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지독하게도 쏟아지던 날 공중파를 통해 이 영화를 만났다.
공중파의 그간의 영화편성과 비교하자면 파격적인 편성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제르미날 (Germinal, 1993)

검색창에 때려 넣어보니 "에밀 졸라"의 원작소설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출판년도는 1885년

《루공 마카르 총서》 제13권. 1885년 출간. 제명은 혁명력(革命曆)의 제7월 '아월(芽月)'의 뜻이다.
주인공 에티엔 랑체는 《목로주점》의 제르베즈의 셋째아들이다. 실직하여 북프랑스의 몽수 탄광의 광부가 되었는데 동료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고 분개하여 사회주의적 정열에 불타 그 지도자가 되어 파업을 일으킨다. 그러나 회사측은 양보하지 않아 광부들의 생활은 더욱 궁핍해져 폭력화하나 군대의 개입으로 광부들은 패배한다. 그때 한 사람의 무정부주의자가 지하수도를 끊어서 전갱도를 파괴시킨다. 애인과 함께 갱도 안쪽에 갇혔던 에티엔은 10일 후 구조되었으나 애인은 이미 죽어 있었다. 군중의 장대하고 힘찬 모습을 서사시적으로 그린 걸작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영화는 회색빛이 칙칙하게 드리운 탄광촌이 배경인 영화이다.
배경은 무채색일지언정 나오는 계급과 계층...그리고 이념의 경우는 지나치리만큼 다채롭다.

탄광의 사장단으로 분류되는 부르조아계급은 타락적이며 퇴폐적이고 착취자의 모습으로 나타내어진다.
호화로운 성찬을 섭취하면서 부양가족이 먹을 초라한 빵 한조각을 위해 1프랑을 구걸하러 온 광부의 아내에게 일해서 번돈을 방만하게 낭비한다는 질타가 이어진다.

사회주의자의 모습으로 나오는 술집주인은 이상적이다.
광부들의 파업을 충동질하며 그당시 노조의 초기적인 모습을 갖추었으리라 추정되는 세계노동자연합에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한다. 전직 광부였기에 광부들의 입장과 사정을 잘 아는지라 그들의 편에 서 있으나 식구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빵 한조각을 원하는 광부들에 비해 그의 생각은 영화의 배경에 비해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현실감이 떨어진다.

주점의 한귀퉁이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나키스트는 충동적이다.
광부들의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르조아의 편도 아닌 오직 피를 봐야 세상은 변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이 과격한 아나키스트는 영화내내 입으로만 떠들고 입으로만 자신의 이념을 설파한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갱도붕괴사건의 원인을 제공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이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무모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념들이 충돌을 거듭하는 한가운데 광부들이 존재하고 있다.
1800년대 후반의 척박한 노동환경 속에 배부르게 먹고 등따시게 잠을 청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을 위해 수백미터 막장에서 탄을 캐는 그들에겐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어 보인다.

대를 이어 탄을 캐는 집안이 대부분이고, 가족의 구성원 하나하나는 노동력으로 규정짓는 참담함까지 보여준다.그리고 머리에 묶는 리본 하나에 정조를 파는 문란함까지 보여준다. 남녀의 혼인역시 돈을 벌 수 있는 노동력의 방출이라는 개념으로 다가오고 있을 뿐이다. 야만적인 폭력으로 딸을 강탈당한 어미는 딸의 안위보다는 딸이 벌어오는 노동력의 부재를 한탄하며 딸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러한 생활고에 설상가상 편법적인 임금삭감으로 인해 극에 달한 광부들은 파업을 선택하게 되고 협상의 생각이 없는 고용주들과 배가 고파 다시 착취의 현장인 막장으로 향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동료들과의 충돌로 인해 이 집단은 결국 무력집단이라는 모호한 규정아래 군대와 대치하게 된다. 결국 한발의 총성과 함께 영화의 주인공인 마유는 절명하게 된다.



마유(제라드 드빠르디유)는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군대의 총탄에 절명하게 된다.

