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안티페미니스트’다, 두 번째 이야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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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성 평등에 관한 글은 계속 올리더라도 ‘나는 안티페미니스트다, 두 번째 이야기’는 여기 매듭을 지어야겠다. 그 이유는 중간에 antifeminist의 중의적 정의 때문이다. 이번 글 시리즈와 관련하여 페미니즘을 <페미니즘의 도전>에 근거하여 반대한다고 했다.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려한다. 나는 (내가 경험한) 페미니스트에 반대하지만, 페미니즘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중간에 이야기를 알게 되는 분을 위해 그리고 나에 대해서 불필요한 오해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정리를 하고 지나간다. 어느 분의 댓글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10년전 이야기까지 너무 멀고, 최근의 일만 정리하면
1) 나는 ‘페미니즘’의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하이드 님이든 (누구이든) ‘페미니즘’을 양성 평등으로 정의하면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했다.
2) 4월 23일 ; 나는 하이드 님이 제시하신 내용에 동감하며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겼다.
아래 문장들에 공감합니다.
1) 전체적인 사람들의 인식이 올라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2) 팁 신경쓰지 않아도 되게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 -> 제 방식대로 표현하면 사회구조적 문제도 이에 작동한다.
3) 비단 성희롱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3) 하이드 님은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스트’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시했고, 내가 그에 대한 설명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 시리즈는 내가 하이드 님이 제시하신 질문에 설명이 되었는가 아닌가가 본질적이다.
4) 중간에 ‘여성 혐오’와 ‘일베’가 언급되었다. 하이드 님은 내게 여성 혐오자라고 하지 않았고, 나 역시 내 글 첫머리에 하이드 님이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음에도 여성 혐오자의 임의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집합을 운운하면서 닉네임을 언급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잘못을 한 것이다. (하이드 님께 사과 드립니다.) 그리고 페이퍼의 닉네임을 익명으로 돌렸다. 아래와 같이 사실과 관계만 서술한 나의 댓글 인용한다. 가치 판단은 각자가 하시기 바란다.
댓글 ; 하이드 님이 제게 여성 혐오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없습니다. 저 의견에 대한 답변을 위해 `여성 혐오`로 검색하셨다고 했죠. 마찬가지로 저는 일베가 아니기도 합니다만, 하이드 님은 저를 일베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단지 일베의 논리가 보인다고 하셨죠.
5) 어느 분은 나의 글이 압박으로 작용한다고 하셨는데, 부정하지 않겠다. 나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일정 부분 압박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중복게제’에서 언급되었던 관철이라는 정도의 의미는 분명 아니다.
어감을 고려하여 명제를 다듬는다. 나는 (내가 경험한) 어느 페미니스트의 주장에 국소적 반대를 하지만, 페미니즘에는 전면적 반대를 하지 않는다. 나는 회의주의자며 나의 경험을 절대화하지 않지만, 나의 경험을 어떻게 뛰어 넘을 것인가는 숙제로 남는다.
* 안티페미니스트 대화 중 잡생각
* 페미니스트를 기준으로 한 사람은 안티페미니스트를 선언했고, 다른 한 사람은 페미니스트를 선언했다. 대칭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대화를 통해 설득하지도 설득당하지도 않았다. 대칭이다. 그러면 여성혐오에 대한 대칭은 무엇일까? 남성혐오는 아니다. 여성 순결의 대칭이 남성 순결이 아닌 이유와 같다. 여성의 자기애愛 ... 확신이 서지 않는다.
*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여성주의의 대립되는 개념이 있다. ‘같은점’을 강조한 자유주의 페미니즘 liberal feminism과 ‘차이점’을 강조한 문화적 페미니즘 cultural feminism. 이 들은 계파 갈등 및 투쟁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빨래하는 페미니즘>의 어느 문구에서는 계파 갈등이 있었다고 암시하는 것 같다.
* <빨래하는 페미니즘>에 의하면 가사 분담은 양성 평등의 중요한 쟁점이다. 아들을 둔 어머니 알라디너들은 아들에게 가사를 분담하고 있을까?
* ‘일간베스트’라는 극우 사이트에는 여성 회원이 있을까, 없을까? ‘일베의 논리’가 어떤 오류를 지칭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