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31022
누군가 나에게 도스토예프스키가 좋냐, 톨스토이가 좋냐 물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나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도스토예프스키가 톨스토이보다 더 좋다고 답했다. 다시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를 말하는 것은 작가를 좋아하는 것이냐 아니면 그들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이냐라고 물으면 답을 하기 주저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작가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그렇다고 읽은 책은 <죄와 벌>, <전쟁과 평화>가 전부이다. (그 이상의 책을 읽었는지조차 기억이 없다.)
나는 대개의 경우 문학, 음악, 미술 등에서 어떤 작품을 좋아할 때, 작가를 좋아하고 이후 작품을 좋아했다. 브람스 작곡가를 알고 브람스 음악을 들었고, 고흐라는 화가를 알고 나서 고흐 작품을 좋아했다.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는 작품을 먼저 접했다. (희한하게도 읽은 기억이 없는 두 작가의 작품에 대충의 줄거리를 아는 것도 있지만, 확실하게 읽은 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딱 한 작품씩만) 두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곤란했던 것은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 등장인물들을 헛갈렸다. 아마 이 혼돈은 <죄와 벌>이 덜했고, <전쟁과 평화>가 더 심했으리라. 그리고 이 두 작품은 나의 심상에 색깔로 투사되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죄와 벌>은 회색 계통이고 <전쟁과 평화>는 노란색 계통이었다. 나는 회색 계통이 더 좋았다.
또 톨스토이의 대한 반감이 가중된 것은 교회의 권장도서로 톨스토이의 책이 추천되었다는 것이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두 작가에 관한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일 들다>와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읽었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나와 전혀 맞지 않는 (맞지 않는 정도가 아니고 정 반대의) 성격을 가졌고, 톨스토이는 나와 공통점이 많았다. 이제 와서 두 작가 중에서 선호를 바꿔야 하나 고민된다. (다음 번 독서 대기 순서에 항상 있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안나 카레리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일 들다> 서평 별점 ; ★★★☆
* 밑줄 긋기
p19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부모를 닮는다고 한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를 보면 꼭 그렇지만 않은 것도 같다. 그는 아버지와 정반대의 생활 방식으로 아버지와 정반대되는 삶을 살았다.
p46 부자는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 돈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p52 결국 가진 자가 옳는 것이다. 돈은 옳은 것이다. 가진 자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상처받지 않는다.
p78 <미성년>에 의하면 부자가 되는 첫걸음은 열망과 의지다. 뚜렷한 열망을 가지고 굳은 의지로 실천하려 노력하면 성공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 열망이라는 마음 상태는 지정의知情意 중 어느 것에 속하나
p113 그의 마음속에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에 대한 증오가 싹튼 것은 (사람은 누구나 은인을 증오하게 마련이지만) 왕년에 그가 그토록 멋지게 소설화했던 가난한 사람의 자의식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p166 “선생 생각에 가난하고 순결한 아가씨가 정직한 노동으로 얼마나 벌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하루에 15코페이카입니다. 만일 특별한 재능도 없고 정직하기만 하다면 그것마저도 벌기가 힘듭니다. 아무리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부지런히 일해도 말입니다.”
p175 회리쉬 ; 시간과 돈은 상호 치환될 수 있다. 그런 구조적 상황 하에서는 둘 다 부족하기 때문에 돈의 부족은 시간의 부족과 균형을 이루고 시간의 부족은 돈의 부족과 균형을 이룬다./p176 단순히 오래 산다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과 과거에 대한 추억과 미래를 향한 희망은 모두 돈으로 결정된다. ; 돈을 물리학적 용어로 치환하면 시간이기보다 에너지Energy이다. 돈의 유동성은 power에 가깝다.
p181 사람들이 돈을 갈구하는 이유 첫째는 스스로의 돈의 힘을 느끼고 돈을 쓰고 즐기고 과시하기 위해서다. 둘째는 자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다. 셋째는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서이다.
p216 회리쉬 ; “부는 그것을 소유한 사람보다 오래 산다. (...) 돈이 죽지 않을 수도 있다. 낡아 빠진 동전이 새로 주조한 동전보다 가치가 뒤처지거나 합법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p229 그러나 그는 굶주림보다 평범함을 더 두려워했다.
p307 도스토예프스키는 언제나 사실fact와 진실truth의 차이를 강조했다.
p313 이반의 무신론적 사상, 즉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심지어 살인까지도 허용된다.”
