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대 고라즈데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팔레스타인으로 유명한 것은 알았는데 팔레스타인이 앞서 작품인 줄을 몰랐다. 알았다면 아마 그 책을 먼저 구입했을 텐데. 뭐 크게 상관은 없지만^^;;

보스니아 내전을 소재로 한 이 책은 조 사코가 직업 취재하고 인터뷰하고 현장을 체험한 그곳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이어서 어떤 순간엔 밥이 넘어가지 않을 만큼 힘들 때도 있었다.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했지만 지난 주에 본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의 실사 사진보다도 그림으로 그려진 이 책의 현장이 더 잔인하고 무서웠다. 

워낙에 유럽 중심의 역사를 배워온 까닭에 발칸의 유럽 국가들은 이름부터가 낯설다. 이름도 낯선 그 땅의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역사적 체험은 당연하게도 어렵고 멀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 멀고도 먼 나라에서 내가 살았던 동시대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끔찍한 학살과 탄압이 자행되었다.   그건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그 시간에 유럽의 어느 곳에서는 평화로운 일상이 벌어졌던 것과 마찬가지의 이야기이다.  변방에 속해 있는 나라의 가혹한 현실 따위는, 애써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고, 언론 통제마저 이뤄진다면 더더욱이나 알기 어려운 먼 우주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흔히 한국전쟁을 표현할 때 "동족상잔의 비극"이란 말을 쓴다.  한 민족끼리 서로 총부리 겨누고 싸운 그 비극의 아픔은 좀처럼 무엇과도 견주기 어려운 설움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바로 이웃끼리 원수가 된다는 것.  자기 집을 불태우고, 그 집을 향해 총을 쏘는 상대는 내 아이의 친구며 함께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변하지 않았지만,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은 단번에 원수가 되어버렸다.  그들이 겪은 끔찍한 시간은 결코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고, 죽은 사람은 죽은 채로 그 비극을 간직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있는 까닭에 그 비극을 평생토록 안고 살아야 한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누구도 그 원인을 쉽게 말하지 못한다.  알고 있는 것은 더 이상 과거를 돌이킬 수 없고 그 자체가 현실이라는 것.

안전지대로 지정되었지만 결코 안전하지 않았던 땅 고라즈데.  연합군의 도움을 바라지만 쉽사리 움직여주지 않고, 식량을 구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어버리며, 병원에서는 마취제는커녕 진통제도 없이 수술을 하고 때로 식칼을 이용하여 절단 수술을 해야했던 그곳.  화학무기가 사용되어진 게 분명한데 진상은 조사되어지지 않고 감춰져 버렸다.  (이 부분에선 역시 한국전쟁 생각이 아니 날 수가 없었다.)  혹 사라예보와 맞바꿔지는 것은 아닐까 방송에 귀기울이며 숨죽여야 했던 그들의 절박함은 그림 속에서 행간에서 무수히 묻어났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그 땅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되었지만 그건 비극의 끝이 아니라, 잠시 간의 휴전일 뿐이다.

평화로운 시간은 쉽사리 오지 않았고 고통은 여전히 산재한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갇혔던 그 시간만큼의 공백이 생겨버렸다.  일생의 중요한 한 순간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셈.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뛰어야 하고 살아야 하는 게 그들의 숙제다. 

되도록 중립적 시각을 유지하려 애썼고, 또 현장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체험하여 그려낸 조 사코의 열정과 헌신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이 책의 아쉬움은 그들의 비극을 보여준 것 이상을 볼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그건 이 책의 냉정할 정도로의 현실성이 아닐까 싶다.  그 처참한 과거를 딛고 쉽사리 찾을 희망은 아니었지 않은가.  그 이후의 희망을 찾는 것은 그곳에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들 모두의 몫일 테지. 

그런데, 여전히 그곳은 멀고도 먼 나라.  안타깝다고 한 번 생각하고 두번 세번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나는 또 안다.  그것 역시 잔인한 현실.  그래서 읽고 나서 내내 씁쓸하다.  지구상에서 전쟁이 없는 날은 단 3일 뿐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정말이었나 보다.  그 숱한 전쟁보다 더 기막힌 것은, 다시 잊어버리고 또 다른 전쟁을 치루는 게 우리 사람이라는 것.  그러고 보니 911도 곧 다가오는 군.(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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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찾기 2016-11-10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상품을 구매한 사람들이 구매한 상품˝에,, 제가 구매한 책들이 쭉~ 나올 때,, 가끔 묘한 기분이 듭니다ㅋㅋ 창비인권만화도 그렇고, 조사코의 책들도 그렇고,, 다 찾아서 구매하여 읽고선,,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하여 이 책들의 리뷰들도 ˝찾아˝ 읽었습니다.
˝또˝ 잘 읽고 갑니다 ^__^