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인적으로 난 지옥에 떨어졌었다. 저점을 찍고 늙고 쇠약해진 다리근육을 이용해 발판을 찍고 튀어 오르고 있는 중이다. 지옥의 바닥까지 닿을 뻔 했으나 그 전에 다른 발판을 마련해 미비하게 다시 도약을 하는 중. 천국까지의 문턱은 아직 까마득하고 무간도를 벗어나 연옥의 귀퉁이를 돌파하는 중이다. 내년 상반기 목표는 천국이 아닌 지옥과 천국의 경계인 이승에라도 안착하고 싶은 심정이다. 야차와 인간의 차이는 백지장 한 장의 차이일 뿐이며 이 백지장은 아주 쉽게 찢어진다는 것 또한 실감했다.
2. 이번 대선은 별 생각이 없다. 어떤 의미로 준비된 자를 이기기엔 준비 되지 않은 자는 여러모로 불리할 뿐이다.(내가 말한 준비는 “선거준비”를 말하고자 함이다.) 획기적인 돌파구나 번쩍이는 아이템이 존재하지 않는 한 애초에 이기기 힘든 게임이었다. 패배가 좌절이 아니지만 승자독식 사회구조 상 패배는 쓰고 처참할 것이다. 같은 내용의 반성문 100장이 필요한 시기는 아니다. 반성만 하는 건 발전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3. 우리 쪽 업계엔 “paper architecture”라는 구분이 있다. 말 그대로 도면상 종이 위에 설계는 이루어지나 실제 건물로 지어지지 않는다. 라는 것이 핵심이다. 혹자는 예술적 분야로 분류되어 독자적 위치를 차지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지어지는 건축물에 비하면 그 한계성만큼은 확실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의 아이콘 중 SNS, 넷은 이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SNS로만 떠드는 진보는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투표장에 나타나 한 표를 행사하는 어르신들에 비해 누군가가 말한 “파괴력”에서 상대가 되지 못한다. 우리가 전뇌화된 “공각기동대” 사회를 사는 게 아닌 이상 말이다.
“진보”라는 아이콘은 아마도 진화를 해야만 할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표현방식은 복고풍으로 취급받지 못할 정도의 “퇴물”로 간주되어야 할 것 같다. 이 나라가 처한 특수한 상황(근현대 식민지, 전쟁, 이념갈등)에 걸 맞는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 시기다. 화려한 스펙만이 아닌 기발한 발상과 발칙한 상상력이 동원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4. 어쩌다 우연히 “청담동 엘리스”라는 된장냄새 풀풀 풍기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제목대로라면 심히 럭셔리하며 환상적이며 흔히 봐왔던 “신데렐라 스토리”가 주된 내용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실제 드라마도 그러하다. 물질적 욕구와 자본의 부를 극대화 시켜 드라마에 투영시켰으며 간접광고 또한 지나칠 정도로 빈번하게 노출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동종 드라마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아주 현실적”인 모습을 종종 비취 준다고나 할까. 빚에 지속되는 사랑이 없다는 모습과 더불어 순수를 찾는 재벌 2세의 철없는 행동은 단지 어른의 위한 동화일 뿐이라는 해석은 재미있게 비취진다. 결말이야 뻔할 뻔자 소시민 여자가 재벌 2세와 맺어지며 끝을 맺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다가 아닌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즐겨 볼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단지 문근영보단 박시후가 더 빛나고 있다는 것. 그건 좀 아쉬울 뿐이다. 아마도 이런 드라마를 보며 심각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이유도 2012년 개인적으로 “지독한 현실”을 체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5. 어찌되었던 국가적인 가장 커다란 “이벤트”는 이제 끝이 났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표현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상해있더라. 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남들에게 휩쓸려 상한 음식 먹고 탈나는 것 보단 안 먹고 잔치만 즐겨보는 것이 가장 현명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 잔치엔 좀 먹을 것이 풍성한 잔치이길 바랄 뿐이다. 그동안 난 위장이나 늘려놔야 겠다. 누구 말처럼 내 위장은 우주다! 를 외칠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