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행복이 커지는 가족의 심리학 토니 험프리스 박사의 심리학 시리즈 1
토니 험프리스 지음, 윤영삼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2월
구판절판


나는 부모가 될 자격이 있을까?

부모 노릇을 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
무턱대고 아이부터 갖지 마라.-27/29쪽

안타까운 것은, 뒤틀린 인성을 가진 부모들은 대부분 이런 조언을 귀담아들을 만큼 마음이 열려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31쪽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문제 있는 가족들이 가난이나 실업, 파산,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은,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안정적인 직업이 가족의 안녕까지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42/47쪽

아이는 부모를 보고 배운다.

조건 없는 사랑만이 유일한 사랑이다.-113/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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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니피그 사이언티스트 - 자기를 생체실험한 과학자들
레슬리 덴디 외 지음, C. B. 모단 그림, 최창숙 옮김 / 다른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 처음 읽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무지개Rainbow를 읽으면 가슴에 밀려오는 감동을 느꼈었습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보노라면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내 마음은 뛰노라.                      A rainbow in the sky

 나의 삶은 비롯되었을 때 그러하였고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며              So is it now I am a man;


 요즘 사람들은 무지개를 보기나 할까. 볼 수나 있는 것일까? 워즈워스는 자연의 모든 것에 감동을 했으나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감동하는 워즈워스를 비웃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에 감동하고 무엇을 열망하고 사는 것일까?


 중학교 때 뉴턴 Newton의 운동법칙을 과학시간에 공부하면서 학생들의 반응은 둘로 갈라졌는데, 너무나 놀랍다는 학생과 복잡한 공식에 짜증을 내는 학생.

 E = 1/2mV2의 공식을 보면서 막연하게 느꼈던 추상적 개념이 눈앞에 보여 졌을 때의 놀라움이란! 개인적으로는 중학교 때는 제 2 운동 법칙에 가장 큰 매력을 느끼다가 고등학교 때는 제 1 운동 법칙을 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변화도 개인적으로 큰 감정의 일렁임이 있었습니다.


 기니피그 과학자Guinea Pig Scientists들이란 과학자 자신에 대한 생체 실험을 한 이들을 말합니다. 현대의 관점에 살펴보면 이들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첫 번째 에피소드 통구이가 된 영국신사들의 조지 포다이스의 예를 보면 뜨거운 열에 노출되었을 때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실험입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과학적 결과를 얻게 되었지만 만약 운이 조금 없었더라면 일사병heatstroke에 의해 사망할 수 도 있었습니다. 다른 학자들인 스팔란짜니, 윌리암 모턴과 호레이즈 웰즈도 마찬가지. 퀴리 부인은 자신을 실험대상을 했다기 보다 자신의 건강을 볼보지 않고 연구를 했다가 맞을 듯 합니다. 자신의 몸은 자신의 것이므로 자신의 호기심 해결하기 위해 위해를 가할 수 있다? 만약 현대의 상황을 적용해서 여성 생물학자가 줄기 세포에 대한 강렬한 학문적 욕심 때문에 자신의 난자를 채취해서 실험을 한다면, (상급자의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고 자신이 결정권자이고 스스로의 선택이라면) 이 과학자에게 찬사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 없이 실험을 행하거나 동의를 구하더라도 강압적인 상황 (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포함하여)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용인되어야 하느냐 현대 윤리적 관점에서는 쉽게 답할 수가 없습니다. 기자가 진실을 알리는 것과 합법 불법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였다면 과학자은 진리의 추구와 윤리 사이에서 항상 줄타기를 하였습니다. 중세 시대에서는 사망 환자의 부검도 비윤리적인 것에 속했으나 당시 의사로서는 살아있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부검의 강력한 욕구를 느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도 유교적 관점 때문에 해부나 부검이 아직도 터부시 되고 있으니) 따라서 나머지 아홉 개의 에피소드도 윤리적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심장 속 들여다 보기’나  ‘잃어버린 동굴에 갖혀’는 그나마 방어적 장치가 있었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열정일 것입니다.

