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80206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서평 별점 ; ★★★★ 도서관 대출
정의로운 사람은 대부분 편견과 편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엄청난 죄를 짓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재용 재판은 판사의 그릇된 편견과 편애 때문이 아니라 거악에 대한 "편견 없음" 과 정의에 대한 "편애 없음" 이 낳은 결과이다. ; 곰곰생각하는발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 보다는 낫다. (이완용), 나는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 어렵지 않아요 http://blog.aladin.co.kr/maripkahn/781472
나는 이전에 쓴 글에서 ‘선한 (착한) 전쟁은 가능한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 마립간의 철학적 관점을 설명하는 핵심어들 http://blog.aladin.co.kr/maripkahn/3459932
24) 자연이 위대한가, 인간이 위대한가.
*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시험과의 이론적 관계는 ; 학생들이 성실하게 공부하고 공부한 결과로, 학생들의 실력을 확인하는 것이 시험이다. 그러나 공부와 시험이 반복되는 일정한 순환 cycle이 반복되다 보면 학생들은 시험 성적을 위한 공부를 하게 된다. 이것이 공부와 시험과의 실질적 관계다.
가장 나쁜 평화가 가장 좋은 전쟁보다 좋다. 통상적으로 인간의 도덕-윤리에 의하면 전쟁은 절대악惡이고, 평화는 절대선善이다.
인류 역사는 전쟁와 (전쟁의 중단이라는) 평화가 반복된다. 그리고 평화 시기에는 계층화를 통해 양극화라는 모순이 축적된다. 모순이 한계점에 이르면 전쟁이나 혁명이라는 파국을 맞고 제로 그라운드 zero ground라는 모순을 일시에 없앤 상황이 발생한다. (혁명은 작은 전쟁이다.)
인간 윤리에서 절대적인 선은 전쟁이 없이 평화가 유지되면서 모순이 축적되지 않는 상황이다. 나는 크고 작은 인간 사회에서 모순이 축적되지 않은 경우를 알지 못한다. 다시 정리하면 인간은 평화 시기에 끊임없이 모순을 축적한다. - 이 상황이 (인간의 관점에서) 윤리적인가?
≪도덕경≫ ;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인간은 정의로운 편견 (또는 편애)을 가지는 것에 무게를 두려하고 그 결과를 긍정한다면 인간은 자연보다 위대하다. 그러나 (자연의) ‘편견 없음’의 결과를 긍정한다면 자연은 인간보다 위대하다. ; 나는 판단을 유보한다.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에서 이야기한 것은 한국의 일제 식민지 해방과 한국 전쟁이라는 파국 이후에 평화 시기가 지속되면서 점차적으로 축적되고 있는 모순에 관한 것이다. (현 상황이 임계점에 가까웠는지는 나는 모른다.)
정의로운 사람은 평화, 비폭력에 대해 편견과 편애를 가지고 있다. (이 문장에 대한 반례를 찾으면 가부장제를 극복하기 위한 페미니즘의 일부 폭력에 대한 긍정이 있다.)
뱀발) 이 글은 책을 읽고 미리 써 놓았던 글이나 글 서두에 곰곰발 님의 글을 인용하면서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