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31115

 

<수학의 확실성> 서평 별점 ; ★★★★★

 오랜만에 별 5개짜리 책을 만났다. 수리철학에 관한 책을 몇 번 읽었지만, 이전에 읽었던 책들은 상당히 딱딱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 책은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보통 2~3권의 책을 함께 읽는데, 이 책을 읽기 시작한 후 내내 이 책만 읽었다.) 이야기의 전개가 시간 순서대로 서술되어 수학사와 같은 느낌도 주지만, 반면 수학의 그 기반, 제목대로 수확의 확실성에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론은 원제와 같이 확실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지만.)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이 그 동안 익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인지 모르겠다. 논리주의, 직관주의, 형식주의, 역시 모두 한 번씩 들어본 것이지만 이번에 읽을 때는 충분히 그럴 주장을 할만 했다고 느끼면서 읽었다. <수학사>, <수학의 위대한 순간들>과 일부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직도 나는 플라톤-노자주의자다. 수학은 발명되기보다 발견된다고 생각하지만 타당성은 없다. 단지 나의 선택이며 선호이다. 나는 수학이 직관주의에 입장에서 논리적으로 구성되며 탄탄한 기반을 갖은 형식으로 표현되기를 바란다. (물론 잘못된 바람으로 증명된 것이다.) 수학과 물리의 관계도 (생명과 정신을 포함하여) 공통된 원형에서 분리되어져 나온 가설/철학을 유지하고 있다.

 

p552 이제 우리는 절대적 증명이나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증명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절대적 증명이란 현존하는 대상이 아니라 추구해야 할 목표, 하지만 결코 획득할 수 없는 목표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김동인의 ‘무지개’ 소설이 떠오른다.


* 우리 애인(수학)은 말이죠. http://blog.aladin.co.kr/maripkahn/9525

 

* 밑줄 긋기

p87 갈릴레오는 수학 교수였고 궁정 수학자였지만 그의 주된 업적은 여러 과학적 방법들을 혁신적으로 바꾼 일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물리학적 설명을 포기한 대신 수학적 기술을 모색했다는 점이다./p95 뉴턴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수학 교수였고 또 가장 위대한 수학자로 평가되고 있지만, 그는 물리학자로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p127 가우스는 수학 분야에 상당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대부분의 생애를 물리학 연구에 바쳤다. 사실, 그는 50년 가까이 수학과가 아닌 천문학과 교수였다.

p131 비록 독실한 믿음을 지녔지만 자연 법칙의 불변성을 주장하면서 은연중에 하느님의 능력에 제한을 가한 사람은 데카르트였다. 뉴턴도 변하지 않는 질서를 믿었지만 세계가 하느님 계획에 맞게 움직여 나가게 하려면 끊임없이 하나님 자신이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시계를 계속 고치는 시계 수리공에 비유를 했다./p132 라이프니츠는 이러한 생각에 반대했다. “뉴턴의 견해를 따르면 하느님은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이 부족해 운동을 영원히 지속하게 할 수도 없는 듯 보입니다. ...”

p152 수학의 중요한 분야, 아니 중요한 결과를 혼자 이루어 낸 예는 없다.

p159 플랑크 “새로운 과학적 진리가 힘을 얻게 되는 것은 반대자를 설득하여 진리의 빛을 보게끔 하기 때문이 아니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가 득세하는 이유는 반대자들이 결국에는 죽게 되고 이 새로운 진리에 익숙한 새 세대가 성장하기 때문이다.” ; 정치는?

p175 윌리엄 제임스가 말했듯, “인간의 지적 생활이란 거의 전적으로 경험의 근원이 되는 지각 질서를 개념 질서로 바꿔 내는 과정‘인 것이다.

p311 엄밀한 사고는 창조 행위에 장애가 될 수 있다.

p314 어쨌든 이집트 인들과 바빌로니아 인들이 자연수와 분수 그리고 무리수를 연구하기 시작하고 6,000년이 지나서야 수학자들이 마침내 2+2=4를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p333 정의하지 않는다면 그 개념들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 그에 대한 답은 이렇다. 공리가 무정의(그리고 정의된) 개념에 대해 언명을 하고 있고, 따라서 어떤 언명이 가능한지를 공리가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p399 그런데 여기 문제가 하나 있다. 왜 세계는 수학적 추론을 따르는 것일까?

