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이 쓰는 우리시대의 중독 ⑨'징크스' 중독
[조선일보]
중요한 시험을 앞두면 머리를 기르거나 수염을 깍지 않습니다. 심하면 속옷도 갈아입지 않지요. 계약을 앞두고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마주치면 안 된다고 꼭두새벽에 집을 나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출근길에 교통신호가 딱딱 떨어지지 않아 무사통과를 한 번도 못한 날은 꼭 상사에게 혼이 납니다. 지나가는 차의 번호판 숫자 4개를 더해보니 끝자리가 4! 중요한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포기하고 맙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기기묘묘한 징크스를 가지고 삽니다. 처음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시작했다가, 이제는 하루에도 몇번씩 반드시 치러야 할 중요한 의식으로까지 굳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이제는 일을 풀리지 않을 때마다 자동적으로 징크스와 연결시켜 버립니다. 일일이 지키느라 너무나 피곤하지만, 그냥 무시해버리면 찜찜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거나 실패를 경험하면 그 이유를 찾고 싶어합니다. 기대가 큰 일을 그르칠 경우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이라도 관계를 찾아 원인으로 삼아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를 들으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침을 흘리도록 학습이 되는 것 같이 징크스와 결과를 자매결연시키는 학습이 되는 것입니다.
한편 상식적인 인과 관계로부터 먼 것일수록 강력한 징크스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원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을 때 무엇이건 원인을 찾아내 상징화하고, 그것만 피하면 다시는 그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염원을 투사하려는 무의식적 욕구 때문이랍니다. 그래야 본질적 문제를 직시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는 징크스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의식을 만들고 지키려 애를 쓰게 됩니다.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징크스는 일에 집중하도록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징크스, 혹은 꼭 지켜야 하는 나름대로의 의식이 있다는 것은 그와 연관된 일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반증이니까요. 하지만 하는 일마다 징크스가 생기고, 그걸 막기 위한 의식이 줄줄이 이어진다면 결국 일은 뒷전이 되어버립니다. 징크스가 또 다른 징크스를 낳는 형국이 되어버립니다.
모든 실패를 징크스 탓으로 돌리거나, 실패를 피하기 위해 하는 의식화된 행동을 거른 것으로 합리화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냉정하게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교정하기보다 내가 만든 가상의 상징에 원죄를 뒤집어씌웁니다. 어느덧 ‘노력해도 소용없어’란 지독한 운명론자가 되지요. 인생이야 편해집니다. 원인을 복잡하게 고민할 필요도 없고, 앞으로 징크스를 피하기 위한 의식만 잘 치르면 되니까요. 이런 편리함이 징크스를 늘어나게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 현실 판단력은 줄어듭니다. 원하는 것에 집중하기 위한 한 두 개의 징크스는 약이 되지만, 징크스가 삶의 전반에 만연하게 되면 당신은 징크스란 마스크에 눈과 귀가 가린 신세가 됩니다. 징크스의 주술에서 빠져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징크스는 사람의 의지를 흐물흐물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거든요. 징크스를 극복하는 것은 눈 딱 감고 완전 무시, 정면 돌파해보는 것입니다. 징크스 때문에 하던 수많은 주술적 행동을 하지 않아도 무시무시한 저주와 재앙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음날이면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징크스 탓으로 돌리며 부정하고, 피해온 단점이나 허점의 실체가 그제서야 보일 겁니다.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