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공화국(아랍어: الجمهوريّة البنانيّة)은 중동에 있는 이슬람교 60% 그리스도교 39% 의 다종교 국가로서, 시리아와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수도는 베이루트이다.
1. 역사
좋은 항구를 가진 혜택으로 레바논은 옛날부터 교역의 중심지로 번영하여 왔다. 약 5,000년 전 기원전 3000년경부터 페니키아인이 해안지대를 근거지로 하여 티루스(지금의 티레)·시돈 등의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그 뒤, 바빌로니아·페르시아 제국·로마 제국 등의 지배를 받았는데, 로마는 기원전 64년에 레바논을 점령했다. 로마시대에는 티루스에 해군기지가 설치되었으며, 서기 300년대에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졌다. 395년에 레바논은 비잔틴 제국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러나 600년대초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아랍인들에게 정복된 이후부터 아랍화·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이 시대에는 산악지대가 시아파(派)·드루즈파 등의 이슬람교 이단파와 마론파 그리스도 교인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11~12세기에는 셀주크 터키와 십자군의 쟁탈장이 되었으며, 1516년에 오스만 제국에게 정복되어 19세기까지 이 제국의 술탄 밑에서 반독립적인 여러 세력이 레바논을 지배했다.
19세기에 들어서자 오스만 제국은 레바논의 직접적인 지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으며, 마론파 그리스도교도와 드루즈파 이슬람 교도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서 많은 그리스도 교인들이 살해되었다. 이 분쟁에 프랑스가 개입한 것을 계기로 1861년 마론파 그리스도교인들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했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함에 따라 1920년 4월 산 레몬 회의에서 베카고원 등의 내륙부도 레바논에 합병되었으며, 1923년에는 시리아 등과 함께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그러나 이 조치로 인하여 레바논에서의 그리스도 교인과 이슬람 교인의 수가 거의 비슷하게 되어 마론파 그리스도 교인들의 우위는 무너졌으며, 그 뒤 정세불안은 더욱 심해졌다. 1926년 시리아에서 분리되어 위임통치 아래 자치국이 되었고, 1944년 1월에 완전독립을 달성했다.
독립 뒤 레바논은 복잡한 종파(宗派)의 대립을 배경으로 독특한 종교연합국가를 형성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중립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철저한 자유화 정책을 추진하여 아랍 여러 나라의 물자와 정보 제공의 중간자적 역할로 독자적인 번영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 일어난 중동전쟁에 말려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1970년의 요르단내전 이후 요르단으로부터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유입되어 레바논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근거지가 되었다. 그래서 이따금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을 받았으며, 마론파 그리스도 교인들도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반대하는 팔랑헤(Phalange)민병대를 결성했는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게릴라에 반대하는 이들을 지원했다.
1975년 2월에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을 지원하는 이슬람교도와 이에 반대, 팔랑헤 민병대를 결성한 마론파 그리스도 교인들의 내전이 일어났으며, 1976년 11월에는 시리아군의 개입을 초래했다. 또한 1982년 6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여 PLO 소탕을 위해 서(西)베이루트를 완전히 포위하고, 2개월에 걸쳐서 맹폭격을 가했다.
그해 8월 미국의 중재에 의하여 PLO의 서베이루트 주둔 군대의 철수 합의가 성립되어 약 1만 명의 PLO 게릴라는 아랍 세계 8개국으로 퇴거했다. 그 이후에도 1982년 9월의 그리스도교 민병의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사건, 1983년 7~9월의 그리스도교·이슬람교 각 파에 의한 내전 격화와 미국 해군의 함포사격, 1983년 10월의 미국 및 프랑스의 주둔 본부에서의 폭탄테러사건 등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1984년 1월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이슬람교도 세력과 정부군·그리스도교 민병대의 내전이 또다시 격화되었으며, 미국 해군은 이슬람교 민병대 거점에 재차 함포사격을 가했다. 그해 2월 이슬람교 세력이 총궐기하여 서베이루트를 제압했으며, 3월에는 시리아의 주도 아래 정전(停戰)이 실현되었다. 2006년에는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았다.