p401 러셀 ; 사람들이 종교적 신념을 원하는 것처럼 나는 확실성을 원했다.

p470 또 연속체 가설을 부정하기 위해서 2**ℵ0=ℵ2 또는 2**ℵ0=ℵ3라고 가정할 수도 있다. 실제로 코언은 이런 가정을 했고 이 가정을 만족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따라서 여러 개의 수학이 생기게 되었다. ; 카오스의 분지?

p528 이상주의자는 현실주의자가 되지 않는 이상 오랫동안 존속할 수 없고 현실주의자는 이상주의가 되지 않는 이상 오랫동안 존속할 수 없다고 언젠가 탈레랑은 말했다.

p545 엄밀한 의미에서 수학적 증명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 하디에게 증명은 수학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라기보다는 건물의 외양에 불과했다. .../와일더 ; 증명이란 직관의 산물을 검증하는 것이다./p546 화이트헤드 ; 결론은, 논리가 사고의 전개에 관한 적절한 분석이라는 생각이 실은 거짓이라는 것입니다./p551 다시 말해서 증명은 우리에게 상대적 확실성을 안겨준다./불행하게도 한 세대에게는 증명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다으 세대에는 오류가 된다.

p550 직관이 우리를 현혹하는 경우도 있다./그런 함수는 직관으로는 절대 찾아낼 수 없다. 수학적 추론은 직관을 보완하지만 가끔 직관의 능력을 넘어서기도 한다.

p583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전자기파가 무엇인지 그 물리적 의미를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직 수학만이 그 존재성을 보증해 주고 있으며 그러한 수학의 도움으로 공학자들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이라는 놀라운 기계를 만들어 냈다./p584 그런데 현대 과학은 감각에 호소하는 직관적이고 물리적인 내용을 점차 제거해 내고 있다는 점도 덧붙여야 한다.

p589 에딩턴에 따르면 인간 정신은 자연의 행동 양태를 결정한다.

p601 그러나 오늘날 자연이 수학적으로 설계되었다는 믿음은 지나친 억지로 취급받고 있다./p602 오늘날 일부 과학자철학자들이 내리고 있는 결론은 수학의 불가해한 힘은 여전히 불가해한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런한 견해를 최초로 표명한 사람이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였다. “여전히 발견되지 않은 비밀이 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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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11-1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 마립간 님에 별 다섯 개 매긴 건 처음 봅니다. 당장 사서 봐야겠어요..

마립간 2013-11-15 12:48   좋아요 0 | URL
곰곰발님, 제가 주는 별4와 별5개의 차이는 저의 개인적 상황에 의해 달라지는 것 같아요.

별 5개 주는 책은 ; 평생을 함께 할 책, 새로운 시각/가치관을 주는 책, 논란이 있는 것을 총괄적으로 정리한 책 등에 주는데, ; 가끔 별 4개를 준 책 중에서 별 5개를 준 저 책보다 먼저 읽었다면 이 책이 별 5개였을 것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어째든 수리철학이 관심이 있는 분이 읽는다면, 가독성도 그렇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5 14:47   좋아요 0 | URL
보관함에 넣어두었으니 다음달에 사서 보겠습니다. 이번 달은 이미 다 지출된 상황....
수학 관련된 글이 의외로 정말 흥미진진하더라고요. 페르마 정리도 참 재미있게 읽었고 말입ㄴ다.

마녀고양이 2013-11-16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역시 수학 포기입니다... ㅠㅠㅠㅠㅠ.
솔직하게 마립간님의 페이퍼를 보면서, 논리는 저와 별나라라는 생각을 점점 더 하게 되고, 한계 인정이랍니다.

그런데요, 마립간님의 소개글, 제가 오늘에서야 유심히 봤지 뭐여염... 큭.

마립간 2013-11-18 07:39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이 수학을 포기하셨듯이,
저는 적극적인 대인관계를 포기했습니다. 이 포기가 불편은 해도 아직까지는 살아갈만한 합니다.^^ (최근에 이 약점이 치명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됩니다만.)

거리감으로 놓고 볼 때, 마녀고양이님의 수학과의 관계는 저의 소설과의 관계로 비유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포기는 하지 않았지만 거리감이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느끼지는 못하지만, 포기한 또는 거리감이 있는 저쪽 세상에도 이쪽 세상만큼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추측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