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님이 삐지셨단다. 일 때문은 아니고, 주말마다 산행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시며 직원들과 동참을 호소하셨는데, 참석률이 저조하였기 때문이란다. 하긴 주말이라고 직장에서 오는 등산인 들이 우글우글, 사무실 이름 들고 모여들어 우르르 산에 오르는 모습에 부러우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저질체력으로는 국가대표급인 나로서는 경사면을 오른다는 건 양 무릎도가니를 걸고 행해야 하는 모험이기에 차일피일 미루다, 이번만큼은 관악산이 아닌 새로운 코스를 간다 하기에 따라 나서기에 이르렀다. 토요일 아침 백 만년 만에 한강을 건너 독립문으로 향했다. 독립문에 무슨 등산코스가 있나 의아해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니 서울시가 야침 차게 준비하는 서울성곽 순례길이라는 새로운 코스가 만들어졌나 보다. 설명을 첨가하자면 조선시대 4대문을 경계로 빙글 둘러쳐진 성곽을 보수하여 산책 겸 등산코스로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부 구간은 완성되었고 아마도 올해 말쯤 되면 완전하게 복원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잡은 코스는 인왕산을 타고 올라갔다 내려와 창의문(자하문)에서 살짝 숨을 고르고 다시 북악산을 타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코스를 잡은 것이다. 독립문에서 시작하여 삼청공원 혹은 대학로 쪽으로 빠져 나오니까 서울을 1/4을 걸어서 완주하는 셈이다. 아침 10시에 모여 근처에서 김밥을 몇 줄 사고 생수 몇 통을 챙겨 오르기 시작했다. 뭐 이정도 경사야...하며 출래출래 성곽을 밟으며 가볍게 산책코스를 즐기며 인왕산 입구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리고 인왕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중략. 캑캑...우허허헉....우엑우엑...후들후들.... 그래 내가 인왕산이 개방된 후 처음 등산을 하고 벌써 10년도 더 넘었고 난 늙었고, 체력은 저질이 되었고...기타 등등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몸을 가지고 있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바위산을 오르고 올라 겨우 정상에 도달하니 서울 시내가 훤히 보인다. 전날 비라도 시원하게 쏟아져 내렸다면 아마도 인천까지 보이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겠으나 역시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백두산 천지처럼 일 년에 겨우 몇 번만 사람들에게 시원한 전경을 비춰주는 것 같다. 뿌연 매연과 스모그로 자욱한 서울. 그 한복판에서 나 역시 숨 쉬고 살고 있다는 사실만 새삼스럽게 떠오를 뿐이다.
뿌연 서울 상공. 그리고 인왕산 정상에서 만난 비둘기 한 마리. 그렇게 인왕산을 내려와 자하문 앞 생뚱맞은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김밥을 까먹고 막걸리를 두 잔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여기서 그만뒀어야 했다. 여기서...하지만 소장님 꼬김에 근사하게 넘어가버렸다.
여기서 그만 뒸어야 했어~~ 여기서 그만 뒸어야 했어~~ 괜히 북악산 탔어~~괜히 북악산 탔어~ ‘메팀장. 인왕산 보다 북악산이 더 쉬운 코스야. 그리고 저긴 정상이 아니라 산 옆구리를 끼고 도는 거야. 그리고 그 뭐냐 등산 마치고 저번에 먹은 북경오리구이나 먹으러 가자.’ 산 옆구리를 타건 쉬운 코스건 간에 난 역시 먹는 것에 약했나 보다. 그놈의 북경오리구이에 홀딱 넘어가 그까이꺼 북악산 하며 자하문을 향하고 있었다. 일단 이 코스는 군데군데 군인 아저씨(수도방위사령부 소속)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입장할 때도 자신의 신분증과 더불어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목줄을 선물 받는다. 코스를 돌며 꼭 착용해야 한다고 한다. 아마도 군사시설이기도 하고 이 산을 넘으면 바로 가카의 서식처와 직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그리하여 시작한 등산은 정말이지...정말이지.......
세상만사 오르막길~~~ 내리막길~~~ 오르는 계단만 900개. 경사는 45도 보다 가파르면 가파르지 결코 완만하지 않다. 그래도 경치는 일단 좋다. 왼쪽엔 난간. 오른쪽엔 성곽. 성곽을 넘어보면 그쪽의 서울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당연히 오른쪽은 촬영불가. 왼쪽은 촬영가능. 그렇게 숨에 턱이 차도록 오르고 또 올랐다. 일행보다 20분정도 늦게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캑캑 거리며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이런저런 여러 풍경들이 들어온다.
군인양반들이 키우고 있는지 방목하고 있는 노루(?) 몇 마리가 보이고, 그 옛날 무장공비 (김신조 사건) 넘어오다 총격전의 상흔이 남아있는 흔적, 기기묘묘하게 자리 잡은 바위와 온몸으로 웨이브를 시전하는 소나무까지..비록 오래간만의 산행으로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현상에 시달리긴 했지만 가급적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만든 등산로만큼은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서울 중심에 위치한 산 두 개를 오르락내리락하며 파김치가 되어 하산한 위치는 삼청공원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북촌마을. 몰골이 홈리스 몰골이었기에 주말을 맞아 한껏 예쁘게 차려입은 선남선녀 사이에 유난히 눈에 띄는 패션을 자랑하며 그곳도 모자라 인사동까지 관통을 하고 조계사를 거쳐 오리집에 도착했다. 독립문에서 시작해 산 두 개를 끼고 빙글 돌아 종로통으로 나오는 계단으로 따지면 2000개는 족히 넘고 거리로 따지면 서울의 1/4를 넘게 종주를 하고 바삭한 오리껍데기에 소주를 처묵처묵하며 토요일 하루 산행을 마치게 되었다. 고생은 했으나 코스만큼은 제법 괜찮았다. 남산코스는 제법 완만하고 가족끼리 산책으로 적당하도 하니 주니어와 마님을 끌고 남산코스를 한 번 돌아볼까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