 갈릴레이가 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천문학을 연구했을 때는 그 연구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함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었습니다. 그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학문과 진리에 대한 열정 때문입니다. 저는 현대 학문에는 과연 그러한 분야가 있을까 의심스러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별을 볼 때도, 세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볼 때도, 수학 공식을 증명하면서도 연구비fund를 구할 수 있을까? 아니면 노벨상, 필즈상등을 수여하여 명예를 얻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죠. 이 책에 언급된 사람들은 학문적 열정이 다른 것에 비해 더 컸습니다. (최소한 7번째 에피소드까지는)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직장 상사님 댁에 동료들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직장 상사의 조카가 방문했고 고등학교 1학년이라 자연히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조카는 생물이 재미있다고 이야기를 했고 공부도 잘 했는데,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의대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라고 이야기를 했고, 저는 홀로 생물학과 같은 순수학문도 충분히 할 만 하니 너무 실용학문 생각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요즘 청소년들이 돈, 명예에 대한 열망 외에 학문에 대한 열망을 갖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마치 워즈워스가 무지개를 보고 감동했던 것처럼.


 단상 몇 가지 ;

* 예전에 대중 매체에서 들은 이야기 인데, 전 세계적으로 AIDS vaccine 인체 실험에 관한 자원자를 모집한 적인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의사 한 분이 지원하셨죠. (추첨을 통해 선발하겠다고 했습니다.)

* 우리나라 한국동란 때에 황열병과 똑 같은 현상을 일으킨 질병이 있었는데, 유행성 출혈열입니다. 질병의 원인인 한탄 바이러스 Hantaan virus를 이호왕 선생님이 밝혀내셨습니다. 당시에 곤충류에 의해 전염되는 질병이라는 개념은 있어도 설치류에 전염되는 질병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시절에 훌륭한 업적을 남기셨죠.

* 아래 그림은 파티에서 laughing gas를 사용하는 마취과 의사를 풍자한 그림입니다.



(알라딘 서평단에 선발되어 글을 쓰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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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6-03-29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원한다면 이런 책은 어떨지
<과학사의 뒷얘기 III> (생물학,의학편) A. 섯클리프 저/박택규, 이병훈 역/전파과학사 출판
 
생명의 미래 자연과 인간 10
에드워드 윌슨 지음, 전방욱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12월
절판


* 범종설 panspermia
* Subsurface Lithoautotrophic Micorbial Ecosystem SLIME 지하 암석 독립 영양 미생물 생태계-41쪽

곡물 생산량은 연간 20억톤이다. 이론적으로 이 양은 서구에 비해 주로 곡류를 먹고 고기를 적게 먹는 100억 명의 인도인을 부양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곡류의 상당 부분을 가축과 가금을 키우는데 사용하는 미국인들이라면 25억 명밖에 부양하지 못한다.

* 빨리 지구와 같은 행성을 3개는 더 발견해야 되는데... (2005년 12월 26일자 페이퍼 '풍요')-76쪽

* HIPPO

* Habitat destruction, Invasive species, Pollution, Population, Overharvesting-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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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뮌헨




*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 (신명기 19:21
)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4)

 

by Nam 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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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3-04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약시대는 율법의 완성이자 마침이 되신 예수님이 오셨죠.
저도 전에는(지금도 조금은) 신구약의 모순점이 이해가 안 갔었습니다 ^^
지금도 뭐 안개속을 헤매는 듯하고요...

마립간 2006-03-04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 전서 13:12
체셔고양이님, 윗 글은 제가 매우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생활의 적용이 어렵습니다. 영화 한번 보세요. (위 페이퍼는 영화평에서 본 것인데, 영화평을 읽고나니 영화를 본 것보다 더 마음이 심란해서요.)

2006-04-04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4-04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4-04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릴케 현상 > 마호멧 만평 사태의 본질

마호멧 만평 사태의 본질
종교적 갈등을 넘어 다차원적 접근 필요
엄한진(성균관대) 
상대적으로 일국 차원의 현상이었던 프랑스 소요사태나 국제정치경제적 차원에서 어느 정도 설명되었던 9.11테러와 달리 만평사태는 매우 많은 요인들이 연관된 현상이다. 우선 유럽-이슬람 관계의 역사, 유럽 내 무슬림들의 문제, 제2차 이라크전쟁 이후의 중동정세와 유럽-아랍의 정치적 관계, 극우주의 및 유대인문제와의 연관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 사태에는 최근 유럽을 포함해 전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종교와 사회의 갈등, 특히 “종교 관련 사항을 세속법 차원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먼저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을 되짚어 보자. 2005년 9월 30일 덴마크 보수일간지 율란트-포스텐(Jyllands-Posten)에 이슬람을 창시한 예언자 마호멧을 테러리스트로 풍자한 그림 등 12장의 만평이 게재되었다. 처음에는 덴마크 내에서만 문제가 되었다가 2005년 12월 경 중동 등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렇게 만평문제가 세계적인 사안이 되자 2006년 1월 10일 노르웨이의 한 일간지 매거지넷(Magazinet)이 12장 그림 전체를 게재하였고 주로 언론간 연대 차원에서 2월 1일 프랑스 일간지 프랑스 수아(France Soir), 그리고 이어서 독일(Die Welt), 스위스(Tribune de Geneve, Le Temps) 등 여러 유럽국가들에서 신문 게재가 이어졌습니다. 아랍 등 이슬람국가들에서도 만평이 유럽처럼 몇몇 언론에 게재되었었다. 만평사건이 세계적인 문제로 비화한 후에는 예상되었던 대로 각지에서 이슬람신자들의 격한 대응이 잇따랐고 그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1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슬람권 국가들의 작품, 그리고 그 배경에는 유럽의 개입 증대가

