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잘 쓰려면 수학을 잘해야 한다.

 글을 잘 쓰려면 수학을 잘해야 하는가?


 한국에선 이 질문을 하지 않는다. 한국에 있을 때 나 자신이 한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질문이다. 그런데 많은 프랑스인들이 이 질문을 던지고 있고, 또 이 질문에 대하여 아주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다. 즉 글쓰기와 수학 사이에는 아주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어서 글을 잘 쓰려면 수학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학 교사와 교수들이 이 주장을 펴고 있고, 문필가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이 주장에 많이 동의하고 있다.


 이 주장은 당연히 수학에 자신이 없어서 이과를 지망하지 못하고 문과를 선택한 수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볼멘 소리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 때문에 계속 설움을 받아왔고 또 수학 때문에 문과를 지망했는데 글쓰기도 잘 못할 것이라고 하니,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란 말이냐?" 라고. 나는 프랑스의 수학 중시 교육에 대하여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울분에 찬 항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의 전 교육과정에서 수학은 단연 으뜸되는 과목으로 취급 받고 있다. 이과에선 말할 것도 없고 문과에서도 수학은 다른 과목, 예컨대 영어보다 훨씬 더 중요시된다. 수학 중시는 바칼로레아(대학 입학자격시험)에서도 반영되어, 이과에서는 수학의 배점이 영어의 세 배에 이르고 문과에서도 수학은 철학, 프랑스어와 함께 높은 배점이 적용되고 있다. 그런데 다른 과목은 모두 논술로 시험을 치르는 것과 달리, 수학은 정밀과학이므로 학생 사이에 점수 차이가 가장 많이 난다.


 수학 실력이 경쟁시험 등에서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특히 그랑제콜(수재학교)에 입학하려면 우선 수학 실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공부를 잘하는가 못하는가의 구분이 수학으로 결정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한편 수학 실력도 부족하고 철학에도 뛰어나지 않은 평범한 학생들이 가는 분야 중에 법률학이 포함된다. 가장 뛰어난 문과 학생들의 대부분이 법학을 지망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상반되는 점이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에서 우수한 학생이 법률학을 택하지 않는 이유는 판검사, 변호사, 공증인 등의 법률종사자란 다만 기존의 법을 적용하기만 하는, 비창조적이고 비생산적인 기생집단이라는 생각이 프랑스 사회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프랑스에서 법률종사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수학과 글쓰기의 관계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다. 반면에 수학 실력은 떨어지나 철학이나 기타 인문과학 분야에 자신이 있어서 문과를 선택한 사람들, 그 중에서도 문필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수학과 글쓰기사이의 연관관계 주장에 대하여 관심이 많고, 또 연관이 있다는 주장에 반론을 펴기도한다. 토론은 주로 글쓰기에 필요한 논리력, 추리력, 분석력, 정확성의 추구들이 수학교육을 통하여 알게 모르게 길러진다는 주장과, 수학적인 차가운 논리가 오히려 창조적 감성이나 미적 상상력을 해칠 수 있다는 반론 사이에 벌어진다. 반론자들은 하나의 좋은 예로 괴테를 내세운다. 독일의 으뜸가는 시인인 괴테가 수학에는 아주 뒤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토론에는 한 가지 흥미있는 재치응답이 있다. 반론자가 논리 정연하게 그리고 예를 들어가며 수학과 글쓰기 사이에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할라치면, 상대방이 "당신이 그렇게 반론을 펼칠수 있는 것도 실은 수학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응수하는 것이다. 이 응수가 언뜻 보면 순환논리인 듯하지만 일리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 중에서 시나 희곡 등은 수학과 크게 관련되지 않는다 해도, 특히 평론만은 수학이 요구하는 정확성과 추구정신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올바른 평론을 쓰자면, 관계된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또 그 사실이 나오게 된 배경과 앞으로의 전망 등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어야 가능하다. 즉 정확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실, 굴절되어 나타난 사실, 미로(迷路)처럼 꼬인 사실 등을 정확성의 무기만으로 접근하면 자칫 자기함정에 빠져 정확치 않은 것을 정확하다고 믿어버리는 일이 생기기 쉽다. 드러난 빙산의 일각을 정확히 묘사하고 모든 것을 알아냈다고 믿는 것과 같다.


 "파도만 보지 말고 조류(潮流)의 흐름을 보라." 페르낭 브로델의 말이다. 우리는 흔히 파도만 보고 바다를 보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노사정위원회, 코보소 사태 등에서 드러난 사실을 아무리 정확하게 파악해도 속에 감추어진 본질까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의문을 던지고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수학은 예컨대, "삼각형의 세 중선은 한 점에서 만난다."라는 사실에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분명히 정확한 사실임에도 그렇다. 왜 만나는가? 또는 왜 만날 수밖에 없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수학에서는 증명되지 않는 사실은 '정리(定理)'가 될 수 없고 다만 가설로 남을 뿐이다. 평론이 정확성 이외에 수학에서 배워야 하는 게 바로 증명될 때까지 끊임없이 회의하고 추구하는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 홍세화님이 쓴 책 <센느강은 좌우로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수학과 글쓰기에 나오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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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4-08-09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내 애인(수학)은 팔방미인입니다.

▶◀소굼 2004-08-09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얘기만 보면 괜히 뿌듯;;

미완성 2004-08-10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흑.
철푸덕! (오즈마님식으로 넘어져 절망하는 소리;;)
마립간님의 애인은...너무 퍼펙트한 거 아니어요? 네? 흑흑.

물만두 2004-08-10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수학을 못해서 글을 못쓰는 거였군요. 이상하게 위로가 됩니다...

호랑녀 2004-08-10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률종사자에게 사실은 수학이 제일 필요한 거 아닐까요? 논리적이어야 하니까...
그 나라는 문학, 예술의 흐름을 모르면 사교활동을 할 수가 없어서, 바쁘신 분들은 따로 과외까지 받는다고 하더군요.
다른 나라의 교육제도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수학과 철학, 프랑스어에 최고의 배점을 하는 프랑스 교육. 그 나라만의 자존심이 느껴지네요.

아영엄마 2004-08-10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수학 못하면 글도 못 쓴다구요? 물만두님과 동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ㅠㅠ. 나도 철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