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수준을 알려주는 건축물에는 무엇이 있을까?
쳐다보다 목뼈가 회까딱 뒤로 젖혀질 정도로 하늘을 찌르는 고층건물? 어마어마한 고금액에 거래되는 고급 아파트? 아님 명품이 가득한 초호화 백화점일까? 보존과 유지도 제대로 못하면서 입으로만 떠드는 문화재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을 꼽고 싶다.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웬 배부른 소리! 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기본적인 소양을 쌓을 수 있는 공간이고 더더욱 요즘같이 돈에 환장한 세상이라면 그 필요성이 애절해지는 건축물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실정을 따지면 내 주관적인 잣대의 기준으로는 개발도상국도 안 되는 수준이다. 그래도 그나마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 등은 소위 몇몇 사람들이 선별적으로 이용하는 공간으로 인식되며, 이용방법 또한 주용도에 맞게 이용되지 않는 실정이다. 내가 학생때 국립 도서관이라는 곳은 참고서 들고 입시 공부하러 들어가는 공간으로 주로 애용되었을 뿐이니까. 그건 대학에 들어가서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아침부터 치열한 자리싸움의 결과물로 얻은 열람실 좌석은 다들 전공책과 토익책을 뒤적이며 학점을 위해 혹은 취업을 위해 사용되는 공간으로 아직까지 애용되고 유지되고 있다.  

 

서초동에 위치한 '국립'중앙도서관

몇 년 전부터 서초동의 국립도서관은 이런 열람실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국립 도서관은 들어가는 입장부터 인상이 찡그려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위압적인 대칭형 칙칙한 회색건물의 전면 광장에 자리 잡고 있는 머릿돌을 쓴 사람의 존재부터 맘에 안들고(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애당초 도서관 용도로 건물이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꽤나 믿을만한 풍문은 그 건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부채질 한다. 원래 목적은 특정 정당(민정당)의 당사 용도의 건물 이였다고 한다. 풍문이다 풍문...

온갖 이유와 구실을 달면 한 나라의 간판이라고 볼 수 있는 "국립" 글자가 박힌 도서관은 이런 저런 이유로 성에 안차고 부정적이며 불만만 잔뜩 나오는 건물이라고 손가락질이 먼저 되곤 한다. 그게 꼭 거기서 같이 공부했던 옛날 애인에게 처절하게 차였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그럼 비교를 위해서라도 어디 딴 나라 국립 간판이 붙은 도서관을 살펴보자. 그래도 책이라는 것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보니 책과 가장 근접한 모습을 갖춘 프랑스 도서관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프랑스 국립도서관(the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 1995)
중앙광장은 콩코드 광장의 크기이며 장서능력은 천2백만권, 열람실 좌석은 오천석, 하루수용인원 이만명.
 

미테랑 대통령 재임당시 미래형 도시로의 도약을 위해 프랑스 파리에는 10대 프로젝트, 이름하여 그랑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국립 도서관이다. (아시다시피 파리의 유명 현대 건축물들이 이때 대거 출몰한다. 라데팡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등등.) 국민의 여론반대에도 자기의 예술적 주장을 관철하며 파리를 21세기 알렉산드리아로 만들겠다는 미테랑 대통령의 추진력은 결국 유럽 최고로 인정받는 도서관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누구와는 정말 비교되는 대목이다. 똑같은 추진력이 있어도 누군 삽질이나 해대고 있으니 말이다.

