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니까. 하드고어하게 일을 한 후 후유증에 시달린다고나 할까. 만사가 귀찮다고 해야 할까. 난 4주 동안 (지나치게) 빡빡하게 일을 하고 나서 생각보다 많은 걸 잃었다는 걸 최근에야 감지하기 시작했다.
난 두 달 동안 한 편의 영화도 보지 않았다. 아니 관심과 흥미 자체가 없다. 아무리 북유럽 신화의 토르가 망치를 휘둘러도 심드렁하고, 빈 디젤이 아빠이 악셀을 밟아도 나에겐 관심 밖이다. 그나마 뜨문뜨문 다시 봤던 영화라고 해봤자. ‘투썸위드러브’가 울려 퍼지던 스승의 날 특집 ‘언제나 마음은 태양’이 전부였다. (어제 EBS 편성. 역시 구관이 명관. 시대가 지나도 좋은 영화는 확실히 좋다.)
연일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나가수(나는 가수다.)’ 역시 단 한편도 본적이 없다. 조금 더 왜곡하자면 ‘가수가 노래 잘 부르는 게 왜 화제일까? 란 삐딱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더불어 간간히 봤던 유일한 TV예능프로 ’남자의 자격‘, 이나 ’1박2일‘ 역시 간만에 시청을 하는 이유 때문인지 별 흥미를 못 느꼈다.
독서는 더더욱 심한 상태. 쟁여 논 책은 많은데 최근에 읽었다는 것이 제동 씨의 책이 전부. 떨어진 체력 회복하자고 터벅터벅 걸어 다니는 수준 역시 거의 좀머씨 수준이다. 더불어 야구는 응원팀이 아주 죽을 쑤고 계시다. (그래 가을에 올 슬럼프가 차라리 초반에 오는 게 다행이다. 라고 애써 긍정적 생각을 하는 중.)
아마도 나이를 먹으며 일에 대한 후유증과 데미지를 회복하는 속도가 더뎌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은 우연히 사무실 주변을 싸돌아다니다 알게 된 보신탕집에서 탕국 한 그릇 뚝딱 해결하고 원기라도 회복해야겠다.
뱀꼬리 : 보신탕이 꼭 개고기로 만든다는 편견은 버립시다.....^^
2. 주니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비교적 학생 수가 적다. 같은 학년에 두 반뿐이고 그나마 인원도 합쳐서 50명을 넘어가지 않는다. 이제 3학년이 되었으니 반만 갈라져 있을 뿐 서로 다 알고 지내는 사이가 돼 버렸다. 이러다 보니 학부모들도 서로 구면이고 연락을 주고받는 관계로 발전되었다.
문제는 어느 인간집단이나 있을 법한 잡음이 학부모들 사이에도 흘러나오고 있나 보다. 이건 아마 서로의 시선이 틀리기에 일어난 일이겠지만 이 잡음이 꽤나 마님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나 보다. 그에 비해 주니어는 제법 초연한 느낌이다. 초등학교 3학년치곤 제법 시크하며 시니컬한 모습을 종종 보인다.
마님에게 애교부리고 까불거려도 가끔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면 학교 내 급우들 간의 문제에 대해서 냉정한 분석과 더불어 명쾌한 해답을 내놓곤 한다. 갓 난 아기였을 때 마님과 나눈 대화 중 ‘내 성격과 늬 성격을 반반 닮은 아이가 나온다면 평범하진 않을 텐데 볼만하겠다.’가 점점 현실화 되는 느낌이다. 어이 주니어 그래도 짱구처럼 되지 말라고....
3. 발이 크다 보니 선택에 대한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슈어 홀릭은 아니지만 신발 하나 사기 위해선 이런저런 피곤한 전개가 발생한다. 러닝화 하나 사겠다고 돌아다녀 본 매장에선 신발을 보고 선택하는 게 아닌 일단 발에 맞는 것을 찾기 일쑤다. 그렇다고 밤에 돌아다니면 신발만 번쩍번쩍 보일 것 같은 형광색 만발 운동화는 도무지 엄두가 안 난다. 그리고 뭔 놈의 러닝화가 이리도 비싼지.. 무슨무슨 테크놀로지, 어쩌고저쩌고 기능에 가지가지 수식어가 붙을 때마다 가격표의 동그라미가 하나씩 더 붙는 느낌이다.
신고 다니는 운동화 뒤축이 거의 너덜너덜해지기 일보직전인지라 마님께 신발하나 사야겠어요. 넌지시 찔렀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이러하다.
‘가정의 달 5월은 참아주세요.’
하긴 어버이날, 어린이날, 스승의 날에 아버지 생신까지....나와 마님처럼 낀 세대에겐 5월은 지옥이라는 사실을 잠깐 망각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