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의 모순
1) 내부 연대에 의한 외부 배척, 외부 개방에 대한 내부 연대 약화
진보를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흔하게 거론될 수 있는 미덕은 공감, 배려, 연대, 개방과 같은 것들이다. 예를 들면 자기의 마을 사람이 배고파 길가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 만약 배고픈 사람에 공감하여 배려하는 마음으로 빵을 나눠주고 다시는 그 사람이 배고파 쓰러지지 않도록 했다면 연대를 한 것이다. 이런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소통인데, 잦은 소통은 연대를 강화한다. 잦은 소통을 위해 작은 공통체가 강조되기도 한다. 한편 다른 마을 사람이 배고파 길가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 만약 배고픈 사람에 공감하여 배려하는 마음으로 빵을 나눠주었다면 이는 개방적인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입장에서는 연대와 개방이 함께 작용할 수 있지만, 사회를 놓고 볼 때는 연대와 개방은 상보적으로 나타난다. 즉 우리를 강조하면 외부에 배척 현상이 일어나고, 외부 개방을 강조하면 내부 연대가 약화된다. 사회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옆집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과 대륙 넘어 인종을 너머 불쌍히 여기는 것은, 둘 중의 하나만 가능한 경합적 현상이다.
2) 불관용의 관용
진보는 관용을 미덕을 삼는다. 그런데, 불관용도 관용해야 할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3번의 답변을 들었는데, 유명 작가가 라디오 방송에서 관용을 미덕을 삼는 진보 진영에서는 불관용도 관용해야 한다고 뜻의 이야기를 했다. 2번 알라디너를 통해서인데, 진보의 관용은 불관용은 예외적으로 불관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 관용이라고 했다.
3) 약자弱子는 모두 의인義人인가? 그렇지 않음에도 편애해야 하는 것이 옳은가?
약자는 모두 의인이 아닐 것이다. 거의 모두가 의인인가? 어찌하였거나 ‘약자’ 그 자체로 편애의 대상인가? 내 글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의義’와 ‘인仁’을 통합한 옳음이 궁금하다. 약자는 편애의 대상이라는 것은 의보다 인을 앞세운다는 뜻이다.
그들이 다그쳐 물으니,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복음 8:7)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약자가 편애를 받아야 마땅하다면 다음 명제는 어떨까 ; 강자인 새누리당에 비해 약자인 새천년민주당은 편애 받아야 한다.
위 글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다음 질문이 가능하다. ; (편애 받아야 하는) 약자는 무엇인가? 또는 (편애 받아야 하는) 약자의 조건은 무엇인가?
* 위기의 아버지들…남성 자살률 나이 들수록 증가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5/06/0200000000AKR20150506193500004.HTML
자살한 이들은 강자일까, 약자일까? 약자라면 편애 받을 만한가? 편애 받을 만한 약자라면 편애를 받고 있는가?
* 의과 인중에 어는 것을 앞세울까
http://blog.aladin.co.kr/maripkahn/5640990
우리나라는 의義보다 인仁을 앞세우는 사회다. 누군가는 조식을 중심으로 한 북인의 붕당 몰락과 연관 짓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민족성이 더 많이 관여된 것 같다.
진리, 소명,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없다. by 마립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