당시 40대 약관의 도미니크 페로 라는 듣보잡 건축가(이 분 우리나라에도 작품 하나 남기신다. E여대 프로젝트가 이 양반 작품이다.)를 일약 스타 건축가로 만들어 주기도 했던 이 도서관은 생김새부터 정감 있다. 높다랗게 세워진 4개의 건물 군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건물의 용도가 어떤 용도인지 대략적으로 유추가 가능하다. 4권의 책을 90도로 꺾어 4각을 만든 형태. 책을 모티브로 4개의 각을 만들고 그 갇혀진 공간은 광장으로 형성된다. 그리고 건물 사이의 공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유입이 가능한 개방성까지 겸비하고 있다. 중앙광장엔 자연녹지를 만들고 그 테두리에 3개 층의 열람실을 만들어 열람실 이용자들에게 책 냄새 풀풀 나는 도서관 열람실을 쾌적하게 만들어준다. 높이 오른 건물 군들 역시 콘크리트 보단 스틸과 유리를 통해 빛의 유입을 최대로 끌어들이는 대신 그 일조량을 강제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설비적인 측면까지 겸비하고 있다.  

 



4개의 건물 군에 갇힌 공간은 도서관의 특징상 폐쇄성과 밀폐성을 강조하면서 광장으로 조성되면서 개방감을 함께 가지고 있다.  



건물 외벽에 보이는 저 노오란 장막이 일조량을 조절하는 역활을 한다. 





중앙 광장에 조성된 대단위 녹지는 도시 속의 쾌적함과 더불어 안락함까지 선사해준다. 







엄청난 규모와 굵직굵직한 덩어리를 형성하는 거대 건축물이면서 실사용자들에게 전혀 위압적이거나 권위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그냥 부럽다. 이런 건물이 그 나라의 수도에 자리 잡고 국민들에게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하나의 문화를 제공해준다는 자체가. 외국 나가 태극마크 달고 스포츠로 국위 선양하는 것보다 이런 건축물들이 국가대표로 자리매김한다면 난 그게 더 자랑스러울 것 같다. 그에 앞서 이런 건물들을 아끼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국민성향 역시 필수요소 중에 하나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진출처 : http://www.perraultarchitec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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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0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20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9-01-2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로라는 양반 전 솔직히 싫어요.
프랑스 도서관이 아무리 근사해도 휘윳길과 신단수를 밀어버린 건 도저히 용납이 안 됩니다. 미래의 이화여대는 있어도 추억은 싹 사라졌지요.

Mephistopheles 2009-01-20 14:37   좋아요 0 | URL
그게..말입니다 조선인님...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입장(그래봤자 레벨차이는 하늘과 땅이겠지만)에서 변명아닌 변명을 하면 말입니다..사실 모든 건축물은 건축가가 맘대로 짓는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건축주의 의도가 깔려있는 거죠. 말씀하신 휘윳길과 신단수를 밀어버렸다는 말씀은 설계자의 책임이라고 말을 하긴 그렇습니다. 애시당초 저 정도의 규모의 설계를 할때 건축주는 여러가지 조건과 요구사항을 설계를 의뢰할때 필수지침 형식으로 첨부를 합니다. 이것만은 지켜달라. 기존의 어떤 부분만큼은 보존과 유지를 해달라. 일예로 일본의 어느 건축물은 꽤 유서깊은 나무가 존재하는 곳에 신축을 예정했었습니다. 그 건축물의 설계를 의뢰한 건축주의 우선 요구조건은 절대로 그 나무를 훼손하지 말아달라는 조건이였죠. 물론 유수의 건축가들이 그 설계에 도전했고 결국 낙점받은 설계안은 그 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보존과 유지가 최상의 조건으로 가능하며 신축건축물에 불이익이 가지 않은 설계안이였답니다. 조선인님이 말씀하신하신 휘윳길, 신단수는 설계자가 밀어버렸다기 보단 당시 캠퍼스 재계획을 수주한 E여대 행정부쪽의 결론이였을 것이라 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애시당초 그들에겐 졸업생들이나 재학생들의 추억의 한자락보단 새로운 E여대를 원했을지도 모를 일이고요. 페로라는 건축가가 그 학교를 다니지 않은 이상 더더군다나 이억만리 타국의 건축가인 그가 휘윳길과 신단수의 중요성을 알기는 더더욱 힘들껍니다. 누군가가 납득하게 유창한 불어로 설명해주지 않은 이상은요..