군대의 진압과 아나키스트에 의한 탄광 붕괴사고로 많은 것을 잃은 광부들은 다시 길들여진 삶속으로 귀환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이 치열한 삶의 현장을 도피하는 또다른 주인공 에티엔은 노조와 노동자의 권익상승을 예견하는 듯한 독백을 읊조리면서 영화는 끝마친다.

흑색과 회색이 배경의 대부분인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결국 새벽 5시까지 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밖에는 백색의 눈이 퍼붓고 있었지만, 영화의 후유증으로 인해 그 눈마져 회색으로 간주되버렸다.

1800년대 후반의 그 모습에 비해 지금의 현실은 많은 발전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 내면만큼은 아직도 그때의 모습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념의 갈등은 모호해졌으며 노동자계층의 권위향상까지 이 영화의 마지막 독백처럼 정확히 예견했다지만, 그 계층간의 분열과 권력화만큼은 예견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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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12-18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보고싶군요.

antitheme 2006-12-18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자와 죽은자>를 읽으며 다시 보고 싶었는데. 공중파에서 방송하는 걸 놓쳤다니 아쉽네요.

urblue 2006-12-18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때 친구에게서 생일 선물로 <제르미날>을 받았는데, 앞에 조금 읽다가 던져버렸습니다. 지독히도 건조하고 재미없는 문장이더라구요. -_- 저도 <산 자와 죽은 자>를 보고 나서 <제르미날>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는 어떨까요. 그 시간에 대체 뭘 하느라 영화 하는 줄도 몰랐을까요. 에효.

2006-12-18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12-18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라르 드 빠르디유가 나왔군요.
대학시절 이 사람 출연한 영화를 유독 많이 봤었는데요.
분위기를 너무 잘 잡아 코미디마저도 그 만의 색깔로 보일 정도였죠.
볼 수 있는걸 못 보니 아쉽네요.

기인 2006-12-1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산자와 죽은자>보면서 ㅎㅎ
<산자와 죽은자> 정말 추천이에요 ^^

해적오리 2006-12-18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르미날 책으로 읽는다고 책 산지가...7년 되었네요... 흐메... 이젠 함 꺼내서 읽어보아야겠어요..

stella.K 2006-12-19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거 봤어요. 이번에 또 보여 주더군요. 지난번에 봤을 때 끝에 3분의 1은 못 봤는데 이번엔 끝까지 봤어요. 영화 정말 잘 만들었지요. 근데 이런 영화 좋아하는 것 아니에요. 마음이 무거워져서...에밀졸라는 제가 좀 감당이 안 되더라구요. 그래도 리뷰 써 볼까 하다가 접었어요.ㅠ.ㅠ

Mephistopheles 2006-12-19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 참고로 DVD출시도 안되었고...비디오도 꽤 오래전에 출시되었을 껍니다..^^
안티테마님 // 반갑습니다 초면이네요..^^ 전 님덕분에 산자와 죽은자가 보관함에 들어가버렸습니다..^^
블루님 // 영화는 다분히 직설적입니다...공중파가 많이 발전했더라구요..옛날같았으면 여지없이 짤려져 나갈 장면도 19금 걸어놓고 뿌옇게 처리해버리더라구요..^^
주소 속삭여주신 분 // 접수했습니다..지금쯤 열심히 달려갈 껍니다..^^
승연님 // 저는 저 배우의 영화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시라노"였습니다.
정말 감명깊고 재미있게 봤거든요..^^
기인님 // 보관함에 들어갔습니다 꼭 구입해야 겠군요..^^
해적님 // 구해서 읽어보고 싶어도 죄다 절판이더군요..^^
스텔라님 // 11월달에 한번 방영해줬었고 재방해준거더군요..다시 틀어달라고 시청자들이 꽤나 졸랐나 봅니다..^^

비로그인 2009-01-23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입장과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매력인 영화네요. 이런 영화들이 던지는 질문은 참 고통스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