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부제 : 나는 왜 책에 집착을 하는가?


 제가 어렸을 때 한글을 막 깨우치고 난 후, 어머니께서는 저의 취미를 독서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취미가 아니고 무엇을 배우고 난 후, 배운 것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막상 독서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책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된 시기는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지내면서 ‘책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나!’를 느꼈을 때입니다. 한 줄이 문장은 책 속에 담겨지기 까지 저자의 엄청난 노력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금속활자에 의한 인쇄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책은 수사修士들에 의해 필사되었습니다. 종이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양피지에 필사될 때는 더욱 가격이 비쌌죠. 책이라는 것은 글을 읽을 줄 아는 지식있는, 그리고 책을 구입할 수 경제력이 있는 귀족만이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귀족 집의 거실에 금촛대가 있는 것과 서재에 책이 꽂혀있는 것은 같은 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책과 인연을 처음 매져준 것은 문화적 허영심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책과의 관계를 현재 상태로 유지하고 있게 된 것은 고독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적 허영심 : 제가 어렸을 때 지금은 돌아가신, 대학생이셨던 외삼촌과 함께 살았습니다. 하얀 종이, 만년필, 심이 길게 깍인 연필, 꼬부랑 글씨인 영어 등등. 대학생으로 연상되는 것들. 그리고 엘리트라는 이미지. 외삼촌은 화공과를 전공하셨는데, 우리 세대에 전자공학이 인기가 있었던 것처럼, 그 당시에는 화공과가 최고의 인기가 있었습니다.

 외삼촌이 가져온 학교 달력에는 잔디밭에 앉아 담소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도 있었는데, 저는 상상을 하며 저 분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쇼펜하우어, 칸트와 같은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아니면 상대성 이론이나 소립자 같은 과학이야기를 나눌까. 우리 대학생 시절에도 잔디밭에 앉아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지만 내용은 주로 Electronic Data Processing System의 (겉모습만 같은) 이야기를 포함한 잡담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토록 동경했던 지적인 세계는 대학보다는 책에 있습니다.


 고독 : 누가 나를 알아준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라도 있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나만이 하고 있는 걸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도 책 속에 있고, 나의 생각을 고쳐주는 이도 책 속에 있고, 나와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는 이도 책 속에 있었습니다. 혼자서 심심하다고 TV를 보거나 혹은 radio를 들으면서,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방송작가나 PD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일방적이기는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책 속에는 친구도 있고 애인도 있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사실이었습니다.

 ‘책은 청년에게는 음식이 되고 노인에게는 오락이 된다. 부자일 때는 지식이 되고, 고통스러울 때면 위안이 된다.’ - 키케로Cicero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에 너무 흔하기 때문에 대접받지 못하는 책, 영상매체의 등장과 컴퓨터에 의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책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책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이제 언제가 ‘나의 서재를 꾸미리라’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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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6-20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그런 느낌이지만, 마립간님의 글은 참 지적인 향취를 담고 있어요.
저도 마립간님과 조금 비슷한 것 같은데, 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독서를 하기 시작했죠. 남들처럼 빨리 책을 읽지 못해, 학교에서 쉬는 시간 쪼개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남들이 보면 책벌렌 줄 알았겠죠.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 서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 어린이 전집 아시는지 모르겠네요.'계림문고'라고. 그걸 시험만 끝나면 뭉터기로 사곤했죠.
서점을 다니면서, 당시의 나이론 읽기에 벅찬, 칸트나 쇼펜하우어 같은 철학책들을 그냥 사 놓기만 하고 읽진 못하고 있었죠. 전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지적수준이 높지 못하다는 걸. 그때 느꼈던 열등감이란...
전 고독했기 때문에 책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거야.'라는 유치한 우월감에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나만의 서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다 갖게되는 것 같아요. 근데 서재는 왠지 있는 사람이나 갖는 것 같다는 생각은 왜일까요?
요즘 알라딘에선 서재 이벤트도 한다는데...
요즘 저는 책에 대한 욕심은 여전한대, 매일 새로운 책이 뭐가 있는지 그냥 침만 젤젤 흘리고 산답니다.^^

갈대 2004-06-20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는 이유 중에 '고독'도 분명 한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에는요.
책은 가장 좋은 친구이자, 대화 상대이자, 스승이죠^^

물만두 2004-06-20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보다 책을 더 좋아합니다. 책은 상상할 자유를 주거든요. 영화는 감독 따라가기라 생각되서 이젠 잘 안 보게 되네요. 영화만큼 책을 많이 읽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