조선인 2009-01-21 08:28   좋아요 0 | URL
흑흑 공대를 지을 때만 해도 무슨 수종의 나무를 몇 그루 베어야 하는지를 세밀하게 따져 짔던 학교가 왜 그렇게 변했나 모르겠어요. 엉엉.

Mephistopheles 2009-01-21 11:00   좋아요 0 | URL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일지라도...
신자유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나긴 힘들겠죠..^^

마늘빵 2009-01-20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멋진 (프랑스) 도서관이군요! 저런 도서관이라면 회사 끝나고 집으로 안가고, 도서관으로 가겠어요.

Mephistopheles 2009-01-21 11:32   좋아요 0 | URL
사서가 미인이라는 사실은 어찌 알았습니까 아프님? =3=3=3=3
저도 그냥 오랫동안 편안하게 앉아있고 싶은 도서관이 하나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진주 2009-01-20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에도 새로 지은 도서관이 쬐금 이뻐요.
길고 길쭉한 푸른 빛이 감도는 유리덩어리 건물이 두 챈데, 3층엔 두 건물을 이어주는 통로가 구름다리처럼 있어요. 첨엔 이 구름다리에 속아서 실내가 무지 넓은 줄 착각했어요 ㅋ 그냥 책 따라 복도를 살짝 지났을 뿐인데 어느 새 옆건물로 가 있었으니까요. 열람실 책상이며 의자들도 제법 돈 좀 들여 이뿌구요. 담에 어떻게 사진 함 올려보도록 할게요. 요즘 카메라가 맛이 가서 찍어도 이쁘게 안 나오니 찍을 맛이 없어졌어요..

Mephistopheles 2009-01-20 15:34   좋아요 0 | URL
많이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긴 해요 지방 소도시나 지역에도 이젠 제법 도서관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제법 효율적인 건물들이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근데 그 도서관 이름이 뭔가요..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마노아 2009-01-20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은 열람실인가요? 왼쪽의 하얀 지지대는 스탠드인가요? 분위기가 근사해요!
메피님, 이거 계속 연재해줘요. ^^

Mephistopheles 2009-01-21 11:00   좋아요 0 | URL
그게..그 한겨레 기자분처럼 제가 그리 박학다식하지 않기 때문에 연재는 부담이...^^ 그냥 심심할때 여유있을 때 간간히 하나씩 올리도록 하죠..
마지막 사진은 열람실 맞습니다. 건물의 성격에 맞게 꽤 모던한 가구들이 들어가있죠..^^

2009-01-20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20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1-20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멋지다...사서가 미인이라니 더 가고 싶네요.그 곳 여인네들을 위해서는 제가 사서로 들어갈까요?

Mephistopheles 2009-01-20 17:20   좋아요 0 | URL
저기..노이에자이트님...저...제가 아프님 댓글에 사서가 미녀라는 말은 그냥 웃자고..하는 소리였고요..(사실 저 큰 건물에 프랑스 사서미녀가 분명 있기야 있겠죠. 우겨!우겨!) 사실 진짜 사서 미녀는 알라딘에 세X님이라고 계십니다..^^

Arch 2009-01-20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좋은데요. 요새 박물관 순회를 다니고 있는데 건물 외양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중박이나 민박 같은 경우 예전에 유물만 갖다놓는 것에서 진일보해 다양한 콘텐츠를 정감있게 잘 배치했더라구요. 민박에 가서 한참동안 배틀을 짤때 쓰는 반디(뭐였더라)란걸 제작하는 영상을 보기도 했어요.
이촌에 있는 중박의 도서관에도 가본적이 있는데 물론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잠을 잤죠. 참 따뜻하고 아늑했어요. 책종류가 거의 박물관 관련 자료 위주였지만 전등을 조금 낮게 달아놓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인 층간 높이를 무마해주더라구요.
나중나중에 메피님이 정말 멋진 도서관 설계하면 제가 자주 가서 달고 단 낮잠 많이 잘게요.

