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로 복귀하게 앞서 퇴근길에 간단하게 술을 한 잔했다. 잘 마시고 집으로 오는 길에 심한 갈증을 느껴 편의점에서 포카리 한 병을 구입 후 홀짝홀짝 마시며 습관적으로 담배를 물었다. 괘 더운 날씨였지만 그나마 해가 떨어지고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조금 쉬어가자는 기분으로 남은 포카리를 여전히 홀짝 거리며 인근의 중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컴컴한 운동장 군데군데 조명이 켜져 있고 동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뛰거나 걷거나 하며 나름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 가급적 구석에 위치한 정원 석에 앉아 제법 많이 타들어간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을 빨고 비벼 끌려고 하는 순간 어둠을 뚫고 나에게 다가오는 그림자가 목격된다.
보수단체 할아버지들 모여 집회라도 하면 자주 쓰는 군인모자에 추리닝을 입고 꽤나 보수색체를 물씬 풍기는 나이가 꽉 들어차신 할아버지 한 분이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다짜고짜 윽박을 지르기 시작한다. '학교 내는 금연이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지 마. 당장 꺼!'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죄송하다 하고 황급히 담배를 꺼 휴지에 돌돌 말아 주머니에 꾸겨 넣었다. 근데 이 할아버지 운동장을 한 번 돌때마다 자꾸 나를 째려본다. 내 손엔 이미 담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더불어 내 옆을 지나가며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을 연발한다.
잘못을 지적 받은 게 불쾌한 게 아니라 그 후의 행동에 한마디로 기분이 더러워지기 시작한다. 신경 끄자 생각을 정리하고 교문으로 향하는데 재미있는 장면이 목격된다. 꽤 어려보이는 아이들(고딩 정도)이 교문 바로 옆 가로등이 훤히 비치는 벤치에 모여 그들 특유의 언어인 존나체를 연발하며 담배연기를 모락모락 내뿜고 있었다. 때마침 나에게 쉰 소리 한 군인모자 할아버지는 그들 옆을 슬쩍 지나 열심히 걷기 운동에 열중하는 모습이 들어온다.
머릿속 사악한 생각이 가득차버렸다. 나를 획 지나가는 할아버지를 따라 걷기 시작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할아버지.. 뭐 좀 여쭤 봐도 될까요?'
'뭔데...나 바빠..!'
'저기 저 교문 옆 벤치 모여 있는 애들..꽤 어려 보이는데 담배를 물고 있네요?'
'그래서...?'
'학교는 금연구역인데 재들 담배 피는 걸 제지하셔야죠?'
'내가 왜...그리고 난 쟤네들 담배 피는 거 못 봤어..몰라..!'
흠. 일부러 외진 곳에서 사람들에게 피해 가지 않게 담배 피는 모습은 잘도 보이시는 양반이 훤히 가로등 밑에서 담배 피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라니...죄송합니다. 할아버지. 당신은 나에게 제대로 걸렸습니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누구에게 피지 말라 하고 누구에겐 침묵으로 일관하시네요. 할아버지는 보고 싶은 것만 보시나 봐요? 참 비겁하시군요..'
이 할아버지 한순간 표정 싸하게 바뀌더니 그 연세의 출연진이 TV에서 자주 외치는 대사가 고성으로 튀어나온다.
"젊은 놈의 자식이.. 예의 없고 버르장머리.......!"
재빨리 말을 끊고 한마디 더 던져드리고 내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요즘 세상에 예의 없고 버르장머리 없는 것이 비겁한 것보단 낫다는 생각이 종종 들더군요 왜 그럴까요?'
그 분의 말씀처럼 난 버르장머리 없고 예의도 없는 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비겁하게는 살고 싶지 않은 사람 중에 하나다. 노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오랜 경험에 의한 현명함과 지혜는 분명 본받아 마땅해야겠지만, 글쎄다 요즘 내 주변 혹은 대중매체에서 목격되는 노인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혈기왕성하게 광장에 모여 한쪽으로 치우친 편협한 모습을 광적으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지나치게 많이도 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