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으로 인해 하루 수 시간을 고속도로에서 보내곤 한다. 출, 퇴근은 물론이고 어쩌다 땜빵으로 화물차를 끌고 다닐 땐 하루 종일 고속도로 위를 달린다. 평소 잘 가보지도 않았던 도시를 많이도 돌아다니고 있다. 부산, 전주, 대구, 청주, 대전 등등 강원도를 뺀 거의 전 지역에 발도장을 찍고 있다.
이런 이유로 고속도로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친다. 길 위를 달릴 때나 잠깐 휴게소에 들렸을 때 여러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친다. 피곤한 표정으로 묵묵히 밥숟가락을 움직이는 화물차를 운전하는 아저씨, 화사하게 차려입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여유롭게 놀러가는 커플, 왠지 부적절한 관계의 냄새를 폴폴 풍기는 아저씨와 아줌마, 해가 떨어진 시간 어두운 도로 위를 양아틱한 튜닝을 뽐내며 고속 질주하는 짝퉁 스포츠카. 평소 자주 접하지 못하는 다른 인간 군상들을 계속해서 마주친다.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의 변화도 생겨났다. 의례 화물차 운전자는 난폭운전의 표본으로 생각하곤 했으나, 고속도로에선 화물차보다 일부 승용차의 운전습관은 마치 액션영화를 보는 것과 다름없다. 과속은 기본, 지그재그 운전에 상습적인 경적과 레이저를 쏘는 건 일상다반사다. 이런 운전자들은 결과론적으로 사고차량의 목격의 수순으로 이어지곤 한다. 일반 도로에서의 사고가 아닌 시속 100Km 이상의 도로에서의 사고는 수준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달려온 엠블런스는 응급환자 수송의 개념보단 시체운반차량의 역할밖에 할 순 없어 보인다.
생각했던 것보다 로드 킬은 심각한 수준이다. 야생동물 보호구역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구역엔 어김없이 시커먼 아스팔트를 시뻘겋게 물들인 선혈과 더불어 점점이 흩어진 고깃덩어리들이 널려 있다. 어떤 동물인지 모를 정도로 형체를 알 수 없이 수도 없이 치이고 밟혀서 그런 최후를 맞았으리라. 푯말 하나와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의 주의를 요하는 것으론 어떤 개선도 없으리라 보인다. 어제도 저녁 퇴근길에 시뻘건 피가 뿌려진 검은 아스팔트를 목격했다.
그리고 가장 궁금한 것 하나. 가로등도 거의 없는 어두운 고속도로 갓길에 비상등을 켜고 서 있는 승용차 안에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리고 심야 한적한 휴게소 한쪽 구석에 조용히 주차되어 있는 차 안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흔들거리는 걸 보면 분명 사람이 타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