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이 된다. 란 말이 있다고 한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이 짤막한 단문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유가 지금 내가 속한 사무실과 전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 내가 적을 두고 있는 사무실은 근래 4명의 직원이 그만 두는 일이 발생했다. 작년 1월부터 지금까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3년을 함께 한 직원들이 하나, 둘 이곳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월급에 비해 처참할 정도의 근무환경, 보다 나은 직장에 구직을 했거나, 혹은 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정이 결부되어 있을 것이다. 더불어 작년 몇 달간 직장인들의 생명줄인 월급이 제때 지급되지 않았던 사태도 분명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태의연한 관점보다 더 세부적인 바닥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어떤 사항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물론 최근에 있었던 회식자리에서 불거진 자그마한 충돌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자그마한 충돌은 우발적 충동적으로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모두가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모를 쌓이고 쌓인 감정이 조금씩 폭발하기 시작한 건 아닌가 생각도 든다.
일의 발단은 사실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할 것 같다. 우리는 속칭 다른 사무실로 출근하는 파견 혹은 합사라는 형태의 근로환경에 처해 있었다. 말이 좋아 파견이지 갑 사무실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을’의 인력을 빌려 매꾸는 형태인 것이다. 대형 마트에 가면 많이도 마주치는 그분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이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을’이라는 입장에서 ‘갑’과의 부당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도 했다. 분명 ‘갑’의 영역임에도 ‘을’에게 떠넘기는 형태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보편적인 사항 이전에 존재하는 것 같다.
작년 초 석달 넘게 강남의 모 사무실에서 3개의 사무실이 모였을 때 이 일이 발생했다. 처음 거례를 트는 사무실이기에 앞으로 지속적인 거례를 위해 우린 다섯 명이나 되는 인원을 파견했고 그 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인원의 책임자로 실장이 존재한다. 문제의 발단은 ‘갑’과 ‘을’의 공생과정에서 발생하게 되었다. 그들의 영역을 우리에게 떠넘기는 그 보편타당한 부조리를 넘어서 실장이라는 인물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갑의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로 인해 파견나간 다섯 명의 인원은 계속적인 야근과 철야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직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실장님은 대체 어디 소속 직원이냐. 이런 불만은 쌓이고 쌓이다 결국 저녁식사시간에 터져 나왔었다.
3년째 성실하게 직장을 다니는 여직원의 입에서 터져 나왔고 이에 대응하는 실장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했다.
‘우린 그들의 노예야! 그들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해.. 뭘 알고나 하는 소리야 어?’
실장의 이 한마디의 충격파는 꽤 오래갔다. 그 날 이후 직원들은 말이 없어졌고 분위기는 냉랭하고 살벌하기까지 했었다. 합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한다고 이 사건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말 한마디로 직원들은 실장의 마인드를 다시 보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해는 바뀌고 비슷한 형태로 다시 파견을 나가게 되었을 때 그 여직원은 보이콧을 선언해 버렸다. 파견 나가는 걸 거부해버린 것이다. 결국 나를 포함한 실장까지 4명이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작년에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던 실장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필요 이상의 친절함. 특별한 잔업이 남아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갑’의 인원이 퇴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를 붙잡아 두었다. 거기다가 S사와 관계가 있는 ‘갑’ 사무실의 출근 시간인 오전 8시로 동등하게 출근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치기 시작했다. 하도 답답하여 이유를 물어보니, 그들은 8시에 출근을 하는데 우린 9시에 출근하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라고 한다. 난 반발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본사 복귀를 명령한다. 쉽게 말해 자기 말을 따르지 않는 직원은 나랑 일할 수 없다. 란 소리였다.
잠시의 소강상태를 갖은 후 실장과 독대를 청했다. 이런저런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고 그는 나에게 언급한 본사복귀를 없는 일로 대처해버렸다. 그리고 8시 출근 주장 역시 철회했다.
두 차례의 파견으로 우린 많은 것을 잃게 되었다. 총 4명의 직원은 사직을 했다. 그 때 그 현장에 남아 모든 걸 직접 겪은 직원은 나를 포함 세 명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사무실의 일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실장이라는 인물의 바닥과 밑천이 드러나 버렸다. 나 역시 이제는 그만 둔 파견을 보이콧한 여직원처럼 소장 앞에서 두 번이나 보이콧을 선언해 버렸다. 아마도 세 번째 보이콧은 바로 사직서로 대처될 것 같다. 더불어 씨알도 먹히지 않을 진 몰라도 사무실의 오너에게 그간 일어났던 일에 대해 진실을 알리고 해결책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할 것 같다.
난 오늘도 ‘노예가 권력을 잡으면 폭군이 된다.’는 구절을 생각한다. 스스로 노예가 되겠다면 말리지 않겠으나 자신이 책임지는 조직의 구성원까지 노예로 전락시키는 인간은 그 조직을 책임질 자격이 없다고 보고 싶다. 어쩔 수 없는 부당한 거례일지라도 조직의 수장은 조직원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리더로서 자격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