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40626

 

<방황하는 칼날> 서평 별점 ; ★★★☆

 <용의자 X의 헌신>에 감동한 이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신뢰를 갖고 읽게 된다. 이 책은 글샘 님의 독후감을 읽고 읽게 되었다. 독후감에서 마지막 반전이 있음을 이미 알고 읽었기 때문에, 읽는 내내 반전의 가능성을 염두하고 읽었는데 도무지 빈틈이 없었다. 만약 반전이라는 것이 있다면 A에 관한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A가 반전이 되기 위한 복선을 아무리 찾으려 해도 눈에 띠질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A가 반전이었고, 여기에 복선이 있었구나라고 감탄했다. (이 장치가 이 소설에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추리 소설이라기보다 범죄 심리 소설이라고 불러야 할 듯.

 

이 책의 흡입력은 소설을 잘 안 읽는 내가 5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하루 만에 다 읽게 만들었다.

 

(작가가 의도했겠지만,) 이 사건의 줄거리를 만드는 악덕/불법에 대한 (관용/용서를 포함하여) 처벌/징계와 그 방법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우선 악덕을 판단하는 윤리/도덕의 기반이 허약하다. 법은 한쪽은 윤리/도덕에 한 다리를 걸치고 다른 한쪽은 현실적인 실천 가능성에 다른 한 다리를 걸치고 있는 모양새다. 그리고 기반도 허약하지만 구조가 양 다리를 걸치고 있는 그물 모양이라 허점이 많다.

 

청소년 범죄는 청소년이라는 관용해야 하는 미숙함과 이미 행해진 징계해야 하는 행위 사이에 각각의 관점이 존재하고 두 관점의 비중을 측정할 과학적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지과학 관점에서 나는 도덕성에 관한 (어느 책에서는 코드라고 부르기도 한) 모듈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도덕성 모듈이 없는 사람은 사이코패스 psychopath나 소시오패스 sociopath가 된다. 이들은 보통 사람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완전 격리가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사형 여부는 또 다른 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도덕성 모듈이 미숙하지만 이후 성숙할 사람과 모듈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과학적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듈은 관계, 즉 network이므로 앞으로 과학이 발전해도 명확한 구분은 불가능하리라 추정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상황의 판단은 개인/집단의 인식 상태에 따라 제도가 결정될 것이다.

 

우리가 정해놓은 법규가 과연 타당할까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 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가 타당하다고 생각하면 타당한 것이고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타당하지 않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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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기침 2014-06-26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과 도덕이 분리된 이래, 법은 점점 구체화되었는데, 역설적이게도 이제는 법이 보통 사람에게는 형이상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처럼만 느껴집니다. 가진 자(?)가 아닌 많은 사람이 타당하게 느껴지는 법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꾸벅^^

마립간 2014-06-27 07:41   좋아요 0 | URL
저는 법의 기원이 가진 자가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을 효율적으로 통제/통치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그 기원적인 면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01 http://blog.aladin.co.kr/maripkahn/7009661

마녀고양이 2014-06-30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덕성의 발달과 사회적 격리는 제가 관심이 많은 논점입니다.
성숙과 미성숙은 같은 스펙트럼 상에서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되고, 그래서 어느 점수가 성숙이다 판단하기는 어려우므로 그것으로 사회적 격리를 결정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도덕성의 발달이 타고난 뇌의 기능이 아니라는 점 역시 판단의 어려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전두엽의 어느 부분의 기능 부족이라고 말을 하지만, 과연 타고난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많은지, 아니면 어린 시절의 양육 환경에 의해서 영향을 받아서 뇌의 기능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는 말이죠.

다른 얘기인데,
ADHD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병원에서 약 처방을 많이 받는데, 아이들의 산만함은 많은 경우에 우울의 또다른 행동화이거나 반항이나 회피라는 점에서 이 부분을 과연 약으로 조절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약 처방은 효과가 있고, 아이들이 차분하게 가라앉기도 하면서 그에 따라 학습 효과가 늘어나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면 결과적으로 ADHD 행동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 효과가 생기기도 합니다. 단,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너무 쉽게 약만 처방하던가 또는 심리상담만 하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 유사하다는 점이예요. 도덕적 발달도 비슷하게 바라보고 있답니다, 전.

그래서 법규의 타당성과 함께 관심 어린 관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마립간 2014-06-30 12:06   좋아요 0 | URL
위 독후감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도덕성 발달, 그리고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을 구분할 과학적 방법이 존재할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에서 언급되지만, 도덕성 발달은 유전과 양육, 그 어느 한쪽도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의 저의 결론은 모순된 상황을 살아갈뿐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관용 ;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가 관용해야하는거에 대해서는 임의적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