우리는 여기에서 이번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만평이 처음 게재된 지 2달이 넘게 지난 2005년 12월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때는 마침 57개국 정상들이 모인 이슬람회의(Organisation of Islamic Conference, OIC)가 사우디의 메카에서 열리고 난 직후였다는 점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실제 이 회의를 결산하는 성명서에 덴마크의 만평문제가 언급되었고 이슬람권 국가들의 정부 차원의 노력이 만평문제가 본격화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번 만평에 표현된 마호멧과 테러리즘의 연관성은 이 만평이 있기 오래전부터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말 속에, 심지어는 다양한 이미지들에 깊이 뿌리내려 온 것이다. 그리고 특히 이러한 인식은 9.11 이후 더욱 확고해졌다. 사실 이번 12장의 그림 중 가장 문제가 되었던 시한폭탄 형태의 터번을 쓴 마호멧 그림이 상징하는 테러리즘으로서의 이슬람이라는 표상은 세계정세에 어두운 우리에게조차도 너무 익숙한 것이다. 결국 지난 11월 우리를 놀라게 한 프랑스 소요사태 역시 무엇보다도 국가의 작품이었듯이, 이번 만평 파문 역시 다소 사소하고, 그리 새로울 것 없고 국지적인 사안이 위로부터, 즉 이번 경우에는 이슬람국가들에 의해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아랍정권들이 이렇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그 배경으로 최근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고 상당수 아랍국가들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의회에 대거 진출하는 등 아랍정치권력이 구가해 온 그간의 장기집권을 위협할 수 있는 최근의 정치변동을 떠올릴 수 있다. 즉 유럽 대 이슬람이라는 대립구도에 대중의 민족주의적인 정서를 동원하여 정권의 안정을 도모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권유지 전략에 '유럽'이라는 요인이 동원되었다는 것은, 역으로 이번 사태에서의 아랍진영의 과도한 대응의 이면에는 점증하는 유럽의 중동개입이라는 현실적 배경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번 만평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자신들에게 희생과 모욕을 준 미국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던 아랍 국가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유럽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의아하고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 원인을 이번 사태에서 눈에 띄게 적극적인 대응을 한 나라들이 공히 최근 유럽과 갈등관계에 있는 나라들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이번 사태의 본질 중 하나는 3년 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와 달리 중동, 동유럽,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점차 미국에 협력하고 미국을 대체해가고 있는 유럽의 존재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인 것이다.

예를 들어 이란의 주도적인 대응은 시아파의 예외적인 신앙심때문이라기보다 이란 핵문제에서 유럽이 오히려 미국보다 더 적극적이 된데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이란의 핵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부당한 의심을 막아왔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05년 9월 갑자기 이란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면서 이란 핵문제가 유엔 안보리 상정 등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이란은 이 의심을 풀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란의 핵관련 기술은 언젠가는 핵무기개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라는 미국의 억지를 이겨낼 수 없었고 그 와중에 2005년 9월 만평 게재문제가 덴마크에서 불거진 것이다. 결국 미국에 더해 유럽까지 가세한 최근의 압력으로 인해 매우 곤란한 입장에 놓여 있던 이란의 입장에서 보면 만평사건은 유럽의 압력이 이란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과 무슬림 모두를 향한 것이라는 유용한 논리를 준 천재일우의 기회였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나토군의 유럽병력이 점차 미군을 대체하고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와 직접 싸우게 되는 것은 미국이기보다는 유럽이 된 것이다. 탈레반을 후원해 온 파키스탄이 이번 만평 사건에서 두드러진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지역에서 유럽 대 탈레반이라는 구도가 형성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시리아의 다마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의 격렬한 시위 역시 최근 프랑스가 시리아의 레바논 간섭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를 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이슬람을 모독한 자들에 죽음을 달라고 부르짖을 때 이슬람인들의 머리 속엔 만평의 작가보다는 유럽국가의 정부들, 그리고 아랍세계에 평화유지군으로, 엔지오로, 성직자로, 기업가로 와 있는 유럽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너무도 명백한 지배자가 된 미국과 오버랩되면서 말이다. 좀더 오래 전 일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제국주의 유럽의 악몽이 떠올랐을 수도 있다.

