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철없던 시절 많이도 받아 본 질문은 아마도 “커서 뭐가 되고 싶니?” 혹은 장래희망에 대한 것들이었다. 집에서 가족들에게 혹은 친척들, 학교에선 수업시간까지 할애하면서 글짓기 형태 혹은 발표의 형태로 수도 없이 여러 차례 자신의 장래에 대한 견해를 강요당해왔었다.

그 종류도 가지가지였다. 누구는 대통령, 누군 장군, 여자들은 미스코리아까지 나왔었다. 철  모르는 시절 단순히 동경의 대상을 맹목적으로 지껄인 것일 수도 있었을 테고 그걸 듣는 어른들 혹은 선생님들은 겉으로는 어린애들의 그 순진한 마음에 감히 상처를 줄 대꾸는 해주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속으론 현실감각이 떨어진 환상적인 그 장래희망에 대해 자신들의 경험을 비추어 회색빛으로 도배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 장래희망은 “과학자”였었다. 어느 분야라는 구체적인 것까지는 무리였고 그냥 하얀 가운을 입고 보글보글 김이 올라오는 시험관을 가지고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이 근사하게 보여서 동경하곤 했었나 보다. 물론 지금이야 배 굷기 딱 좋은 직종이라는 오명으로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천대받는 직종이긴 하지만 서도... (현재 청소년기 후반기의 장래희망대로 건축공돌이다.)

앞에서 주절주절 어린 시절 꿈과 장래희망을 지껄인 이유는 이런 유년시절의 조각을 떠오르게 해준 영화 한 편을 봤기 때문이다.



애스트로넛 파머 (The Astronaut Farmer, 2007)
주연 : 빌리 밥 손튼


철없는 늙은 어린이로 보이기도 하며 무모하게 혹은 이기적으로도 보이기까지 하는 영화 속 주인공의 직업은 표면적으론 “농부” 다. 애가 셋이나 딸리고 그리 넉넉지 못한 형편에 아버지가 물려준 농장을 겨우겨우 굴리는 수준의 무능함까지 겸비하고 있다. 언제나 그의 눈빛은 공허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에 시선을 주는 느낌까지 든다. 이 정도라면 분명 가족들에게 무시를 당하며 가장취급을 못 받는 것이 현실일 텐데 영화 속 그의 가족들은 지나치리만큼 화목하다. 창고에 비행기 폐기 부품들을 모아 지구궤도 순환 로켓을 만들어도 가족들의 신뢰는 여전하다.

여느 가정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속 비현실적인 가정에게도 위기는 찾아온다. 로켓을 만드느라 써버린 돈으로 인해 집은 저당 잡히고 발사를 위해 주문한 엄청난 양의 연료로 인해 FBI의 감시, 황당한 로켓발사로 NASA의 견제까지 받게 된다.

한 번의 실패로 다시 뭉쳐진 가족들의 단합으로 두 번째 발사에서 주인공 “파머”는 꿈에도 그리던 “우주비행사”를 실체화한다.

영화의 기본 줄거리와 장르를 말하고자 한다면 이것 SF를 위장한 고밀도 가족영화라고 칭할 수 있다. 그리고 인생의 중반부에서 소멸돼버리고 지워진 꿈을 되살리는 어떤 남자의 분투기 정도로 봐도 무방하게 느껴진다. 영화가 유치하게도 혹은 지나치게 이상적으로도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을 꾸지 않는 자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라는 다소 실천하기 어려운 확실한 진리만큼은 깊게 패일 정도의 감상은 남게 된다.



로켓 이름 한번 근~~사하다~!

