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번 주였나.
집에 들어오니 아무도 없더라.
한 30분이 지났을까 속속 가족들이 도착하기 시작하는데
쇼핑들을 하셨는지 양손에 주렁주렁 물건들이 많기도 하다.
가장 큰 박스에선 아버지 이번 제주도 여행때 입으시라고 N모페이스
고어텍스 점퍼가 튀어나온다. 다음 박스에선 역시 N모 페이스 주니어용
유연한 트렉킹용 운동화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이것 저것..

가만히 내가 입는 점퍼를 살펴보니 소매끝이 조금씩 쓸려 안감이 보일락
말락 하더라. 아울러 꽤 오랫동안 신고 있는 오클리 검정색 런닝화는
저번 주에 떨어지려는 밑창을 본드로 겨우 고정시켰더라.

미쿡에서 보내는 누나발신용 소포 역시 마님과 주니어와 어머니 옷만
잔뜩 튀어나오더라.
.
.
.
.
다음 날 평소 점 찍어뒀던 만원짜리 책 바들바들 떨면서 과감하게 결재했다.

 

2.
예수님이 탄생하신 부활절 날, 주니어는 일주일 전부터 TV를 통해
열심히 광고하는 토마스와 친구들 극장판을 보여달라 조른다.

그래 마침 마님도 지방공연을 마치고 돌아 왔으니 예배 끝나고 극장으로
가면 그래도 영화는 볼 수 있겠다 생각했었지만 난데없는 부활절 행사가
걸림돌이 된다. 하필 그걸 오늘 통보받았다는 것.

그것도 2시 반부터 시작하는 오후예배 시간에 스케줄이 잡혀있다.
극장에 걸린 그 영화는 4시 15분이 마지막(우라질 그래 돈 되는 영화만
늦게까지 건다 이거지....) 극장도 집에서 멀리멀리 떨어진 곳.

애는 영화 보여달라 조르고 할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유초등부 발표에
주니어가 꼭 참가해야 한다고 못을 박는다. 더불어 마님은 영화 그거 나중에
보면 되잖아..라는 속 편한 소리 하신다. 다 내팽게치고 교회 건너편 아파트
단지 상가 주차장에 가서 담배 하나 물고 소리를 빽 질렀다. (닭둘기가 푸드득)

그나마 절충을 본 것이 3시 반에는 주니어 출연분이 끝난다기에 택시 잡아
타고 달려가면 되겠거니 했지만, 그날따라 목사님 설교가 참 길다.
(요즘 점점 길어진다.) 3시 45분에 끝나고 교회를 나와 택시를 잡아탔지만
만개한 꽃을 보겠다고 쏟아져 나온 인간들 덕분에 길은 꽉꽉 막힌다.

만사 귀찮다. 그냥 집으로 고고씽.

일요일 난 오지도 않는 잠을 일찌감치 청했다.(결국 실패했지만.)


3.
봄이라서 그럴꺼다. 아주 내외적으로 축축 처진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해한모리군 2009-04-13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시대의 유부남이란..

조금은 슬픈거군요 ㅎㅎ

웽스북스 2009-04-13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게요. 못피우는 담배라도 같이 물어야 할 것 같은 쓸쓸한 글.. (파다다닥 비둘기)

[해이] 2009-04-14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대의 유부남 ㅠㅠ

주니어 2009-04-14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부남이 되기 두려운 1인.

비로그인 2009-04-14 0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자뷰 현상...

무스탕 2009-04-14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봄이라서 그런거에요..
봄이라서 그런거여야지 1년이 저같으면 어찌 살겠어요..
봄이라서 그런거에요..

비로그인 2009-04-14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나케 거래처로 차를 몰고 씽씽 달리다가 여의도를 지날 때 차량 정체. 왜 그런가 했더니 대낮부터 꽃 보러 나온 사람들의 기나긴 행렬... 저도 넋두리 좀 얹어 봤어요 ㅅㅅ

2009-04-22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