‘이슬람 문제’가 두려운 유럽의 무슬림들

이번 사태와 연관된 사람들은 유럽 외부의 무슬림들만이 아니다. 지난 프랑스의 소요사태에서처럼 보다 직접적으로 만평과 만평이 대변하는 편견의 표적이 되었던 것은 오히려 유럽 사회 내의 무슬림들이다.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에 발생한 이 두 사건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세를 불리고 있는 유럽의 극우세력 문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그것은 유럽의 경우 극우정당의 주된 자원이 반이민정서이며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에서 주된 이민집단은 이슬람권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슬람권 출신자들과 연관된 이민문제를 핵심적인 사회문제로 부각시키는 것이 성공의 열쇠인 유럽의 극우세력에게 이번 사건은 이슬람이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력 확장의 호기인 셈이다.

일찍이 만평이 게재되었던 노르웨이의 경우 지난 2005년 9월 총선에서 극우정당인 진보당이 22%의 득표로 제1야당이 되었는데 이번 사건에서의 노르웨이를 겨냥한 시위와 폭력은 극우주의의 기반인 반이슬람 정서를 한층 강화시키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극우세력들은 만평 게재지인 프랑스 수아(France Soir)와의 연대를 표시하고 이번 사건을 외부 이슬람인들에 의한 자국의 표현의 자유 침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번 프랑스 소요사태에서도 그러했듯이 서유럽의 이슬람신자들은 이슬람국가들의 신자들에 비해 매우 조심스럽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다. 이슬람공동체는 평화의 공동체다“. 이민문제, 이슬람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그것이 어떤 성격의 것이든 이슬람문화권 출신의 유럽인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그들은 유럽의 주류 백인사회가 자신들을 이슬람이나 아랍으로 규정하는 것이 지니는 해악적인 효과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무슬림, 아랍인보다는 프랑스시민, 덴마크시민으로 남과 다름없이 대접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시민으로 평등하게 대접해 주지 않으려는 주류사회가 그들을 아랍인, 이슬람인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너희들은 본질적으로 다르니까 우리와 절대 같아질 수 없다. 즉 진정한 프랑스인, 독일인이 될 수 없으며, 너희들은 다르니까 다른 대접을 하는 것이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유럽의 무슬림들을 주류사회와 구별되는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유럽사회뿐이 아니다. 알제리, 파키스탄, 터키, 이란 등 자신들의 모국 역시 대유럽 전략에 유럽에 있는 자국동포들을 이용하려 한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이슬람이나 아랍과 관련된 논의를 매개로 유럽-이슬람 관계에 이용되는데 반감을 느끼고 있다. 유럽의 이슬람문화권 출신 후예들은 더 이상 유럽과 오리엔트, 중동의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들의 대부분은 우리의 재중동포들의 경우처럼 유럽에 온지 매우 오래되었거나 유럽에서 태어나 유럽의 문화와 사회에 익숙한 유럽인들인 것이다.

신앙의 존중 대 표현의 자유

“이번 사건에서 게재 당사자들이나 이들 편에 선 지식인, 언론이 주창하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사실상 그들의 반이슬람적, 인종차별적 태도를 정당화하는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라는 것이 이 사건에 대한 대표적인 설명이다.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빌미로 신앙이 다른 집단, 특히 그간 강대국의 미움을 사온 무슬림들을 모독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다소 의아한 것은 이슬람을 그 무엇보다도 적대시해 온 유럽과 미국의 정부들이 이번 사건에서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존중, 종교적 사안에 대한 언론의 신중함, 책임성을 강조하면서 아랍세계에서의 폭력적인 대응에 대한 비판보다는 만평을 게재한 서방언론들에 대한 비판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만평 게재를 비판하며 언론에 책임성과 분별력을 요구한 코피 아난의 논평(2월 9일)이나 “표현의 자유의 실현이기보다는 점증하는 유럽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그들의 무감각, 그들의 거부감을 표현한 것“(2006년 2월 8일자)이라는 워싱턴 포스트의 일견 진보적인 해석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여론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2005년 가을 프랑스 소요사태 당시 국민의 68%가 자극적인 언사와 강경대응으로 이번 사태를 악화시킨 내무장관 사르코지(N. Sarkozy)의 행동을 지지(Le Monde 2005년 11월 17일자)했던 프랑스의 경우, 이번 경우에는 국민의 54%가 만평을 게재한 미디어들을 비판하고 있다.(Le Monde 2006년 2월 9일자)