어쩌면 난 지나친 이상주의 혹은 감상주의자일지도 모르겠다. 파머의 이 황당한 로켓이 지구궤도를 벗어날 때 눈물이 찔끔 났으니까. 그게 영화 속 파머의 꿈이던 이미 바래져 흔적조차 없어졌을지도 모를 나의 또 다른 꿈 한 조각을 기억해냈기 때문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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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8-03-06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좋은 영화를 멋지게 소개해주시는 님 감사합니다

Mephistopheles 2008-03-07 02:32   좋아요 0 | URL
영화는 좋은데 소개는 항개도 안멋지다죠...^^

세실 2008-03-06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꿈은 스튜어디스~~ 였답니다. ㅎㅎ

Mephistopheles 2008-03-07 02:32   좋아요 0 | URL
음..세실님 정도의 미모라면...통했을 껍니다.

웽스북스 2008-03-07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세실님 저두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반년 정도 ㅋㅋㅋ
나머지 반년은 변호사였던 것 같구 ㅎㅎㅎ

메피님은 꿈을 이루셨군요!

Mephistopheles 2008-03-07 02:34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은 스튜디어스보다는 왠지 변호사가 엄청 잘 어울릴 것 같아요..따박따박..법정에서 어쩌면 불패신화를 자랑하는 맹렬변호사가 되었을지도 몰라요..ㅋㅋ 꿈이야...이뤘다기 보단 그냥 현실에 만족하는 편입니다. 이 분야도 꿈이라는 영역과 현실의 영역이 엄청난 괴리감이 있는 직종이니까요..쩝

산사춘 2008-03-07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꿈이 없었시유. 써내라해서 많이 지어냈는데 기억도 안나유.
엇, 생각해보니 잠깐 FBI가 되고 싶긴 했었네요.
세상물정 모를 때니까 봐주셔야 해요.
근데 저 로켓은 우유가 담겨있을 것 같은 미모여요. (고작 생각하는 게!)

Mephistopheles 2008-03-07 10:54   좋아요 0 | URL
FBI...좋죠..빵빵한 연봉에 안정적인 복지혜택까지...다분히 현실적이지만 사실인걸요.^^ 저기 저 로켓..ㅋㅋ 저 역시 딱 보고 옛날 농장 우유통 생각해부렸어요..ㅋ

비로그인 2008-03-07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꿈은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는데 이게 지속적으로 유지가 필요한 것이죠.
...
꿈을 현실에서 만들어내기는 여러가지로 어려운 겁니다.-.-

Mephistopheles 2008-03-07 20:34   좋아요 0 | URL
최고급 승용차보다 더 고가의 유지비가 드는 종목이군요..돈만 드나요 몸바쳐 정신바쳐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지요..^^

L.SHIN 2008-03-07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멋진데.

If we don't have our dreams, We have nothing.

전에는 아무 느낌 없던 단어와 문장들이 어느 순간 가슴에 들어올 때 그 단어는
살아있는 것이 된다....

난 꿈이 없었어요. 있는 척 했었죠.

Mephistopheles 2008-03-07 20:35   좋아요 0 | URL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아직 표면화 구체화 되지 않은 것 뿐일 수도 있잖아요.

L.SHIN 2008-03-07 21:45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언젠가 '이게 내 꿈이야' 라고 말한다면 정말 기쁠거 같아요.
늘 부러웠거든요.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웃는 사람들이.

Mephistopheles 2008-03-07 23:43   좋아요 0 | URL
근데 그 꿈이라는 것이 또 공상과 허풍의 경계와 밀접하게 붙어있어서요..^^남의 꿈을 들을 땐 주의깊게 들어야 할지도 몰라요.^^

L.SHIN 2008-03-08 13:02   좋아요 0 | URL
엉뚱하거나 파격적이거나

프레이야 2008-03-07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도 꿈이 없어요. 그런데 작은딸은 꿈이 4가지 정도에요.
그게 신기해요. 메피님의, 지구궤도를 벗어나 날아가버린 꿈(또다른 꿈)
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요^^

Mephistopheles 2008-03-07 20:36   좋아요 0 | URL
혹시 어린시절 이후 여러 경험으로 인해 망각의 수순을 밟은 건 아니였을까요. 제 잃어버린 꿈이요. 그냥 평범하게 악기 하나 들고 무대에 오르는 꿈 정도..?? ^^

2008-03-07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07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