 여쭈기도 민망하네요.
어쨌든 서재 구경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