p318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가 돈과 관련하여 가장 멸시했던 인간의 유형은 쩨쩨한 남자, 특히 여자에게 돈을 아끼는 남자, 여자의 돈을 갈취하려는 남자이다.
p324 결국 드미트리를 구원하는 길로 인도하는 것은 3000루블이 아니라 3000루블 때문에 빚어진 일련의 사건을 통해 그에게 신비하게 다가온 각성이다./p326 한쪽에는 돈이 주는 자유, 자유로서의 돈, 돈 덕분에 확보되는 자유가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돈이 있는데도, 아니 바로 돈 때문에 생기는 예속의 굴레가 있다.
p327 그리스도는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했지만 빵이 없으면 목숨조차 부지할 수 없다. 돈이 다는 아니지만 자유가 다라고 할 수도 없다.
p333 인간은 너무나 이상하고 복잡하고 변덕스럽고 불가해한 존재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존중되어야만 한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서평 별점 ; ★★★☆
* 밑줄 긋기
p67 완벽한 결혼 생활에 대한 동경이 크면 클수록 그런 것은 한갓 꿈에 불과하다는 좌절감 또한 커져갔나 보다.
p68 두 사람은 여느 부부 못지않게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가정을 꾸미려고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가정의 흉내에 그치고 만다.
p70 나쁜 사랑이 나쁜 이유는 그것이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p74 “모든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가지각색으로 불행하다.”/p121 ‘콩가루 집안’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 ‘인생의 정답은 없다. 그러나 오답은 있다.’가 나의 가치관의 하나인데, 가정에 관해서는 정답이 있는 모양이다.
p75 그러니까 스티바에게는 도덕이나 양심이나 윤리 같은 것들은 육체와 관련하여 아무런 의미도 없는 셈이다. 다양한 여성과 다양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왜 나쁜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p102 본인의 이념에 따라 청빈하게 사는 것과 온 가족을 거지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지만 톨스토이는 그 차이를 싹 무시해 버렸다./p104 일각에서는 톨스토이를 성자로 추앙하기 시작했지만 아내에게 그는 이기적인 위선자였다.
p113 좌우간 톨스토이와 관련됐던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를 썼다. 부인도 쓰고 아이들도 쓰고 제자들도 쓰고 지인들도 쓰고 주치의도 쓰고 가정교사도 썼다./p116 사실상 톨스토이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노이로제에 걸려가고 있었다.
p146 내 마음 나도 모르는데 내가 어찌 남의 속을 알 수 있을까. 타인과 완전히 하나가 된다는 생각, 완전한 소통, 이런 것 자체가 어쩌면 미망인지도 모른다.
p181 절제란 욕망으로부터 인간의 해방한다. 욕망을 합리적인 판단에 종속시킨다./한마디로 절식節食은 모든 절제의 근원이다.
p187 술, 담배, 섹스, 여기에 기름진 음식까지 더해지면 이거야말로 톨스토이가 말하는 타락의 절정이다.
p193 어째서 창녀와 마친놈 들은 예외없이 담배를 피우는 걸까? 이것은 물론 억지다. 담배가 나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런 논리를 가져다 붙이는 것 자체가 대단히 문학적이다.
p197 행복한 밥상의 주역은 먹을거리가 아니라 사람이다.
p221 그는 진정 자연 속에 파묻혀 노동하는 삶을 원했다./p222 그를 정 비난하고 싶다면 그 소망의 진실성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소망의 실천 가능성을 너무도 가벼이 생각한 그의 교만을 비난해야 할 듯하다.
p225 이때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많이 달랐다.
p225 톨스토이는 매우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작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사색보다 행동을 중시했다.
p226 시골에 살 때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던 생활비가 도시에서 살다 보니 아주 큰 문제가 되어버린다. 도시에서는 쓸데없는 곳에 지출을 해야만 체면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락의 공간은 타락의 지속을 위해 많은 돈을 요구한다.
p235 톨스토이의 예술론은 말이 예술론이지 도덕론이나 다름없다.
p238 톨스토이에 의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예술의 본질을 미美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것은 마치 음식의 본질이 인간에게 영양소를 공급해 주는 것이 아니라 미각을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 오류다.
p260 톨스토이는 예술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예술이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예술이 만약 좋은 감정, 인간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감정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염시킨다면 ...
p271 전형적인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나는 왜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톨스토이는 세상의 모든 종교들을 공부했고 철학 책과 과학 책을 읽었다.
p273 그러니까 그는 정통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이단에 가까운 사람이다.
p281 첫째, 항상 죽음을 기억하며 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