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종

 

처음 순종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울 7가지 덕목의 항목에 순종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혜, 인내, 경청 등 다른 항목에 관해서 아이와 이야기할 것이 있었다. 그런데 순종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 없었다. 아이에게 뭐라고 하나. 아버지인 내가 명령을 하고 아이는 순종하는 훈련해야 하나? 어찌 보면 유치원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아이에게 가르치지 않은 (또는 가르칠 수 없었던) 순종의 미덕을 아이에게 가르쳤으니.

 

두 번째 순종에게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친구와 ‘기독교’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였다. 나에게 가장 우선적인 기독교 가치관 덕목은 ‘사랑’이다. 광범위한 사랑의 의미를 특정하자면 ‘약자에 대한 배려’다. 반면 친구의 가장 우선적인 덕목이 ‘순종’이었다. 나에게 순종은 덕목 순위의 하위에 있어 번호 매김도 되지 않았다.

 

우선 용어의 설명부터 해야겠다. 원인과 이유 ; 이 두 개의 용어는 같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르게 사용하기도 한다. 다르게 사용될 때 ‘원인’은 동인動因적 면에서 볼 때 사용되고 ‘이유’는 결과적 면에서 볼 때 사용된다. 가끔 F=ma 식에서 왜 F는 ma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 식은 물체 운동을 수학적으로 기술한 a=F/m에서 귀결된 것이다. 귀결된 결과에 대해서는 ‘왜’라는 원인에 대한 질문이 성립되지 않는다. ‘어떻게’라는 이유의 질문이 가능하다.

 

순종은 굴종과 맹종과 다른가? 나는 이에 대해 원인으로 설명한다. 굴종의 원인은 폭압이다. 맹종의 원인은 자의식自意識의 상실이다. 반면 순종의 원인은 리더십이다. 리더의 리더십 없이 순종처럼 보이는 것은 굴종, 맹종으로 아이가 그냥 예절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순종은 순종하는 사람의 내적 동인, 자발을 유발한다.

 

순종을 시험 성적에 비유하면 공부에 해당하는 것은 리더의 리더십이다. 공부 없이도 성적은 올릴 수 있다. 시험부정행위를 통해서이다. 리더가 (체벌을 포함하여) 훈육을 통해 아이를 복종시킬 수 있지만, 이때는 순종이라는 용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복종이라는 용어는 순종, 굴종, 맹종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생각된다.) ‘어린 코끼리의 한 쪽 발을 밧줄에 묶어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면 커서 그 밧줄을 끊을 힘이 생겨도 도망가지 않는다.’ 나는 순종이라는 이름으로 학습된 무기력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왜 순종이 생기는가? 리더십 때문이다. 리더십이 없는 리더에게 왜 순종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순종은 자녀나 학생에게 가르쳐야할 덕목이 아니다. 리더에게 리더십을 가르쳐야 하고 리더십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귀결되는 것이 순종이다.

 

‘신데렐라 컴플렉스 : 주인은 심성이 착한 노예를 좋아한다.’ 주인은 심성이 착한 노예를 좋아한다. 그러나 주인은 자발적으로 주인에게 헌신하고 다른 노예들을 주인에게 더 희생하게 하는 노예(상머슴)를 더 좋아한다. 즉 탐욕이 넘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순종이 아닌 맹종이나 굴종을 하는 노예는 그 가치가 떨어진다.

 

물론 내가 선택한 주인은 정의와 도덕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전풍田豊은 좋은 주인을 택하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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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 쓰고 한동안 알라딘 서재에 올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음의 질문에 대해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답을 찾지 못했다.

 

의문 ; ‘리더십의 수단으로 폭압을 사용하고 굴종을 내면화하여 외삽된 조건 반사적 맹종을 일으킨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맹종의 자발성을 조건 반사적 맹종으로 문장을 다듬음.)

 

위 의문은 ‘독서일기 140612’에서 내가 제시한 첫 번째 의문인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친일, 친독재는 (왜) 나쁜 것인가?와 동치인 것 같다.

 

* 독서일기 140612

http://blog.aladin.co.kr/maripkahn/7037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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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06-19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ㅠ, 마립간님은 늘 저를 곰곰히 생각하게 만드시는군요!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저는 순종 안에는 자발적 선택이 포함되어 있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맹종의 자발성이라는 것은, 모순적 의미가 아닌가요? 맹종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선택적이지 않은데, 거기에 자발성을 붙인다면 진정한 자발성이 아닌 착각의 자발성이라고 생각되네요. 진짜 제 머리 깨지게 하는 능력을 지니신 마립간님, 그래서 저는 마립간님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마립간 2014-06-19 22:25   좋아요 0 | URL
폭압과 순종이 어울리지 않듯이, 맹종과 자발성은 어울리지 않네요. 굳이 자발성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면 자발성으로 착각되는 것이 맞겠네요. 문장을 다듬어야겠습니다.

2014-06-19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0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