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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병리학 밑줄긋기
권력의 병리학 -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가
폴 파머 지음, 김주연.리병도 옮김 / 후마니타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 자본주의에 올라탄 의료 제도의 모순 ; 해결책을 의사에게서 찾으려는 듯

부제 - 해결책의 초점을 잘못 맞춘 듯. 의사보다는 제도로.

 <권력의 병리학>은 어느 알라디너가 번역한 책이고 개인적으로 힐러리 클린턴이 해결하려 했던 의료 구조적 모순의 해결책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한편으로 기대가 넘쳤습니다. 물론 좋은 책이지만 책을 선물하신 분이 칭찬 일변도의 서평을 원하지 않은 것을 알기에 단점에 대한 비평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책 제목이 마음에 안 듭니다. ‘병리’라는 용어는 의학 용어이지만 ‘사회 병리’등 이미 병리는 일반적인 통용되는 보통명사입니다. ‘권력의 병리학’이란 책 제목에서 ‘의료 제도의 구조적 모순’보다는 마치 ‘정경 유착’과 같은 권력의 부패를 보여 주는 책이라는 인상이 깊습니다. 따라서 원 제목인 ‘Pathologies of Power’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제목을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영화 <Waterloo Bridge>는 ‘애수’라는 더 아름다운 한글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두 번째 불만스러운 점은 저자가 의도하는 책을 읽었으면 하는 대상이 의사라는 것입니다. 책의 많은 내용이 의사의 도덕성, 도덕적 행위 당위성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의사의 도덕성은 히포크라테스 이후 줄 곧 의사 사회에 내부에서, 또는 사회에서 강조되어 왔던 이야기입니다. 비도덕적인 연구인 Tuskegee syphilis study는 학생 시절부터 알고 있던 이야기입니다. 의사들의 도덕성의 강조가 더 환자들에게 나은 의료 환경을 가져오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현재 의료 제도의 구조적 모순은 사회 제도 정비 및 법률 제도 정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이 이 책을 읽고 ‘의사들은 불쌍한 사람을 잘 치료해야 돼.’라고 생각하고 주위 의사에게 한 마디 정도 던질 수 있겠죠. 그러나 그것이 사회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요?

 p249 “새로운 의료 환경에서는 더 이상 비영리 보험이 설 자리가 없다.”

 약학업계 있는 어느 분이 제약, 약국 등 약학에 관련된 주체들이 자본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면서 “병원은 자본에서 자유롭나요? 혹시 돈을 벌기 위해 잘못된 치료를 대형 병원(대학병원이나 3차 병원)에서 하지 않나요?”라고 저에게 물어 왔습니다.
 저의 답변은 “대형병원에서 환자에게 필요 없는 수술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본, 이익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대개의 최신 기술은 더 정확한 진단, 최소의 부작용, 더 나은 치료 효과를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기술 의료는 이익도 많이 남습니다.” 즉 고부가치의 진료는 고수익을 창출합니다. ‘
잊지 말자! 병원도 이익집단이다.

 언젠가부터 환자를 고객으로 부르며 병원도 마케팅을 시작했습니다. 그 병원 암센타를 지은 후 1년 동안 위암 수술을 1800례 하는 등 전국적으로 환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환자를 고객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국민은 환자를 고객으로 부르는 이 병원에 몰릴까요? 알리디너에게 설문조사라도 하고 싶습니다.

p306 우리는 어떤 치료가 그 효과에 비해서 지나치게 고통스럽고, 비싸고, 오래 끄는 치료인자를 가려내야 한다.

 누가 가려내는 것이 타당한가? 국회의원? 법관? 시민단체? (만약 대부분의 국민이 시민단체가 가려내야 한다면 법률로 정하면 됩니다. 시민단체가 의료의 한계를 정한다고.) 우리나라의 의사는 임상적 기준, 국민 건강 보험 공단 및 심평원의 기준, 의료 소송에 대비한 법률적 기준에서 줄타기 하고 있습니다.

<녹색 성장의 유혹>
p47 죽음을 앞두고 있거나 치료 불가능한 질병을 앓는 환자를 '어떤 방법으로 치료할 것인지에 골몰하거나 그들에게 완치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보다 고품질의 보살핌으로 평안함을 선사하자.

 과연 죽음 앞에 초연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녀 교육 앞에 진보는 없고 보수만 있다는 어느 분의 말처럼 의료 역시 진보적 가치관을 갖은 사람을 만난 기억이 없습니다. 진보적 결정은 있습니다.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

 세 번째 곤란한 점은 이 책을 선물할 의사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점심시간에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직장 동료가 ‘어! 마립간님 한가하신가 봐요. 소설책을 읽고 계시고.’ 저는 속으로 ‘소설책 아닌데.’ 주위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의료 환경도 무한 경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시기에 한가롭게 이런 책이나 읽느냐. 시간 있으면 자기발전을 위해 의학책, 의학논문을 읽고 논문을 써서 업적도 내고 대중 매체에 유명세나 탈 궁리를 해라. 그도 아니면 영어 공부나 해라. 전국의 환자가 S 의료원으로 몰리고 있다. 너는 굶어 죽기 딱 알맞다.’

 이 책에서 확실한 해결책을 얻으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수차례 저의 페이퍼에서 이야기했지만 ‘현대 의료는 돈과의 싸움이다.’라는 명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제도적 보완을 통해 그 가능성을 보았는데, 이 책은 의사의 역할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하루 빨리, 의대 입시에 전 국민이 동의하는 (일반적으로 의사를 욕하더라도 자신의 자녀는 의사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학부모가 많으므로) 도덕성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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