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집 이전의 집.그러니까 신축을 하기 전의 2층 단독주택이였을 때 2층에 기거하고 있었던 마님과 나는 어느날 우뢰같은 빗소리에 놀라 밖을 살펴본 적이 있었다. 장대처럼 비는 쏟아부었고 유리창을 꽤나 세차게 때려주고 있었다.
오래된 집이지만 물이 샐 염려까지는 아니더라도 밖으로 직접 통하는 다용도실의 문쪽에 난 배수구로 여차하면 배란다의 물이 넘쳐오곤 하기 때문에 물단속을 하겠다는 심산으로 다용도실로 향하게 되었을 때. 다용도실 문입구를 버티고 있는 비에 쫄딱 젖은 왠 새끼길냥이를 목격하게 되었다.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나를 경계하던 녀석은 꼴에 이빨까지 까 뒤집으면서 캬~캬~를 연발하며 앞발을 휘휘 휘두루기까지 했었다. 마님을 불렀더니 마님은 대번에 귀엽다를 연발했다. 길다란 대걸래에 양말을 둘둘 말아 톡톡 쳐줬더니 아까의 그 호기는 어디로 갔는지 구석에 쪼그리고 눈치를 보더라. 측은한 마음에 자그마한 접시에 우유도 놔주고 참치캔 작은 것도 대령해 줬더니 눈앞에선 쳐다보지도 않던 녀석이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그릇을 싹싹 비워재끼는 식탐을 은연중에 과시했었다.
비가 그치고 나니 엄마찾아 밖으로 나갔고 아주 가끔씩 그 녀석을 마주쳤지만 여간해선 친해지긴 힘든 존재였었다. 그 후 몇 주가 지난 후 예정대로 철거에 들어갔고 그 이후론 그 녀석을 만나는 일은 없었다.
집안으로 들어온 길냥이 새끼가 그러하듯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길냥이들의 습성은 사람을 경계하고 어찌하면 사람눈을 피해 살아갈까 짱구를 굴리는 존재의 대명사라 보여진다.
인간사회에 곁들여 사는 동물치고는 가까워질래야 가까워지기는 힘든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 그건 아마도 워낙 길냥이들을 매정하게 타박하고 천시하는 우리나라의 표독스런 "길냥문화"가 원인제공을 했으리라 보여진다.
재미있는 사실은 세계의 길냥문화를 체험하고 오신 마님의 증언에 따르면 터키나 이스라엘의 길냥이들은 우리나라의 길냥이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벽 한쪽에 하이드님을 집사로 부리는 말로의 식빵자세로 볕을 즐기며 거리낌없이 낮잠을 주무시고, 지나가는 사람이 호감을 가지고 손으로 부르는 사인을 하면 그 사람 품에 폴짝 안기기까지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길냥이들의 품성과는 전혀 상반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
터키에서 마주친 길냥이는 마님의 품에 안겨도 전혀 발톱을 내세우거나 거부를 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의 길냥이 역시 별반 다를바 없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거기다가 곱고 이쁘기까지 하여 마님의 표현대로라면 "데려오고 싶더라"라는 갈등까지 겪었다고 한다.
하긴 신혼여행으로 갔던 몰디브 리조트 안에 서식하는 고양이들 역시 마님 무릎 위에 폴싹 뛰어올라 눈 가늘게 뜨고 낮잠을 즐기실려고 폼을 잡기까지 했으니까.
생각해 보니 이건 아무리봐도 길냥이가 문제가 아니라 길냥이들의 터전인 인간사회의 습성의 차이점이라는 결론이 나와 버린다. 다시말해 우리나라 인간사회가 터키나 이스라엘보다 각박하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길냥스럽다."라는 사전에도 없는 표현이 까칠하고 어두운 이면의 모습이 아닌 이왕이면 밝고 사랑스런 표현이 되었으면 좋겠다마는 발정기때 밤하늘을 찢어놓는 괴기스런 울음소리만은 사양이다.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는 것도 걱정해야 할 상황이고 말이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93201143327860.jpg)
이 녀석이 이스라엘 고양이.. 사진 찍으려고 해도 도망가지도 않고 손으로 부르니까 폴짝 뛰어내려 냅다 달려왔단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93201143327862.jpg)
아 녀석은 터키출신 고양이 늘어지게 낮잠 주무시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