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일제가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 수원 화성행궁 앞을 흐르는 명당수의 석축 폭을 줄여 물길과 유속을 바꿨는가 하면 축조방식도 일본의 전형적인 토목방식인 견치석 쌓기 공법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26일 수원시 화성사업소와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구원 등에 따르면 화성사업소는 화성행궁 앞 광장조성을 위해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 258의1 일원 6천600여평에 대해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기전문화재연구원에 문화유적 시·발굴조사를 의뢰했다.
조사결과 ‘화성성역의궤’에 나타난 화성행궁 앞을 흐르던 명당수의 호안석축과 신풍교의 교대지 일부, 잔존 석재들이 확인됐다.
하지만 명당수의 호안석축이 북측은 조선의 전통적인 토목방식인 평돌쌓기 방식으로 축조된 반면 남측은 일본의 전통적인 견치식 공법으로 축조, 일제에 의해 원형이 훼손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명당수의 북측∼신풍교까지 70여m 구간은 폭 4∼5m로 화성행궁과 일직선을 이뤄 유속의 흐름이 일정하지만 남측 30여m 구간은 호안석축의 위치를 ‘화성성역의궤’에 나타난 원래 지점보다 2∼3m 가량 화성행궁 쪽으로 가까운 지점에 재축조된데다 폭도 1.2∼2m로 급격히 좁아져 유속까지 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화성사업소는 일제가 지난 1911년 ‘조선궁·읍성 철거시행령’에 따라 화성행궁 파괴작업을 벌이면서 수원의 기운을 약화시키기 위해 북쪽의 팔달산에서 내려와 화성행궁 앞을 지나 남쪽의 수원천으로 흐르는 명당수의 물길을 의도적으로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축조방식도 일본의 전형적인 토목방식으로 삼각형이나 마름모 형태로 돌을 쌓는 견치석 쌓기 공법을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화성사업소 김준혁 학예연구사는 “일제가 북쪽 팔달산에서 발원해 화성행궁 앞을 흐르는 명당수의 물길과 유속을 바꾼 것은 치밀한 계획에 따른 화성행궁 파괴작업의 일환”이라며 “명당수가 풍수지리학적으로 왕실의 안녕 등 국운을 상징하는 것을 이용, 민족정기를 말살한 고도의 술책”이라고 말했다.
한편 화성사업소는 일제에 의해 변형·왜곡된 명당수를 ‘화성성역의궤’대로 원형 복원하겠다고 밝혔다.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경기일보 고영규기자 ygko@kg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