이러한 태도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사회통제의 강화, 그 속에서의 표현의 자유의 약화라는 최근의 전지구적 경향이 놓여 있다. 즉 매우 폭력적인, 따라서 매우 격렬한 사회적 저항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특히 9.11테러 이후 노골화된 사회통제 강화의 일환으로, 최근 세계 여러 지역에서 표현의 자유가 이해 당사자들의 압력이나 여론을 빌미로 약화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종교의 경우에도 전통적으로 금기시되어 온 유대인 문제에 대한 견해표명 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도 새로이 억압을 당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진원지인 유럽에서 이번 사건은 무엇보다도 최근 들어 사회적 논의나 글, 영화, 광고, 만평 등에서 종교적인 사안에 대한 비판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추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즉 교황을 풍자한 꼭두각시 인형에 대한 제재,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선정적으로 패러디한 광고에 대한 제재 등 최근 크게 논란이 되었던 ‘모독’ 사건들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만평사건을 설명할 수 있다.

최근 유럽과 미국을 보면 기독교든, 유대교든, 이슬람교이든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길에 동참하고 있다. 낙태문제, 동성애자 결혼문제, 생명윤리, 신성모독 등의 문제가 잘 보여주듯이 현 세계는 종교간 갈등만큼이나 종교와 사회의 힘겨루기가 한창인 것이다. 이번 사안의 당사자인 유럽도 유럽연합 차원에서 ‘개인의 자유’와 ‘차이의 존중’, ‘표현의 자유’와 ‘신앙의 존중’이라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가치들을 조화시킬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유럽연합에 속한 나라들의 주류사회 자신들도 심각하게 겪고 있는 정체성 문제가 놓여 있는 것이다. 즉 단일한 유럽이라는 이상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는데 유럽연합 내부에는 무수한 경제적, 종교적, 종족적 차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가 종교적 신념을 저해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이번 만평을 비판한 교황을 비롯해 각 종교의 대표자들이 이번 만평사건에 한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이러한 중요한 경향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매우 종교적인 부시가 이번 만평사건과 관련해 무엇보다도 언론에 대한 비판을 강조한 것은 형식적인 제스처만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은 비록 그 시발점이나 전개과정에 유럽국가들과 이슬람국가들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했지만, 단지 정치적 현상만은 아닌 것이다.

전망

아직 진행중이지만 이번 사태가 초래할 결과를 예견해 보면, 우선 ‘이슬람’이라는 요인의 중요성,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이슬람과 서양, 이슬람과 민주주의, 이슬람과 인권과 같은 이분법이 다시금 활력소를 찾을 것이다. 이번 만평과 흡사했던 살만 루쉬디 사건이 초래한 결과를 되새겨 보면 이러한 유형의 현상이 해당 사회집단에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함을 알 수 있다. 살만 루쉬디 사건 이전에 영국의 파키스탄 이민자들 내에는 자신들의 종교를 중시하는 만큼이나 주류사회에 통합하려는 노력들이 존재했었다. 그러다가 살만 루쉬디 사건이 초래한 무슬림에 대한 낙인은 이 집단의 많은 사람들을 게토에 갇힌 폐쇄적인 존재가 되게 하였다.

이 점과 관련해 아쉬운 것은, 불가능했던 것일 순 있지만 아랍세계 역시 이번 사태에 냉정하게 대응함으로써 ‘이슬람’과 ‘민주주의’라는 오랫동안 상호모순적인 것으로 여겨져 온 두 가치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를 잃고, 반대로 언제나 그러했듯이 서양이 끌고 가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세계해석을 더 강화시키는데 협력한 꼴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과 직접적 연관은 없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9.11이 우리에게 이슬람을 미국, 제국, 테러리즘, 세계화 및 반세계화와 연관지어 생각하게 했다면, 이번 사건은 이슬람 과 아랍을 유럽, 종교 일반, 시민권, 이민문제, 극우주의 등 또 다른 개념들과 연관해 생각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엄한진 님은 성균관대학교 서베이리서치센터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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