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십이지장 궤양으로 쓰러지신 적이 있다.
새벽에 피를 토하시고 쓰러지시는 모습이 어린 나에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국 그 새벽에 카톨릭 병원 응급실로 향하셨고 당분간 입원을 하셨었다. 담당 의사는
`금연하세요...!!' 라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권유를 아버지께 내리셨다.

아버지의 십이지장 궤양의 원인이 흡연으로 인한 직접적인 영향이라고 생각하진 않
는다 다소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여 결국은 병원 신세를 지시게 되었던 것으라라.
그러나 어렸던 나에게 병원의사가 아버지께 말씀하시는 내용을 옆에서 들은 입장으로
써 담배는 절대 가까히 해서는 안되는 그런 물건으로 인식이 되어지기에는 충분한
사건이 아니였나 싶다. 그런데 지금은...?? 난 하루에 한갑정도의 담배를 소비한다.

내 흡연의 계기는 참으로 억울할 사연이 있다. 내 파란만장했던 첫번째 직장에서였다.
(나쁜 건 죄다 그 첫번째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나보다. 어찌보면 그 사무실은 나에게
있어서 고해성서와 같은 역활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느날처럼 출근을 했고 오전근무가 끝나고 들어온 소장의 표정은 심상치가 않았다.
갑자기 소장실로의 연이어 호출이 이루어지더니 내 차례가 되었다. 소장실에 들어가
보니 소장의 얼굴은 잘익은 홍담무보다 더 붉었고 코에서는 시커먼 김을 뿜어내고 있는
신화속의 악명높은 용의 콧구멍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다짜고짜 날아드는 고성에 난
순간 멍해졌고 어떻게 이따위로 도면을 납품하냐는 일갈이 나를 송두리째 두둘겨 패기
시작했다. 소장의 손에 들고 흔드는 도면파일을 살펴보니 그건 분명 내가 참여한 프로
젝트가 아니였었다. 생각해 보니 먼저 들어가 소장의 심문을 받았던 과장과 차장이 생
각났다. 덤탱이를 써버린 것이였다. 나는 너무나 착하게도 그 소장의 화풀이대상의 샌드
백으로써 20여분간의 역활을 끝내고 설계실로 들어왔다. 약삭빠른 차장놈은 외근을 핑
계로 이미 도망쳤고 그 밑에 과장놈은 결코 나하고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어설픈
페인트 모션을 보이고 있었다.

확 그냥 제도판을 엎어버리고 청사진실로 달려가 암모니아통을 과장놈의 머리통에 부어
버릴까하는 과격한 방법을 생각도 했었지만 난 결국 나보다 반년 늦게 들어온 직원과
의 주차장 나들이를 택했다. 부글거리고 있던 내 옆에서 위로를 해주던 그 직원의 윗주
머니에 박혀있는 담배곽이 눈에 띄었고 난 그 자리에서 그걸 빼들고 연달아 네가치의
담배를 빡빡 피워 버렸다.

26년동안 지켜온 깨끗한 내 폐의 순결을 한순간에 그것도 집단 윤간을 당해버린 씁쓸한
나의 첫경험(?)이였다. 그 후 난 노상 담배를 물고 살았다. 요즘은 줄었지만 말이다.

몇달 후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면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고 있는 나를 발견한 그 차창
놈이 이런말을 했다.

`몸에도 안좋은 담배를 왜 피냐..? 그것도 사람 모인 곳에서 담배를 피는 건
 매너가 아니지..' 

술도 들어갔겠다. 앞에 있는 소주잔을 비워버리면서 담배를 한모금 빨아 연기를 차장놈
에게 날리면서 한마디 했다.

`글쎄요 그걸 제가 모르는 건 아닌데요. 담배를 피면 누군가를 패주고 싶은 충동이
 좀 자제가 되거든요. 예를 들면 절 골초로 만든 그 잡놈들 말이죠...'

애써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차장놈의 면상을 보면서 잡고 있는 담배를 필터 근처
까지 피워버리고 또 한잔..또 한잔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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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6-04-20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래도 담배는 몸에 좋지 않으니 끈으세요,
우리 옆지기도 참다가 또 피고 또피는데,,,걱정입니다,

야클 2006-04-2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1년에 한갑 피워요. 피고 싶을 땐 늘 피우기 때문에 한번도 끊은 적은 없죠. ^^

세실 2006-04-20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런 나쁜 ** 들이 있어요? 에이 두들겨 패주고 담배는 피지 말것을.....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고 하더이다...쿨럭쿨럭~

날개 2006-04-20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피면서 네가치나....!
소질이 좀 있으셨군요...^^

비로그인 2006-04-20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애절한(?) 이유로 29살에 담배를 시작한 저는 유구무언입니다..흑흑

Mephistopheles 2006-04-20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 그럴까 하고요...^^
야클님 // 그럼 1년에 딱 1갑 만큼의 분량만 피우고 싶은 건가요..?? 대단 대단..
세실님 // 몇년후 찾아가 봤더니...좀 비참하던 모습을 보여 그걸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날개님 // ㅋㅋ 울렁거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사야님 // 그럼 피운지 1년밖에...?? ㅋㅋ 이유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