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60903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나는 이런 페미니스트들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다 2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읽으면서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 사람들의 의견에 반대하고 있다면 그 의견의 어떠한 것들 때문에 반대하고 있는 것인가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그 이유는 내가 페미니즘 도서라고 분류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큰 줄기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 나는 이런 페미니스트들에게
http://blog.aladin.co.kr/maripkahn/7533551
위 글에서 페미니스트들에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의견과 감정이 페미니즘에 반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의견이 페미니즘에 속하는 것인지 내 서재를 방문하는 알라디너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내가 페미니스트들에게 반대했던 이유는
1. (과학적) 사실 판단을 가치 판단으로 미루어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경제력과 성은 대칭의 깨짐으로 발생한 대척점이다.
2. 남성중심 사회 유지에 여성이 기여한 바가 있다는 것이다.
나무를 자르는 도끼에 나무로 만든 자루가 있다.
3. 남녀차별이 인종차별이나 그 밖 다른 차별과 달리 독특한 위치를 차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증오하는 입≫이 민족차별, 국민차별에 관한 것인데, 이 책이 남녀차별과 함께 언급된 것은 남녀차별이 차별의 독특한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 중의 하나다.
얼마 전에도 남녀의 성적 지위, 역할, 결과의 비대칭성에 대한 알라디너의 글을 읽었는데, 그 글에서 경제력의 비대칭성은 언급되지 않았다.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면 여성의 성의 대척점은 남자의 성이 아니다. 남자의 경제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내 의견을 지지하는 책이다.
남성중심 사회 즉 가부장제 사회를 남성이 만들었는지, 아니면 남녀가 합심해서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남성 중심 사회를 유지하는데, 여성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이 글쓴이의 주장은 ‘남성중심 사회 - 가부장제 사회’와 ‘자본주의 (-넓게는 문명)’이 동일 구조로 이뤄져 있음을 설명한다. 따라서 ‘남성중심 사회 - 가부장제 사회’의 혁파는 ‘자본주의 (-넓게는 문명)’의 혁파다.
p273 자본은 식민지에서 여성을 가장 값싼 노동력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식민지 여성은 ‘자유노동자’로 규정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생산된 상품을 시장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소비가 전문이 중심지 여성이 필요하다. ; 이글을 풀어 쓰자면, (남자가 ‘축구’에 매료된 것과 같은 정도의) 여성이 ‘백화점’에 매료되어 소비를 감정의 해소의 방편이 된 상황을 역전시킨다면 보다 양성 평등 사회에 이뤄진다.
p431 그러나 이런 진보는 무엇보다 생활기반, 자연, 인간의 본성, 인간적 관계, 특히 여성을 점진적으로 파괴하는 것에 기초해 있다. 이는 정말 죽음의 생산이다. ; 과연 여성이, 또는 페미니스트들이 육식도 없고, 자동차와 비행기도 없고, TV와 컴퓨터도, 핸드폰도 없고, 에어컨도 없고, 백화점도 존재하지 않는, (마치 Amish와 같은) 자연 친화 생활로 회귀할 힘을 가지고 있을까?
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은 2014년 1월에 출간된 책임에도 알라딘에 한편의 마이리뷰도 없다.
페미니즘의 책을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 ≪페미니즘의 도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같이 잘 팔리는 책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행복한 페미니즘≫, ≪잘못된 길≫, ≪여성의 남성성≫과 같이 잘 팔리지 않는 책이다.
전자의 책들은 억압받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은 여성들의 감성에 카타르시스를 주는 책이다. 후자의 책들은 남녀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여성의 실천을 언급하는데, 그 실천은 여성들에게 부담이 된다. 이제껏 억압받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은 것도 억울한데, 부담까지 떠안으라고 ... 이런 감정적 상황은 책의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가사 家事 노동의 저평가에 따른 여성 착취를 언급한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대중이 믿게 된 것은 그 설명에 설득된 것이 아니다. 천동설을 믿던 윗세대가 사망하고 지동설을 믿는 후세대가 등장하면서 세대교체가 된 것이다. 이 논리를 양성 평등과 가사 노동에 적용하자면, ; 우리 세대는 남녀 불평등과 가사 노동의 저평가 시대를 살았다. 하지만 우리의 자식 세대에서 양성평등과 가사 노동의 정당 평가를 하는 아들, 딸들의 세대를 키울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곰곰생각하는발 님의 지인의 이야기는 양성평등을 위한 실천 강령이 될 수 있다. 이 지인은 자신의 아들에게 영어, 수학 문제를 하나 더 풀어 좋은 학교에 진학하면서 하찮은 부엌일은 여자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아들들에게 가사를 나눠한다는 이야기다.
만약 알라딘 마을이 정말로 양성 평등을 지향하는 모임이라면, 이런 댓글이 있어야 했다.
; 저는 이제부터 제 중학생,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양성평등과 가사 노동의 저평가, 가사 노동을 하는 여성이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오늘부터 부엌일을 시키기로 했어요. (보다 긍정적인 것은 초등학생 때부터.)
만약 양성 평등이고 뭐고 성적과 진학이 우선이고 취직이 먼저이다. 아들에게 가사 나눔, 무슨 개소리. 우리의 아들들이 이런 환경에서 유년시절, 청소년 시절을 보냈지만 단톡방에서 여자사람동료 성희롱 하면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몰카 찍지 말고, 소라넷따위 하지 말고, 여자니까 조심해야하고 남자니까 그래도 괜찮고 하는 습관적인 말과 행동들 하지 말고, 가사노동 도와주는게 아니라 각각 분담해서 하는게 당연한거니까 나부터 하고. 3차로 여자 있는 좋은데 가자고 하는 짓도 그만 두고. 회식때 꼭 젊은 여직원이랑 부르스 추려고 하거나 추라고 강요하는거 그만 두고, 커피랑 술은 여자가 만들고 따라야 맛있다는 개소리도 그만하고, ; 라고 바란다면 그것은 판타지다
나는 알라딘 마을이 이상적인 사회가 아님을 안다. 또한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사람이 완전한 사람이 아님을 안다.
(일부 내용은 다른 알라디너 글에 가져왔기 때문에 글체를 다르게 표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