이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했던 정치인인 라피크 하리리는 2005년 2월 14일, 폭탄 테러로 숨졌다.
2. 정치
레바논은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이슬람에게 같은 수의 의원을 보장한다. 각 종교에 대해 64명의 의원이 할당되어 총 128명으로 의회가 구성된다. 선거구에 따라 종파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며, 이웃 국가인 시리아의 영향력도 강한 편이다. 레바논의 정당 가운데 하나인 헤즈볼라는 미국 등의 국가로 부터 테러 단체로 취급받기도 한다. 레바논은 2007년 11월 이후 대통령이 공석이었으나 2008년 5월 25일 미셸 술레이만이 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3. 기후
레바논은 연중 약 300일간 맑은 날씨를 보인다. 겨울에도 해안지역은 따뜻하고, 산간지역에만 눈이 내린다. 여름에는 해안지역은 덥고, 산간지역은 따뜻하다. 이러한 기후 조건 때문에, 레바논에서는 봄 동안에 같은 날 산에서는 스키를 타고, 해변에서는 해수욕을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5. 언어
1990년 헌법 11조에 "아랍어는 공용어이다. 법률은 프랑스어를 사용할 경우를 결정할 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부처는 프랑스어도 아랍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비중을 높여가는 영어는 일상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아르메니아어, 그리스어도 사용된다.
6. 종교
레바논은 공식적으로 이슬람교를 국교로 채택하지 않은 유일한 아랍 국가이다. 인구구성은 아랍인이 95% 이상이고 아르메이니아인이 4% 가량이며, 종교는 이슬람교 60%, 그리스도교 39% 이며, 그리스도교는 칼케돈공의회 당시 갈라져 나온 비 칼케돈공의회 교회인 마론파(派)가 가장 많으며, 그외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회 등의 기타 기독교 종파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600년대 초 아라비아 반도부터 이슬람교도가 레바논에 정복하는 바람에 서서히 아랍화·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혼합된 종교인 드루즈도 있다.
프랑스가 시리아를 독립 시킬 당시 마론파 그리스도인이 많았던 레바논 지역을 따로 분리 독립시킨 것이 현재의 레바논이며, 독립당시는 그리스도교 비율이 과반 이상이었으나 현재는 오히려 이슬람인구가 과반을 넘어가며 기독교국가도 이슬람국가도 아닌 다종교, 자유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나라이다.
레바논에서는 정계에서 기독교인과 이슬람교인이 평등하게 공직을 맡는다거나 하는 종교간의 공존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내전을 종교간의 대립으로만 보는 것은 편향된 생각이다. 독립 초기 레바논의 의석 과반이상을 점유하던 마론파 기독교계의 위상은 점차 축소되어 이제는 이슬람교계 의석이 과반을 넘김에 따라 기독교계 대통령은 이슬람계의 눈치를 보거나 지원을 얻지 않고는 당선이 어려울 지경에 이르러 있다.
7. 군대
레바논 헌법에서는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야 하는 징병제를 실시한다고 되어 있다.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B%A0%88%EB%B0%94%EB%85%BC
바시르는 누구인가?
-바시르 제마엘 : 레바논의 대통령. 정치배경은 친이스라엘파이며 마론파 그리스도교의 오른팔.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인 아리엘 샤론의 계획하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취임을 앞두고 폭탄테러로 사살당함.(배후설로는 레바논이 친이스라엘국가로 전락하는 걸 반대했던 시리아가 유력함.) 이를 계기로 1982년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레바논 침공이 이루어짐.
바시르와 왈츠를 (Waltz With Bashir, 2008)
감독 : 아리 폴만
단지 영화 한 편을 봤을 뿐인데 가슴 속에서 폭탄 하나가 터져 버렸다. 얼마나 강력한지 아직까지 얼얼하다. 그 폭탄은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점화되게끔 만들어진 시한폭탄이였다. 내가 이 영화를 봤을 때 같이 봤던 극장 안의 관객들은 나와 똑같은 피해를 받았는지 마지막 엔딩이 올라올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장황한 설명이 필요없는 영화다.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써 봐야만 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아쉽지만 얼마 안남았다. 20여년이 지났음에도 인류사회에선 학살이 멈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