Mephistopheles 2009-01-21 11:39   좋아요 0 | URL
그게..제가 도서관을 설계할 일이 있을까 싶습니다..주업종과 전혀 관련이 없어요...ㅋㅋ 그리고..아치님..도서관이 아니라 수면방을 설계헤드려야 겠는데요??ㅋㅋ

Arch 2009-01-21 14:13   좋아요 0 | URL
와, 역시 절대 아니에요. 도서관이어야 잘오는 잠의 종류가 있다죠.

L.SHIN 2009-01-21 0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래형 디자인이군요.^^
보유한 책이 천2백만권이라니, 꼭 가보고 싶습니다.(웃음)

Mephistopheles 2009-01-21 11:03   좋아요 0 | URL
미래형이라기도 보고 싶지만 형태의 단순화를 기준으로 계획을 한 것 같습니다. 잘 보시면 곡선을 찾아보기 힘든 건물이죠. 대신 외부재료의 다양성과 독창성으로 차별화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근데 천이백만권이 다 차있진 않겠죠..^^

L.SHIN 2009-01-22 05:43   좋아요 0 | URL
가서...세봐서 천이백만권 맞으면 어쩔거에요? 응? 응?
(라고는 해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메피님은 너무나 태연히 '그렇구나'라고
급인정해서 내 사(악)기를 확 눌러버릴 것 같은 기분은 왜..? ㅡ.,ㅡ)

paviana 2009-01-21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메피님이 아티스트라는게 실감이 나네요.
흠 근데 차인적도 있으시군요.=3=3=3
참 추천은 연재를 계속해 주시라는 의미에요.

Mephistopheles 2009-01-21 11:04   좋아요 0 | URL
앙선생님 오바랩 하시면... 좀 곤란..ㅋㅋ 근데 전 아티스트였던 적은 없어요. 단지 노다가꾼일 뿐이라는..^^

엄훠...그때의 수많은 상처로 인해 제가 있는 겁니다..흠흠..ㅋㅋ

비로그인 2009-01-21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생각으로는 한 20년 후부터 한국의 모든 건물에
새로운 건축양식이 도입되리라 예측합니다.
상용, 개인용, 공공건물 등 전반에 걸쳐 혁명적 건축개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본답니다.
지금 집은 집이 아닙니다. 그저 거처이지요...
국적 불명의, 가격대비 용적율만 극대화한.. 날림 건물들, 집같지 않은 집들을
새로운 정신에 맞는, 한국인의 삶에 맞는 집다운 집, 건축물다운 건축물을 지을 날이
오겠지요.
그때가 되면, 메피스토님께서 그 일을 주도하시기를.. 최고 관리자(CEO)로서
하하




Mephistopheles 2009-01-21 22:57   좋아요 0 | URL
20년까지는 안가더라도 늦어도 5년내로 설계바닥은 많은 변화가 올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과연 바뀔까 그게 의문입니다. 한사님이 말씀하신 국적 불명,가격대비 용적율 극대화 날림 건물 집같지 않은 집....원하시는 건축주분들이 꽤 많다보니 먹고 살려면 해달라는데로 해줘야 하겠죠..^^ 20년 30년이 흐른다한들 집을 집으로 안보고 투기의 목적으로 보는 건축주가 있는 한...이런 거품 잔뜩 들어간 집들은 계속 양산이 될 것 같습니다..^^

비로그인 2009-01-22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책을 세워둔 것 같네요. 내부도 시원시원하니 쾌적해 보이고요.

Mephistopheles 2009-01-22 15:52   좋아요 0 | URL
장서를 보관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읽기도 하는 공간이므로 도서관을 계획 할 땐 극단적인 두가지 개념을 상충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프랑스국립도서관의 경우는 이 두가지 개념을 조화롭게 융합시켜 상승효과를 가져왔죠.. 아마 건축가 머리꽤나 아팠을 껍니다..수명도 한 몇년 줄어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